내 마음속 헤르메스를 되찾다
1. 나는 왜 여행을 가지 못했을까
인스타그램을 돌아다니다 김영하가 했던 말인 것으로 기억하는 사진을 봤던 게 생각난다. "예술가가 되지 않을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돼야만 하는 그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라는 식의 말이었던 것 같다. 하지 말아야 할 수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해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의 강렬함 때문에 결국 그것을 해내고 만다는 것. 나에게는 여행이 이러한 존재였던 것이 아닌가 싶다. 여행을 가지 말아야 할 정말 많은 이유들이 내 주위에는 있다. 돈도 그렇고 시간도 그렇고 상황도 그렇고 일도 그렇다. 마음의 부담 또한 그렇다. 그러나 가야만 하는 그 이유의 '강렬함' 하나만으로 짐을 싸고 공항으로 가 떠났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보통 여행을 가야 하는 이유가 '그리 강렬하지 못했던'사람이었으며, 그렇게 일상에 매몰돼 나를 붙잡는 수많은 이유들의 민원을 처리하며 쉬이 떠나지 못하며 살았다. 그때는 이렇게 내가 나를 관조적으로 바라보지 못했었고, 아무런 생각 없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고향 울산을 떠나 살았던 서울에서의 10년을 '또 다른 의미의 어떤 여행'이라고 생각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서울생활을 마치고 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해볼 수 있는 생각이지, 그때 나에게 서울에서의 10년은 '완벽한 생활'이었다. 나는 내가 서울을 떠날 거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으며, 타향이기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자라나기만 했을 뿐, 여행의 마음, 객의 마음, 방랑한다는 마음 같은 것을 전혀 가지지 못했던 것 같다. 즉 나는, 떠나야 하는 이유와 용기가 결여된 채 생활의 여러 이유들에 발 묶여 살아가고 있는 '겁 많은 보통 사람'이었다. 여행 가는데 쓸 수 있었던 많은 돈들은 옷과 물건들을 사는 데 쓰였고, 내 생활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가득 차고 더 비싸고 좋은 물건을 위해 살아가는 나날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부모님이 여행을 안 다녀봤던 사람이어서."나 "어릴 때 여행을 자주 안 다녀 버릇해서 다닐 줄 몰라서."와 같은 '여행을 가지 못한 이유'는 나를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그들의 노고를 외면하는 발언이므로 차마 할 수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못나게 부모 탓할 필요 없이 모든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그렇게 내 안의 헤르메스는 자유로이 방랑하지 못한 채 독방에 갇혀 오랜 시간을 홀로 외롭게 보내야만 했다.
2. 내가 통제를 회복하는 느낌이 들었던 첫 번째 여행
2016년 가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때 대만 여행을 갔다. 한가롭게 여행을 갈 상황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는 암투병 중이었고 집안은 흔들거림이 심해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냥 거기서 유학생으로 지내는 친구 하나 믿고 무작정 떠났다. 이제 와서 다시 돌이켜보면 여행은 그래야 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가지 않아야 할 이유와 상황들은 끝도 없이 줄을 서 있어서, 생각해보면 갈 수가 없는데, 그저 가야 할 이유 하나와 그 마음 하나만으로 떠나버리는 것. 내 다리 끝을 붙잡고 있는 수많은 이유들을 다 뿌리치고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와야 하는 것. 내가 그 이유에 매몰돼서 여태 여행을 다니지 못했던 게 아닐까. 무튼 그렇게 친구가 했던 "나 믿고 와."라는 말 한마디로 시작된 여행이었다. 그 대만 여행은 내가 나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는 느낌이 들었던 첫 번째 여행이다. 앞서 말했듯이 너무 힘들었던 시기에 다녀왔던 여행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던 시절이었다. 집안은 망가져가고 있었다. 모두가 힘들어서 지쳐가고 있던 시점이었다. 나는 직장을 관뒀었고 관두고 아빠 옆에서 병원을 다니며 병시중을 하느라 빛나며 지내야 할 20대 후반을 그렇게 잿빛 속에서 보내야 했다. 엄마는 혼자서 장사를 하느라 삶이 너무도 버거웠는데 그걸 한마디 불평 없이 꾸역꾸역 버티는 중이었다. 동생은 아예 집안일에 관심을 끊어버리고 등진채 자기 할 일 볼일에만 충실하며 집 밖을 떠돌아다녔다. 그렇게 다들 힘든 시기였다. 나는 그때 느끼기를, 집안에 매몰돼 내 인생을 송두리째 강탈당한 기분이 들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에 김해공항이었나 보다. 짐을 싸고, 공항으로 향하고, 수속을 밟고 비행기를 타고 떠오르는데 기분이 너무 자유로웠다. 나를 옭아매는 저 육지에서 해방된 기분이었다. 대만에 도착했다. 친구가 마중을 나왔었고 그렇게 짧은 2박 3일이었나 3박 4일을 보냈다. 별 것도 없었다. 친구 집에서 잠을 잤고,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었으며, 혼자 동네를 돌아다녔고, 타이베이의 관광지 두어 군데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친구가 다니는 대학교 안에 놀러 가서 캠퍼스 구경을 했고, 그 운동장 트랙 위에 벌러덩 누워서 푸른 하늘색 하늘을 봤던 게 기억이 난다. 너무도 자유롭고 만족스럽고 행복했던 여행이었다. (그 친구는 지금도 나에게 여행을 가자고 푸시를 하곤 한다. 참 고마운 녀석이다. 여행 가자는 사람 다 좋은 사람.) 그때의 경험이 너무 만족스럽고 행복했다. 평생 이렇게 이곳저곳을 다니며 자유롭게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때 전 세계를 떠돌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친구는 내게 '한국어 강사 자격증'이란 걸 따면 외국에서도 밥벌이는 하며 살 수 있다고 했다. 2박 3일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한국어 강사 자격증을 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아빠가 다 나아서 일상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면 나는 한국을 떠나리라. 이곳에서 벗어나서 평생을 방랑하며 살아야지. 그러나 아빠는 그 뒤 6개월도 채 안 되어 돌아가셨고, 나는 펼쳐보고자 했던 날개를 다시 강제로 꺾어 접어야만 했다. 그러고 공시를 다시 준비했고, 그 뒤로 5년이 지나 지금은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3. 그러고 다시 이 책을 읽기까지
그 지난 5년 간 우여곡절이 정말 많았고, 지금은 시장 한복판에서 엄마가 하던 가게에 들어와 일을 하고 있다. 아마도 엄마와 함께 하다 나중에 엄마가 장사하기 힘들어지면 내가 받아서 하지 않을까 싶다. 자영업자는 본격적으로 생활의 바닥에 온 몸을 묶어야 하는 일이다. 시스템으로 인해 시공간의 자유를 얻는 '사장'인 자영업자가 아니라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 이 일을 얼마나 할지 어떻게 될지는 이 우연과 불확실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감히 예측할 수 없지만 우선은 앞으로는 긴 기간의 멀리 가는 여행은 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 생각을 지금은 할 수 있지만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에는 나름의 생활의 절박함이 있어 시작을 했기에 "아 여행을 못 가겠구나. 슬프다."와 같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이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기 위한 지푸라기처럼 느껴져 꽉 잡았던 것이기 때문이다. 생활의 아우성에 귀가 멀어 또다시 나는 연약한 나의 헤르메스를 외면했던 것이다.
그렇게 생활의 바닥에 내 몸을 하나둘씩 단단히 묶어가고 있을 어느 시점에, 다시 '여행의 이유'를 집어 들게 됐다. 단순히 산문집을 찾다 흐르고 흘러 집어 들게 된 책이었다. 처음에는 장사 책이었다. 장사의 신이라는 어느 일본인의 책이었다. 그러나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묵혀두다 그다음엔 시집이었다. 이병률의 정서와 톤과 단어와 문장은 나와 아주 잘 맞다. 만족하며 읽었고, 그다음 시집을 또 샀다. 그러나 너무 맞지 않았던 탓에 책을 손 놓고 있었다. 시인들마다 개성이 제각각인 시집은 꾸준하게 가게에서 읽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뽑기운'이 어느 정도 좌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무난하게 잘 찾아 읽는 산문집으로 시선을 돌렸다. 첫 시작은 읽어봤었던 김훈의 '풍경과 상처'였고, 만족스럽게 잘 읽었다. 그다음에는 역시 읽어봤었던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였다. 그렇게 내가 또 여행에서 아주 멀어져서 지내고 있으면서 셔츠가 목을 조르듯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하던 순간에, 이 책은 내게로 왔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4. 이제 나는 여행자가 될 준비를 한다.
바르고 번듯하게 살다가 20살에 녹내장으로 큰 고생을 하고 삐딱해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마이너를 쫓으며 살다가 어느 순간엔 돈을 많이 벌고 싶어 용을 써보기도 했다. 그러다 다시 정주하고픈 마음을 가지려고 할 때쯤 아빠가 아팠고, 3년의 시간이 흐른 뒤 영원한 작별을 했다. 그 3년 동안에 다시 정주의 마음을 버리고 한국을 떠나 살고 싶은 마음을 품었던 나는 남은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미안함에 다시 억지로 철들어보려 공시를 준비했고, 합격해 공무원이 됐다. 남들이 볼 때 괜찮은 직장, 남들과 같은 출근과 퇴근 그리고 평일과 주말, 또 결혼과 육아라는 것을 하고 살려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러나 나의 '이상한', 마치 '심술과도 같은' 그 기질은 끝끝내 그런 길을 거부했고, 나는 그렇게 또 메인로드에서 튕겨져 나와 익숙한 샛길로 빠져들어 시장에서 장사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그 메인로드로 진출할 생각이 없다. 능력과 배경 또한 없기에 더더욱 그쪽을 향하는 시선을 두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체념과도 같은 어떤 강제성을 띈 마음의 선택을 하고서 갑갑함을 느끼고 있을 때 '여행의 이유'를 집어 들었고, 나도 김영하와 비슷하게 "그래, 이 생에서는 그렇게 살기는 글렀어. 마음 내려놓고 자유롭게 방랑하며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도 모를 가슴 찡함이 올라왔고 눈시울이 붉어질 뻔하기도 했다. 뭔가 살 방향과 방법을 잃고 '멘털 털린 채' 부지런하게만 살고 있는 나에게, 내가 마음속에서 진짜 가고 싶어 했던, 그러나 스스로 알아채지 못했던 그 길을 자신의 삶의 고백을 통해 김영하가 알려준 것만 같았다. 앞으로 주기적으로 계속 이 책을 읽을 것이다. 삶에 매몰돼 내 마음속 헤르메스를 잊어가고 그에게 또 족쇄를 채우려 할 때쯤에, 나는 다시 이 책을 집어 들 것이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과감하게 이 일상에서 탈출해 내 몸을 하늘 위로 떠올릴 것이다. 떠나는 느낌. 그곳에서 '노바디'의 객으로 지내는 느낌. 그리고 다시 돌아와 일상에서 흙먼지 묻히며 굴러다닐 에너지를 얻는 것, 그리고 그 에너지로 생활 속에서 힘을 모아 다시 나의 본캐인 '노바디'의 삶을 살러 세상 밖으로 떠나는 것. 그렇게 반복하며 평생을 살고자 하고, 그럴 수 있길 바란다. 아니 그렇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