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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Feb 21. 2022

어딘가를 떠나며

für die Zukunft

퇴사를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3월 중순까지만 나올 것이라고 통보했다. 나머지 연차를 모두 소진한 탓에 저번주 금요일이 마지막이었다. 첫 직장이었던 곳이고, 햇수로는 5년, 만으로는 4년 반을 다녔다.(마치 요근래 인기있었던 소설의 첫소절과 비슷한...)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취업준비를 하던 때와 연수를 받던 시간, 그리고 입사 후 천안과 기흥에서 지낸 시간과 여기서 알게 된 많은 사람들까지. 늘 좋았던 때만 있는 것은 아니었고, 아버지는 이런 경험들이야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거라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회사에 합격하고 한동안은 정말 기뻤었다. 공익복무를 마치고 마지막 한 학기를 다니며 들은 에너지공학 수업에서 리튬이온배터리에 대한 이론적 개념과 배경을 처음 접했고, 어쩌면 그것이 다가올 미래에 대한 훌륭한 대안임과 동시에 지구를 위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퇴사한 회사에 들어간 것이 좋았다. 사실, 이곳이 아니라 국내의 다른 배터리회사에 갔어도 좋았을 테지만. 어쨌든, 그 상상은 조금씩 깨져서 지금 선택에 이르렀던 것 같다. 회사와 나는 서로를 알아갈수록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그것은 한국 사회에 깊에 박혀있는 문제와 연결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시스템에 대한 문제. 대기업의 시스템은 잘 짜여져있다(well-organized)고 생각될 수 있지만 그것들은 거의 지킬 수 없는 납기 때문에 예외를 두거나, 좀 더 윗 사람의 결정으로 무시될 때가 있다. 그럴 땐 '이럴 거면 이런 시스템을 왜 만든 것이지?'라는 의문이 든다. 

이것과 연결된 두 번째, 한국 사회에서 노동을 대하는 시각. 이곳만 그런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직도 한국은 소위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결과(output)'을 뽑는 것을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60~80년대에서는 통할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현재는 아니다. 기술 수준은 점점 고도화되어가고, 이런 시대에서는 '효율'보다는 빛나는 창의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율성을 보장하고 충분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세 번째이자 마지막 이유인 '맹목적인 자본주의'에 있다. 


한국은 미국만큼 자본주의에 열광하는 사회이고 소비를 지향한다. 유럽의 어린 아이들이 벌써 '소비'에 죄책감을 느낄 때, 한국에선 시도때도 없이 멀쩡한 아파트를 부시고 재개발/재건축을 실행해 부를 축척하는 수단으로 쓰고 TV/인터넷/SNS에서는 상품광고들로 가득하다. 더 화려하고, 더 값비싸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이런 가치에 익숙하다. 이런 자본주의가 잠식된 사회에서 회사의 목표는 단 하나, '최대한의 이윤을 남기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 '돈을 벌어야 된다는' 것. 따라서, 내가 본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멀리보기 보단 당장 눈 앞의 이익을 위해 효율을 강요한다. 회사에서 들었던 말도 그것과 같았다. 그 말을 했던 사람들은 달랐지만, 내가 회사에서의 불합리나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늘 돌아오는 말은 이랬다. 

'회사는 돈을 버는 곳이다.' 라던가 '힘든 건 조금만 버티면 된다.' 난 그렇게 4년을 버텼지만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최대한의 이윤을 남기는 시스템에 미래사회에 대한 걱정과 대비는 없는 것 같았다. 말로만 떠드는 ESG경영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당장 수주에 급급한 나머지 무시되는 제품검증 그리고 사고가 일어나면 아직도 노동자의 실책으로 귀결되는 뻔한 K-산재의 결말. 이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는 결집이 필요했지만, 이 조직의 위에는 너무나 거대한 것이 있었고, 이미 각자도생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집의 동기가 부족했다. 

또한, 내가 직접 체험한 상처들. 믿고 따르던 사람에게 내팽겨치고 전혀 어른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며 괴롭히고, 인사팀은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애썼다는 것. 작년 이맘때 쯤, 회사에 1~2년차 사람들이 우르르 이직이나 퇴사를 했을 때, 들리는 말로는 각 부서의 그룹장들에게 지침을 내려 저연차(1~3년) 사람들을 면담하고, 그들의 회사 적응 및 퇴사 생각 여부를 단계로 표시하라고 한 것. 퇴사하는 사람에게 그 이유를 말하지 않으면 타회사로의 이직으로 간주하겠다는, 거의 협박에 가까운 말들을 소문으로 들은터라 내가 지금 21세기의 소위 대기업이라고 하는 곳에 있는게 맞나?라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던 때도 있었다. 


그래서 결국 결심했다. 이곳을 떠나기로. 같은 한국이라면 이곳이던 저곳이던 같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해외로 눈을 돌렸고 그곳은 독일이었다. 예로부터 나는 독일 유학에 대한 꿈이 있었다. 평준화된 대학, 교육에 대한 평등, 미래를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 이곳에서 내가 다시 시작한다면 내가 입사 초기 그토록 바랬던 지구를 위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화학공학의 태동은 1900년대 초반 미국이었다. 화석연료를 사용하여 기름을 분리해야 했고, 석유에서 뽑아낸 여러 물질로 인류에게 필요한 제품들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거대한 공장을 돌렸고, 값은 낮추면서 생산량을 높이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런 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학문이 화학공학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학문이 지구와 인류의 위기를 초래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인류를 지킬 방법에도 그 학문이 필요할 때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할 내 자신의 첫 단계로서, 나는 석사 유학을 시작하려고 한다. 아직 미래는 모른다. 배터리 재활용 같은 친환경을 주제로 가는 것이 가장 확률이 높아보이지만, 공부를 하다보면 내가 취업 준비를 했던 시절처럼 또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릴지도 모른다. 


저번주 금요일, 퇴사를 한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어디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솔직하게 '공부하러 그만 둔다'라고 말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거짓말치지말라고, 너도 현대로 가느냐고 물었다. 그것에 대해 나는 확실하게 말하려 한다. 현대가 아닌 후대를 위해 유럽으로 간다구요, 라고. E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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