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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Mar 16. 2022

균형을 이루는 불균형성

기만의 언어로 구성된 <굿보스>

※ 본 글에는 영화 <굿보스>의 상세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정치는 기만의 언어라고 했다. 저번 달 말에 본 스페인 영화 <굿보스>도 그랬다. 우선 제목부터 훌륭하게 기만했다. 외국어 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는 배우에 관한 것인데, 앞서 <어나더 라운드>편에서 말했듯 할리우드에서 보던 배우가 자국의 영화에서 모국어로 연기하는 것을 볼 수 있음에 하나, 그리고 아예 알지 못했던 새로운 배우들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또 하나가 있다. <굿보스>에는 하비에르 바르뎀이 나온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소화기를 든 시종일관 타노스(조쉬 브롤린)와 대치했던 사이코패스는 이제 온데간데 없어지고, 대신 머리가 하얗게 바랜 중견기업의 사장님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사장 ‘블랑코’는 스페인 전역에서 온갖 종류의 저울을 파는 ‘블랑코 스케일즈’를 소유하고 있다. 대기업이라기 보단, 공장 한편에 사장 및 지원팀의 건물이 있는 걸로 보아선 강소기업임이 분명했다. 그의 첫 등장은 친근해 보인다. 직원들을 향해 앞으로 몇 주 후 있을 ‘감사’를 대비하여 직원 ‘가족’ 여러분이 힘써줘야 한다고 연설한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듯 ‘가족’이라는 단어는 보통 한국어로 넘어오면서 ‘좆같은’으로 치환되고 앞으로의 영화 내용도 그와 다를 바가 없다. 



그의 앞에 놓인 상황은 여러 가지다. 1) 그와 오랜 세월 회사를 일구어온 ‘미랄레스’가 업무에 집중을 못하고 2) 인턴으로 들어온 ‘릴리아나’는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한편 3) 회사에서 부당하게 해고된 ‘호세’는 회사 앞에서 자리를 잡고 농성을 시작한다. 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며 블랑코의 입장을 따라가면, 나라도 미칠 것 같은 느낌이다. 위에서 언급한 상황들은 점점 최악으로 치닫고, 그것들은 모두 ‘우수기업’으로 거듭나야 할 ‘블랑코 스케일즈’의 앞길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던 ‘정치의 문제’가 서사로 들어온다. 블랑코는 사업가 기질을 이용해, 이 모든 문제들을 정치적으로 풀려고 한다. 미랄레스의 문제가 배우자의 외도란 것을 알고, 부인을 찾아가 그것에 대해 모르는 척하며 다시 잘 지내보라고 말하기도 하고, 릴리아나에게는 사장이란 직함을 이용해 접근 한 뒤 관계를 가진다. 점점 훌륭한 농성을 하는 호세에 대항해서는 그가 어린 딸의 교육/보육권을 져버리는 것이 아니냐고 관할 경찰에 익명 신고를 한다. 이것은 모두 공작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미랄레스의 부인은 알고 보니 본인 회사에서 일을 잘하는 물류팀의 관리자와 불륜관계였고, 미랄레스는 본인의 비서와 간통을 하고 있었다. 결국 그가 한 선택은 오랜 친구를 버리고, 물류팀 관계자를 미랄레스의 자리에 앉힌다. 물론, 미랄레스가 그의 더러운 짓을 언론에 말한다는 수를 미리 파악하여, (영화 장면엔 나오지 않지만) 비서를 압박하여 미랄레스가 성폭행을 했다는 증언을 받고 그가 가지고 있던 자료를 폐기시켜 버린다. 



한편, 릴리아나는 알고 보니 본인과 친한 친구의 딸이었다. 한마디로 경력을 쌓게 해 주기 위해 블랑코 모르게 그녀를 붙인 것이다. 하지만 릴리아나는 그것을 이미 다 알고 있었고, 그녀는 저울과 블랑코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장인 그와 잠자리를 갖고, 뒤늦게 그 사실을 안 블랑코가 그녀를 내쫓으려 하지만 외려 그녀는 자신의 야망을 펼치고 결국 인턴 기간이 끝나고 그와 거래를 통해 마케팅 팀장이 된다.



한편, 데모의 수위를 높여가던 호세는 어느 날 밤 비행청소년들에게 구타를 당한다. 차는 불태워지고, 사방이 피투성이다. 사실 이 일이 일어난 근본도 모두 블랑코의 계산이었다. 자신이 하찮게 대하는 경비에게 웬일로 자신이 초대받은 발레 티켓을 선물하여 그동안의 결례를 보상하는 척하면서, 영화 초반 본인에게 은혜를 입은 제조팀의 늙은 직원과 그의 아들(비행청소년)에게 보은으로 호세를 구타하도록 지시한 것. 하지만 여기에서 직원의 아들이 죽는다.



그러나 더러운 일을 하다 죽은 사람의 장례는 누구보다 숭고한 희생이라고 기억되고, 블랑코는 결국 모든 일을 정리하는 데에 성공한다. ‘감사’는 성공적으로 끝나고 그는 끝끝내 ‘우수기업’ 타이틀을 손에 쥔다. 영화 내내 저 사람이 잘못되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영화를 보며 내내 들었던 생각 중 첫 번째는, 각본이 아주 치밀했다는 것. 우선, 주인공이 운영하는 회사가 저울을 생산한다는 점이 이 모든 상황의 메타포에 들어맞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에 흔들리지 않고 마쳐야 하는 블랑코의 입장이나, 본인에게 생긴 일에 대하여 하나를 취하고 하나를 내어주는 그의 모습. 하지만 +1와 -1의 합이 현실에선 0이 아닐 때가 많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0이라고 속이기 위해 저울 밑에 작은 총알을 붙이는 장면까지. 여기에 다다르면 이제 공정 내지 공평 혹은 균형이라는 객체가 저울로서 증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조작된 저울에 의해 실체 없는 밸런스가 이루어지는 것을 관객으로서 목격했다. 



그리고 두 번째 생각은, 아마도 현실에서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리 난 것. 가끔 영화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입하는 역할도 하지만, 가끔은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관객들에게 현실감을 주입하여, 영화가 끝나고 나올 땐 나도 모르게 마치 신장개업한 고깃집 앞의 풍선인형처럼 주입된 증오로 머리를 내저으며 손사례를 치게 된다. 


그래서 영화 말미에 우수기업 상패를 벽에 거는 장면에서 나는 그것을 확고히 알 수 있었다. <인셉션> 마지막 장면에서 디카프리오가 돌린 팽이는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을 듯 회전하지만 나는 그것이 넘어질 것이라고 (거의) 확신했고, 후에 크리스토퍼 놀란도 그럴 것이라고 넌지시 얘기했다. <굿보스>의 상패도 그랬다. 벽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지만, 그것은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것이 절대 떨어지지 않도록 블랑코가 온 힘을 다할 테니까. 그것이 어떤 거대한 힘, 이를테면 중력이 바뀌던가 하는 근본적이 변하지 않는다면, 의 개입이 없는 한은 블랑코의 권력을 이길 순 없을 테니까. 마음껏 관객을 기만하는 <굿보스>의 감상은 여기까지다. E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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