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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Mar 01. 2022

피자와 해변

<리코리쉬 피자>와 <해탄적일천>에 관한 두서없는 줄거리와 단상

*도입에 앞서서, 이들 두 영화는 대만과 캘리포니아라는 각각의 공간에서 젊은이들의 1970년대를 다룬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한편 리코리쉬 피자는 PTA의 가장 최근작이고, 해탄적일천은 지금은 유명을 달리한 에드워드 양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데에서 흥미로운 교차지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대만
유학을 떠나 13년 만에 타이베이로 돌아온 ‘탄 웨이칭’의 이야기로 영화가 진행되겠구나,라고 생각했지만 웬걸, 영화의 거의 대부분이 그녀의 옛 연인의 여동생인 ‘자리’와 그의 연인이나 남편인 ‘더웨이’와의 70~80년대를 집요하게 따라갔다. 오랜 시간 만에 만난 그들 사이에는 미쳐 말하지 못한 비밀 같은 사실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캘리포니아

따가운 햇살은 내리쬐고, 갓 중학교를 졸업하는 ‘개리 발렌타인’은 졸업사진을 찍던 중 자신보다 몇 살은 연상인 사진관 직원 ‘알리나 하임’에게 한눈에 반한다. 알리나는 ‘너와 사귀는 것은 범죄’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약속한 장소에 나가고, 그 후로 둘은 나선처럼 얽혀간다.


다시 대만

오빠가 ‘탄 웨이칭’과 결혼하는 대신 정략결혼을 택하고, 본인도 아버지가 정해준 짝과 결혼하겠다는 것을 직감한 ‘자리’는 집을 나와 ‘더웨이’를 찾아가고, 약소한 결혼식을 올린다. 둘은 앞을 바라보고 서로의 손을 잡는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서로를 의지하며 열심히 살아가자고 약속한다. 



다시 캘리포니아

뚜렷한 목표 없이 살아온 알라나가 오히려 삶에 대한 확신이 넘쳐나는 개리의 매니저가 된다. 그러나 아역 배우 출신인 개리의 몸은 이미 너무 커버렸고, 어느 날 들어간 가게에서 물침대 광고를 보고 그것을 사업으로 삼고 팔기 시작한다. 알라나는 개리의 아역배우 지인과 사귀다가 헤어지고, 개리는 친분이 있어 보이는 다른 여자 아역배우에 빠져있다. 그렇게 둘은 엇갈린다. 


해변

더웨이가 해변에서 실종되었다는 전화가 경찰에게 오고, 자리가 그곳을 방문한다. 그 시점은 이미 둘의 사이가 많이 틀어진 뒤다. 둘의 결혼생활은 더웨이가 친구의 회사 이사를 맡고, 운 좋게 큰돈을 벌면서 오히려 불행으로 가는 노선으로 변경됐다. 지킬 수 있는 약속들이 약간의 어긋남이 쌓아지며 고의로 변하고, 고의는 거짓말과 외도로 이어진다. 



할리우드

물침대 사업이 어려워지고, 개리와 알라나 그리고 몇 명의 어린 직원들은 트럭을 타고 할리우드에 간다. 유명한 배우 집에 들어가 물침대를 설치하고, 기름이 없는 트럭을 알라나가 위태롭게 운전한다. 연료가 없어도 경사만 있다면 차는 움직일 수 있다, 라는 점이 극 중 인물들의 심리상태와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알라나는 가까스로 주차를 하고, 어떤 선거캠프로 거처를 옮긴다. 개리는 핀볼장 사업을 시작한다. 둘은 크게 싸우고, 이제 거의 서로를 안 볼 각오도 한 모양이다. 


다시 해변으로

영화는 자리와 더웨이의 결혼생활의 현재와 과거를 자유롭게 오간다. 출장인지 밀회인지 모를 더웨이의 해외 외출 후 자리도 친구와 놀다가 만난 어떤 남자에게 호감을 느낀다. 딴에는, 허전한 마음을 잡아보려 꽃꽂이를 배우러 나간다. 어느 날엔 그곳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어떤 여자가 찾아와 자신이 내연녀라고 밝히며, 선택을 할 줄 모르는 우유부단한 더웨이가 이러한 상황을 일부러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를 사랑하냐? 는 질문에 내연녀는 ‘그런 건 없어요.’라고 답한다. 



피자

리코리쉬 피자는 70년대 미국에 있던 레코드 샾의 이름이다. 리코리쉬는 감초이며 검은색이고, 피자는 피자면서 둥그렇다. 그렇다. 리코리쉬 피자는 레코드라는 개체를 다른 두 개의 명사 (하나는 형태/하나는 색깔)로 바꾼 이름이다. 제목과 가수는 알 수 없지만 신나는 올드팝이 쏟아져 나온다. 애석하게도 나는 90년대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라 문화적 배경이 그리 깊지 않다. 


바다

해탄적일천은 ‘바닷가의 그날’이라는 뜻이다. 더웨이는 과연 그날, 그 해변에서 죽었던 걸까? 죽지 않았던 걸까? 경찰이 이것저것 증거물품들을 가져오지만, 확증은 없다. 현실에서는 이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다. 자리의 생활에 있어 이 사건이 가져온 파장이 중요하다. ‘그’가 죽었는지가 아닌 ‘그녀’가 어떻게 변했느냐가 중요하다. 



다시 피자

좋아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은 좋아하면서도 그만큼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얼까. 왜 서로를 겉도는 가? ‘사랑은 금이고 시간은 도둑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피자도 시간이 지나면 식고 맛이 없어진다. 유통기한을 아슬아슬하게 지키거나 늘려가며 줄타기를 하는 개리와 알라나를 보며 연애에 대한, 혹은 그 감정에 대한 생각들이 맴돌았다. 



다시 바다

80년도 초반 영화와 촬영 시의 열악함? 이 있었는지 사운드가 명확지 않은 지점들이 많았지만, ‘에드워드 양’의 편집을 통한 스토리의 구성 및 설득 능력은 이미 훌륭했다. 십 년이 넘는 영화 속 배경에서 한 명의 중심인물과 그를 둘러싼 이야기를 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감독은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그녀의 삶을 써 내려갔다. 이런 작품이 있었기에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과 <하나 그리고 둘>이 나올 수 있던 거였구나. E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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