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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Mar 20. 2022

이제는 울지 말아요

<스펜서> (Spencer, 2021)

*본 글엔 영화 <스펜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Intro :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다이애나 스펜서의 싱크로율이 놀라워서 기대됐던 영화 <스펜서>를 종로의 에무시네마에 가서 관람했다. 참고로, 에무시네마는 오늘(3월 19일)이 첫 방문이었는데 매주 한 영화를 정하여 그 영화에 맞는 음료를 만들어서 팔았다. 이번 주는 <스펜서>가 그 대상이었고, 테마에 맞는 ‘다이애나 티’를 구입하여 마신 뒤 3층의 조그마한 2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영화 이야기 : 

실존인물에 관한 전기영화를 만드는 게 있어서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떤 시기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라고 생각한다. (감독도 안 해봤으면서) 본 영화의 감독은 다이애나의 이혼 전 1991년의 겨울을 그 시점으로 잡았고, 실존인물을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그해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삼일 동안 영국 왕실의 한 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뤘다. 그래서 각각 약간의 장 구성으로 Christmas Eve – Christmas – Boxing Day라고 시간이 표현됐다. 참고로, Boxing Day는 잉글랜드 축구리그를 볼 때 처음 들었던 표현이라 축구계에서만 사용하는 줄 알았었는데 12월 26일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영화가 좋았던 점은 우선,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수수께끼라고 생각하는 그녀(다이애나)의 죽음을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미 일어난 일이니 사람들은 그 결말을 알고 있었다. 너무나 가슴 아플 수 있는 그 장면을 반복하면 그 비극만 반복되며 영상에 남았을 것을 생각하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앞서 말했듯이 주연배우와 실존인물의 매칭률이 정말 높았다. 그 당시 그녀가 했던 머리스타일과 옷을 배우를 통해 거의 그대로 재현한 것도 있겠지만. 그리고 크리스틴 스튜어트 역시 스크린 안에서 그녀(다이애나)를 재현하기 위해 노력한 것 같다. 



다이애나가 결혼생활과 왕실 생활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것을 크리스틴이 편집증적으로 잘 표현했다. 정신질환이 있었다는 식으로도 묘사되는데, 주인공의 시점에서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녀가 보는-실제든 환상이든-것을 따라가는 방식이다 보니 마치 <더 파더>의 이야기의 전개 방식과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더 파더>에서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남자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스펜서>는 대화가 많이 있다기보다, 마치 안개가 어느 정도 끼어있는 곳에서 클래식 음악(내지는 그룹사운드?라고 해야 할지)이 깔리며 그녀의 정신세계로의 여행에 동참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조금 졸릴 수 있다.)



‘비극을 바탕으로 꾸민 이야기’라는 표현에서 나오듯, 다이애나가 91년 겨울 실제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를 강하게 억누르고 있던 과거에서 그녀가 잠시나마 벗어나 해방감을 맞을 수 있었다는 것. 영화에서는 (아마도)이 사건 이후로 그녀가 변화를 결심한 듯한 뉘앙스를 보여준다. 영화 말미에 자신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데리고 그녀가 바랬던 중산층의 삶을 잠깐이나마 만끽하며 행복과 안도감을 느끼는 장면을 보며, 나 역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페라리를 몰고 KFC로 가는 건 조금 웃겼다.)



한편, 샐리 호킨스가 분한 의상 담당자 ‘메리’는 실제 인물에서 영감을 가졌을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역할은 <체르노빌>에서 나온 어떤 여자 과학자와 비슷한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체르노빌>의 그녀는 엄청난 재앙을 맞선 모든 사람들을 대표한 것이라고 들었는데, <스펜서>의 메리도 ‘다이애나, 당신을 사랑했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아, 그때 당시 그녀를 좋아하고 존경했던 수많은 영국의 사람들을 축적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녀는 영화에서 두 아들을 제외하고 다이애나가 터놓고 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 중 하나였다. 



크레딧에서 유추하길, 영화의 로케이션은 영국과 독일 양쪽에서 진행된 것 같았는데 로케이션이 너무나 좋았다. 별장이 있을 법한 조용한 시골의 들판과 하늘이 너무나 예뻤다. 미술적으로도 <스펜서>는 훌륭하다고 느꼈다. 그 당시에 다이애나가 입었던 의상들의 재현과, 한편으로 그녀를 조여 오는 빡빡한 3일의 일정 동안 바비인형처럼 매 식사/이벤트마다 바꿔 입어야 할 옷들. 그리고 플래쉬백을 통한 다이애나가 입었던 웨딩드레스와 원색의 원피스들은 아름다웠지만 다이애나의 슬픔 또한 묻어 있었을 것이다.



강렬했던 장면 : 
 진주 목걸이는 그녀를 묶는 어떤 족쇄처럼 느껴졌다. 찰스 왕세자는 이미 다른 여자와 외도를 하고 있었고, 다이애나의 그 진주 목걸이는 그가 내연녀에게 준 것과 같았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영화에서 진주 목걸이는 두 번 끊어진다. 저녁식사자리에서 수프를 먹을 때 (상상이겠지만) 목걸이가 끊어지며, 다이애나는 수프에 떨어진 진주 목걸이를 숟가락으로 억지로 떠먹는다. 그리고 두 번째, 밤에 자택을 빠져나와 본인이 살았던 저택에 들어갔을 때. 계단에 몸을 던지려는 찰나, 자신의 삶을 지속해야겠다는 어떤 확신이 든 이후 실질적인 해방의 의미로 그것을 다시 끊어낸다. 


그 외 : 

-. ‘앤 불린’이라는 16세기 영국 여왕이었던 사람의 서사가 나오는데, 영국 역사를 자세히 알 순 없어서 스펜서와의 연결고리를 탐구하려면 이 사람에 대한 정보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내에서 간단히 나오는 바로는, 왕비로 지내면서 결국엔 참수형을 당했다고 나온다. 

-. 아직 ‘배트맨’을 보진 못했지만, 한 때 연인이었던 로버트 패틴슨과 크리스틴 스튜어트 모두 필모그래피를 착실히 쌓아가며 두 명 모두 좋은 배우가 된 것 같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퍼스널 쇼퍼>, 로버트 패틴슨은 <테넷>과 <라이트 하우스>의 연기가 좋았다. E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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