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KulturHeft

금조이야기

전쟁의 상흔, 한국전쟁뿐만이 아닌 이야기

by soripza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 극장에서 <금조 이야기>를 보고 쓴 글입니다. 극을 보고 나온 후 든 생각을 두서없이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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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상황(일곱 살 난 자신의 딸을 찾는 금조, 그리고 개마고원의 수력발전소에 흘러들어온 아무르 표범의 이야기)이 교차되며 이야기가 진행되고, 종단에 이어지는 구조로 되어있다. 20세기의 두 번째 세계대전과 그 대전이 식기도 전에 일어난 한국전쟁. 극의 대사처럼 '서로 아는 사람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죽이는 행위'가 일어나고 행해진다.


연극에서는 사람들이 참 많이도 죽는다. 술에 취해 죽고, 빨갱이로 몰려 죽고, 일본군 총에 맞아 죽고, 개에 물려 죽고,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죽고, 동료가 죽고, 동료의 철모를 가지고 다니다가 굶어 주고, 추워 얼어 죽고, 시체를 제대로 묻을 순 있었을는지 모르겠다. 희망이 없는 삶들은 죽음조차도 힘이 없다. 어떤 죽음은 사람들의 눈에 목격되고 재현된다.


<금조 이야기> 이것은 주인공 여자의 이름이자, 그 여자가 자신 딸의 이름을 잊고 말하는 이름이기도 하며 마지막 장면에서 아무르의 이름이 금조로 바뀌면서 둘의 이야기가 마침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너야. 너는 나야.


일곱 살 난 딸은 어딨니? 금조는 피난의 역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들개 같지 않은 들개가 그를 뒤따른다. 엄마 어디 갔어? 개마고원에 만든 수력발전소 때문에 온 숲이 불타고 어미를 잃은 어린 아무르 표범이 운다.


부잣집 여자의 종은 죽은 주인의 몸에서 루비반지와 탈 수 없는 1등석 기차표를 훔친다. 역무원은 그런 종을 죽인다. 시인은 반전시위를 하고 역무원을 죽인다. 그도 군인을 싣고 가는 기차에 치어 죽었다.


금조와 아무르는 서로의 결핍을 찾아 헤매는 존재다. 전쟁 때문에 일어난 결손. 한편, 모리타는 표범을 훈련하여 사냥을 나가고, 총감의 취미생활을 위해 조선인을 사냥시킨다. 그의 친구이자 수력발전소의 노구치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정도로 망가져버린 그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처음부터 (아무르를) 죽였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그 말이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말만은 정확하다. 처음부터 전쟁이 없었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아무르 표범은 훈련에 따라 행동한다. 휘슬을 불면 조선인을 헤친다. 시인의 아버지가 그렇게 죽는다. 아무르는 야수며 짐승이다. 피 냄새로 물들여있다. 하지만 패전 후 주인이었던 모리타의 마지막 말, '개가 되어라, 사람을 피하라.'라는 말을 듣는다. 이제 그는 큰 사냥감 대신 개구리를 잡아먹고, 많은 시간이 흘러서는 흘러 흘러 들어온 산기슭에서 금조가 뿌리는 메밀씨앗을 먹는다. 그는 이제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때, 그 표범 아니 개, 의 인생에서 두 번째 전쟁이 일어나고 그 개는 다시 인간 금조를 만나 일곱 살 난 딸 애의 옷 냄새를 맡고 여정을 시작한다.


금조는 주인 여자에게 따진다. 왜 그날도 메밀밭으로 보내셨어요? 아무리 씨를 뿌려도 메밀은 나지도 않고. 그리고 왜, 전쟁이 나던 날도 나를 그 먼 메밀밭까지 보내셨어요? 사람들이 도망가고 나는 딸을 잃었는데. 하지만 거기에서 그녀는 딸의 존재를 대치하는 들개 아무르를 만났고, 그 모든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곳에서는 메밀꽃이 그녀를 반겼다.


(잠시 정상적인 이야기) 배우들의 역할 배치가 좋았다. 이 역할을 한 누군가가 다른 장면에서 누군가로 나오는데, 그것은 매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서로 다른 배역이지만, 동일인이 연기하는 장면에서도 그가 전쟁 때문에 죽으면 다른 장면에서 사라진다.


극이 진행되면서 전쟁의 상흔이 계속 무대에 남는다. 이제 더 이상 사람의 손을 거치는 소품이 아닌데, 그것들은 차곡차곡 쌓이며 무대 한편에서 관객들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철모/군 반합/군장... 무대 정 가운데에 있는 흙은 어떤 배경도 될 수 있다. 메밀밭/아무르의 마당/어느 산골짜기 등등.


전쟁은 계속 일어나는데, 이것은 과거의 일이 아니다. 시리아에서도 우크라이나에서도 미얀마에서도 금조나, 아무르 표범 혹은 연극 안의 모두가 될 일들이 벌어진다. 그리고 연극에서 죽어버린 유령들이 존재한다. 끝 장면에서 아무르 표범이 금조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장면은, 본인이 저질렀던 죄들을 씻으며 이제 본인의 부모이자 본인 자신이 된 금조를 일치화 시키는 장면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4시간이 넘는 시간이었지만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ENDE


*사진출처 : 국립극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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