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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Apr 15. 2022

열정 (믿지 못한다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시발점?

*해당 글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여러 영화(<아사코>, <해피아워>, <열망>)의 내용적 스포일러가 살짝 들어가 있습니다.



요새 가장 촉망받는 (국적을 뛰어넘어) 감독 중 한 명은 당연히 일본의 '하마구치 류스케'일 것이다. 예술의 영역-라고 쓰고 평론가들이 좋아하는-에서 그의 영화는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처럼 보인다. 나 역시 그랬다. <아사코>를 보면서 뭐, 이런 영화가 다 있지?라고 놀라고, 평론가의 해설을 들으면서 또 한 번 뭐 이렇게 영화를 구성하지?라고 놀랐었다. 그래서 좋다. 아직 젊은 편이 그가 앞으로 또 어떤 영화를 들고 나올지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코다> 편에 이어서 말하자면, 내심 나는 <드라이브 마이 카>가 작품상을 받길 바랬다. 두 시간 반쯤 되는 러닝타임을 가진 이 영화는 근래 본 어떤 영화보다도 농도가 짙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지만, 그것은 단편이었고 그것들을 다시 쌓아 올려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영상화를 시킨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해외에서의 상 소식도 줄줄이 들렸다. <아사코>도 좋은 평을 받았지만, 이후로 이어지는 그의 수상은 아카데미를 제외한 세 곳의 국제영화제에서 모두 들렸고, (2021년에 <드라이브 마이 카>로 칸영화제 각본상 / <우연과 상상>으로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 감독을 아니었지만 <스파이의 아내>로 베니스 영화에서 은사자상) 아직 보지 못한 <우연과 상상>을 제외하고 수상 결과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감독의 초기작들을 접할 때가 있다. 그것은 실망일 때도, 기쁨일 때도 있다. 내가 요새 가장 좋아하는 크리스토프 페촐드의 초기작을 특별전을 통해 작년에 접할 수 있었는데, 그의 영화는 처음부터 좋았던 것 같다. 카메라의 사용이나 장면에 이어 붙임은 아직 덜 가공(되거나 덜 세련)된 느낌이 있지만, 그가 영상언어로 어떤 점을 관객에게 들려주고 싶은 지는 명확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마구치 류스케의 장편 데뷔작 <열정>이 에무시네마에서 상영된다는 소식을 듣고 예매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이날 영화 두 편을 봤고, <열정>은 <코다>가 끝난 뒤 정확히 20분 뒤에 봤다.) 대학원 졸업작품이라 영상의 느낌은 투박했지만, 내가 영화를 다 보고 느꼈던 감정은 페졸트의 영화를 본 뒤와 비슷했다. 그 역시 그가 줄기차게 말하고 싶은 주제가 있는 것이구나,라고.  



<열망>은 몇 명의 젊은 친구들이 만나는 지점부터 시작하는데, 이들 간의 오묘한 인간관계에 대해 그리는 작품이었다. 이런 설정은 고스란히 이어져 그가 처음 국제적인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해피 아워>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영화 초반 모든 주인공 인물들이 스페인 음식점 'El secreto(비밀)'에 모인다. 누군가는 임신을 축하하고, 누군가는 결혼을 축하한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표정은 오묘하다. 분위기도 그렇다. 마치 그들이 서로에게 건넨 말들을 되새기고 해체해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만난 스페인 음식점은 너무나도 노골적이면서 직접적이라고 느꼈다. 과연 어떤 비밀이 그들에게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안에는 서로를 향한 알 수 없는,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확인하고 싶은 혹은 누군가에게는 시험하고 싶은 열망들이 가득했다. 가령 A와 B가 사귄다. C는 D와 사귄다. 하지만 A는 사실 D를 오래 좋아했고, C는 D와 결혼까지 약속했지만 B와 끌리는 형태의. <해피 아워> 때도 그랬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이들 서로의 관계는 위태해지며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질주한다.


영화의 한 축에는 '사랑'에 대한 의문이 있고, 또 다른 한편에 '폭력'이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폭력'에 관한 쇼트는 위의 D라는 인물이 학교 선생으로서, 학기 마지막 날 아이들에게 '폭력'에 관한 질문을 하면서 이루어지는데 약간 인위적이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영화 내부에서 주인공들이 느끼는 중요한 감정과 이어져 있기 때문에 좋았다고 생각한다. 폭력에 대한 D의 생각은 이렇다. 내 안의 폭력은 내가 참음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타인으로서의 폭력은 내가 그것을 용서함에 달렸다. 하지만 이것 역시 흔들린다.



중간중간 영화에서는 도덕과 윤리를 건드리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것은 이후 감독의 영화에서 언급했던 것들과 비슷하고 (<아사코> / <해피 아워> / <드라이브 마이 카>) 나는 마찬가지로 이런 영화들을 보며 나의 윤리관을 다시 생각해보기도 했다. 연인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부부라는 것은 무엇인가. 믿음으로 쌓아 올린 관계가 탄탄한 걸까? 혹시 그 집을 쌓아 올린 것이 믿음이라는 탈을 쓴 다른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의 결론을 말하자면, '겉'으로는 모든 관계가 처음으로 돌라온다. 탈선을 하지만 그 탈선은 실패하고,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기회를 달라며 눈물을 흘린다. 이제 이 관계들에서 순수는 없다. 상처의 기억이 남는다. 이 '상처'라고 부를 수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 그의 영화의 핵심이고, 그 사건을 겪은 뒤의 인간이 어떤 태도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가 그의 영화의 핵심처럼 보인다.


<아사코>에서도 그렇다. 아사코는 료헤이로부터 그녀의 옛 연인 '바쿠'에게 갔다가 돌아오지만, 용서받지 못한다. 결혼생활 내내 그들의 감정 깊은 곳에는 그 사건이 도사리고 있다. 그들은 영화가 끝날 때 더러운 강물이 흘러가는 것을 본다.

<해피 아워>도 마찬가지다. 여기에서는 좀 더 많은 상황들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누군가는 돌아오고, 누군가는 애매하고, 누군가는 떠난다. 각각의 가정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는 관객의 몫이다.

그리고 비단 이것은 인간관계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여러 명의 평론가가 말하길, 그의 영화는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한편으론 '지진'이후의 일본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도 '상처' 혹은 '사건'이 존재하고, 그로 인한 일본 사회의 일본 사람들의 정신적인 변화를 다루고 있을 것이라고.

(<열정>에서 지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것은, 동일본 지진이 일어나지 전이여서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좋았다. 앞으로도 그의 영화를   같다. 비슷한 주제를 여러 가지 변주를 통해 다른 결론으로 보여줄  알고, 그것을 꿋꿋이 다져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연과 상상> 빨리 보고 싶다. 1978년생인 그는 나와 열두  차이가 난다. (혹은 열세 ) 나도 나의 분야에서 앞으로   후에  정도의 위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미래를 상상하면 즐겁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지금의 마음을  간직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이제 독일에 가기 전까지  달이 조금  남았고, 우선  번째 목표인 어학을 따야 한다. 글을 끝내기 전에 하나를 말한다면, 그의 영화는 연인 혹은 배우자와 보러 가면    같다. 다소 불친절한 <> 후기는 이렇게 끝낸다. E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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