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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Apr 13. 2022

CODA

들을 수 없지만 눈으로 보이는 것들

*해당 글엔 영화 <코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올해 아카데미 역시 후일담으로 전해 들었다. 몇 해 전부터 TV조선에서 독점하여 생중계를 했고, 나는 집에 티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일지 모르겠지만, 올해는 유독 후보군의 오른 영화들 중 봤거나 접했던 영화가 더 적었다. 그래서 내가 감명 깊게 본 영화에 한정해서 작품상이나 주연상을 누가 탔으면 좋겠다, 라는 심정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작품상은 <코다>가 탔다. <드라이브 마이카>와 <파워 오브 도그>를 제쳤다고?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에무시네마에서 영화를 예매했고, 오늘은 그 영화를 본 뒤에 쓰는 단상을 적는다.


제목인 CODA는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A Child Of Deaf Adult의 약자로, 주인공 '루비 로시'를 뜻한다. 그녀의 4인 가족 (부모님/오빠/자신) 중 본인이 유일하게 청각장애인이 아닌 한 고등학생의 삶을 담았다.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내세운 영화인 만큼, 그들의 삶에서 부딪칠 수 있는 많은 어려움과 그들을 돌보는 가족의 시선이 잘 묘사되었다고 생각했다. 청각장애가 있다 보니, 남들보다 소리에 민감하지 못한 장면들이 나오면서, 그럴 때는 오히려 정상 청력을 가진 사람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고 알 수 있었고, 영화 말미에는 잠시 그들이 느끼는 세상을 감독의 의도로 느껴볼 수 있는 장면도 있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해서, 나는 <코다>가 다른 작품들을 제치고 작품상을 받을 정도는 아녔다고 생각한다. <코다>의 스토리는 어쩌면 몇 년 전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았던 또 다른 작품 <그린 북>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전형적인 미국(혹은 이민 혹은 유색인종)의 배경에서 벌어지는 어려운 사람의 이야기를 아주 따뜻하게 풀어나가는 드라마의 느낌이었다. 물론, 난 <그린 북>도 재밌게 봤고,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코다>도 마찬가지다. 이런 유의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정 같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상투적이다. 다음과 같은 전형적인 플롯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예컨대 : 1) 주인공의 현실 (약간의 불편함을 곁들인) 2) 변화를 모색 (청각장애인 부모를 가진 아이가 알고 보니 노래를 잘 부른다.) 3) 꺾이는 의지 (노래로 버클리 음대에 가고 싶지만, 가족 일 때문에 접는다.) 4) 기적과도 같은 리턴 (결국 가족 중 한 사람의 지지로 음대 시험을 보게 되고 합격!) 

코다는 이 노선을 정확히 따라 걸었다. 그래서인지, 스토리는 감동적이었지만 그것들은 이미 사람들 머릿속에서 '예상할'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청춘을 지나고 있는 인물을 그린 만큼 적절하게 사랑(마일즈)도 챙겨주고, 그를 도와주는 조력자(츤데레 미스터 V)도 존재한다. 이렇게 판이 깔아지는 순간, 모든 서사는 종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약간 억지라고 생각했다. 음대 오디션에 왔는데, 악보도 챙겨 오지 못해서 자신을 가르친 선생이 갑자기 나타나 반주를 자청하고, 가족들이 들어갈 수 없는 오디션 장에는 그녀의 가족들 자리를 잡는다. (귀가 들리지 않음은 고려되지 않는 입장이지 않을까?) 그리고 너무나도 지어낸듯한, 가족들을 향해 수화를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 장면이 매우 감동적일 수는 있으나, 너무나 '인공적'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이 같은 선택이 '아카데믹'했다고 생각한다. 작년에는 <노매드랜드>가 작품상을 받았는데, 이 영화는 경제위기로 인하여 집 없이 일 년 내내 미국을 떠돌아다니는 노매드들의 삶을 다룬 영화였다. 남편을 잃은 나이 든 여자가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며 행군을 지속하는 모습은, 지금도 삶의 절벽 앞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많은 미국 사람들을 대변했을 것이고, 이와 같은 '미국적'인 모습 때문에 아카데미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고 (적어도) 나는 생각한다. 물론 <노매드랜드>도 배우의 연기와 내용 모두 좋았다. 그리고 <코다>는 이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한다. <노매드랜드>에서 주인공이 이루지 못했던 가족과의 사랑과 개인적인 성취를 <코다>에서는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코다>는 걸작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감동받으면서 힐링할 수 있는 가족드라마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매번 치열한 영화는 볼 수 없으니, 가끔은 이렇게 노래로 힐링받고, 주인공이 행복해지는 영화도 필요한 것이겠지. 글을 쓰고 나니 삐딱한 시선이 된 것 같아 슬프다. <코다>가 상을 받지 않았다면, 오늘 쓰는 글의 분위기도 달라졌을까? 


그래도, 영화에서 주장하는 바가 (적어도) 이 사회에서는 도움이 될만한 가치들이라 좋았다. 도덕책을 펼치면 나오는 문장들이어서, 그래서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가 힘들 수도 있지만 (요새 논란이 되고 있는 장애인 이동권과 엮어 생각하면...) 그래도 마지막에 루비가 환하게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 그 엔딩이 기억에는 남는다. E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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