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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Apr 22. 2022

<패러랠 마더스>

병렬엄마들, 근데 역사인식도 곁들인

*해당 글엔 <패러랠 마더스>의 내용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패인 앤 글로리> 이후 간만에 패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가 나왔다. <패러랠 마더스>라는 제목은 나의 시선을 끌었다. 한국어로 바꾸면 평행 내지는 병렬 엄마들... 이라니. 예고편과 시놉시스를 보지 않았지만 기대가 됐다. 한편 아카데미에선 이 영화로 페넬로페 크루즈가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다. (상은 못 탔지만..)

(TMI) 오래간만에 오리역 CGV에 가서 영화를 봤다. 평일 낮 시간 때라 사람이 거의 없어서 좋았다.


그의 영화에선 줄기차게 여성 서사를 다룬다. 남성도 안 나오는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내가 봤던 것 거의 여성이 중심이었다. 가끔은 그가 여자인데 남자인 척하며 대리인을 내세우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영화의 장점은 서사보다 강렬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스페인 사람들의 성격에서 나오는(19년에 여행을 갔을 때 가이드가 스페인 사람들이 한국과 비슷하다고 했다. 다혈질이 많고, 남의 인생에 끼어들어 말하기를 좋아한다고.. 그리고 정이 많다고) 극의 분위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색을 너무 잘 쓴다. 원색을 가감 없이 넣는다. <패러랠 마더스>에서도 산부인과 벽지를, 한 면은 노랑 한 면은 파랑으로 쓴다. 등장인물들이 입고 나오는 옷도 그렇다.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페넬로페가 입은 니트원피스의 색 조합은 내 취향이었다. 



잠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패래럴 마더스>에는 두 명의 엄마가 나온다. 30대 후반 사진작가인 '야니스'(페넬로페 크루즈)와 고등학생 임신부 '아냐'(밀레나 스밋). 나이차는 많지만 동일한 시기에 임신을 하여 병원 룸메이트가 된 그들은 친해진다. 하지만 그들은 사정은 다르다.

야니스는 그의 일을 도와주는 한 고고학자와의 관계를 통해 임신을 하게 되는데, 그녀는 그토록 바라던 아이를 가져서 꼭 낳기로 결심한다. 남자는 암에 걸린 아내가 있어 지금이 '좋지 않은 때'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시간을 가지고 헤어지기로 한 상태.

한편, 아냐는 그라나다에 살 때 (영화의 주 배경은 마드리드다.) 좋아하던 남자와 첫 관계를 하게 되는데, 그걸 본 다른 아이들이 영상을 찍고, 자신과 관계를 같지 않으면 영상을 퍼뜨린다고 협박하여 강간을 당한다. 임신을 한 아냐는 엄마가 있는 마드리드로 오게 되고 아이를 낳는다. 그래서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 


출산 후 그들은 잠시 떨어진다. 야니스 자신의 집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가정부와 그녀의 집에 들어온 학생에게 밤에 아이를 돌보는 것을 시키지만 영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러다가, 고고학자가 찾아와 아이를 본다. 그리고 그 둘은 다시 결합하는 듯하다. 하지만, 남자는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긴 것이 너무 다르다고 생각한 것. 하지만 야니스는 친자 확인을 하자는 남자에 말에 화를 내며 혼자 키우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집으로 가서 아기가 자신의 아이인지 유전자 검사를 의뢰한다.


사실 처음 볼 때는 이 부분이 어색했다. 친자 확인을 하자고 한 것은 '남자'인데 왜 '자신'과 '딸아이'의 유전자 검사를 하는 건지.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것이 정말로 한 여성과 엄마로서의 믿음으로 나온 행위임을 알았다. 자신은 그녀가 자신의 딸이라고 믿으니까. 아이를 임신할 때 오로지 그와만 관계를 맺었으니까. 그러니까 그것은 당연한 일이고 (자신의 아이라는 것) 그녀가 자신과 아이의 관계를 검사한 것은, 자신이 잉태한 아이는 그와 자신 사이의 아이임을 확신한 것. 그래서 부모 중 한 사람인 자신과 아이의 관계만 검사하면 된다는 것이 무의식적으로 떠올라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었을까. 결국 그 아이는 본인의 아이가 아니었고, 병원에서 뭔가 잘못되어 바뀐 것을 직감하지만 그냥 키우기로 한다. 



한편, 오랜만에 야니스와 아냐가 만난다. 아냐는 머리도 단발로 자르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야니스는 아냐의 딸의 행방을 묻지만, 아냐는 그녀의 딸이 죽었다고 말한다. 신생아 돌연사. 그때, 야니스의 머릿속에 어떤 서사가 관통된다. 아, 그 아이가 내 아이일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그 말을 차마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대신, 그녀의 딸(세실리아)을 돌보는 일을 아냐에게 맡긴다. (카페보다 후한 봉급을 주며)

그리고 건강검진이라는 핑계로 아냐와 세실리아의 친자확인 검사를 하고, 결과는 역시나. 세실리아는 아냐의 아이임이 밝혀진다. 


(좋지 않은) 한국 영화였다면, 이 장면에서 이 사실을 누군가가 엿듣고 법정 공방으로 가는 막장 행보를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패러랠 마더스>는 그것보다는 훨씬 흥미로운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야니스와 아냐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흐르고, 둘은 관계를 가지고 연인 비슷한 관계가 된다. 이 순간, 세실리아에게는 새로운 가정이 생긴 것처럼 보인다. 생모(아냐)와 지금까지 그녀를 키운 또 다른 엄마(야니스)로 말이다. 그리고 그 둘이 한 집에 살며 유사 연인의 관계를 암시한 것을 미루어볼 때, 새로운 대안 가족의 형태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곧 생물학적인 관계를 밝혀야 하는 야니스의 입장에서 진실이 드러나고, 세실리아는 아냐에게 다시 돌아간다. 이 부분에서는 솔직히 한국 감성과 너무 달라서 신기했다. 자신이 생모가 아니란 것을 인정하고 아이를 그렇게 데려다는 것을 넋 놓고 있는다고? 그토록 바랬던 아이인데? 



그러다 다시 한번, 극이 그렇게 흘러가야 했던 것은 알모도바르가 초반에 세웠던 '역사의식'을 세우기 위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글을 써내려 오며 잠시 스킵했던 것. 그것은 야니스가 고고학자를 만나게 된 계기다. 그녀의 가족, 특히 그녀의 증조부가 살던 마을에서, 스페인 내전 당시 상대방 군인들에게 마을 사람들과 생매장당하는 일이 발생했었다. 그리고 그 한은 증조모와 조모 그리고 그녀의 엄마까지 내려온 일종의 숙원사업으로 남는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코코>에서 멕시코 사람들이 자신의 조상들의 사진을 붙여놓는 것과, <패러랠 마더스>에서 야니스 역시 자신 가족들 (주로 조상)의 사진을 한쪽 벽에 붙여놓는 것으로 보아, 스페인 문화권 사람들에게는 '조상'이라는 의미가 좀 더 특별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야니스가 그들이 묻힌 자리를 알게 되고, 고고학자에게 그곳을 발굴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것이다. 


그리고 극에 마지막에 다다르면 이제 그 숙원사업을 실행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한 동네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일은, 그들 가족과 관련된 일이었고, 그 땅에 묻힌 존재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가족이었다.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는 곧 모든 자의 아버지 어머니로 치환되고, 발굴작업이 시작된다. 이때 나중에 있을 가족 확인을 위해 DNA 검사가 실행되고, 이것은 야니스가 세실리아와 아냐를 상대로 한 친자검사 장면과 겹친다. 


상상하기 힘든 쿨함(...)으로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아냐와 세실리아가 야니스를 찾아 시골 마을로 내려온다. 그들은 발굴이 끝난 현장으로 가서 그들의 조상을 기린다. 혈육으로 전혀 묶이지 않았던 아냐와 세실리아 역시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은 이것이 '가족'서사에서 이제 '역사'의식으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패러랠 마더스>가 신선했다. 영화 내용 자체라기보다는 그의 영화에서 이러한 흐름이 추가됐다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사실, 스페인 내전을 모르는 내가 보기에는 그 감상의 깊이가 덜 할 수도 있었겠지만... 내전을 6.25나 현재의 전쟁에 대입하고 거기에 맞는 국가로 바꾼다면 충분히 이해가 될 것 같다. 


역사의식이라는 것은 무엇일까...라고 영화관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우리는 역사도 수학과 마찬가지로 신석기/구석기와 신라 고려 조선을 가장 많이 안다. '앞에서'부터 배우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지금의 우리는 현대에 살고 있고 그것은 근현대에서 발현된 것이다. 그리고 근현대사는 문과를 선택해야 고등학교에서 자세히 배울 수 있다. 그런 점이 아쉽다. 결국 지금의 나는 너무 멀리 가지 않은 내 앞의 3~4세대 앞의 이야기가 가장 맞닿아 있는 것일 텐데. 이런 회한을 느끼며 글을 마친다. E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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