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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Jun 15. 2022

전주의 전주 : 3일차

이제는 전 달이 되어버린 전주 이야기 마지막. 또 다른 국제 영화제가 있는 베를린에서 마지막을 쓰게 되어서 좋다. 그런점에서 나는 올해에는 특히 영화를 '많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달아'보는 것에도 집중했다. CGV아트하우스를 가서 마음에 드는 영화 두개를 하면 중간 간격이 한시간을 넘지 않으면 두 편을 보고 오기도 했고, 크리스토프 페졸트의 상영회가 대한극장에서 열렸을 때도 한 시간 사이 저녁만 후딱 먹고 <옐라>와 <내가 속한 나라>를 봤다. 한편, 너무 늦게 알아서 아쉬운 에무시네마에서는 영화 사이 간격이 20분일 때 영화를 보기도 했다. 아, 생각해보니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들도 나의 '영화 보는 끈기와 힘'을 기르는데 큰 도움을 줬다. 5시간 반의 <해피아워>를 중간 인터미션...을 두고 본 것과 두시반 반 정도의 <드라이브 마이 카>를 한 번에 보는, 그런 경험들. 


전에 썼던 글에서도 언급한 적 있는 것 같지만, 내가 그렇게 영화를 본 것은 '영화제에 가기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었다. 음악축제를 하면 사람들이 잔디에 앉아 술을 마시며 하루종일 음악을 즐기는 것 처럼, 영화제에서도 나는 그렇게 하루종일 영화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영화와 음악이 다른것은, 음악은 가끔 힘들면 자리에 누워도 되고 자고 되지만 영화는 꿋꿋히 앉아서 감상을 해야된다는 것. 오전에 한 편, 오후에 한 편을 본다고 생각하면, 두개 정도는 연속으로 상영되는 것을 가볍게 볼 수 있어야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영화제의 관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론이 길었다. 결국 나는 성공했다. 오히려 아쉽기도 했다. 독일어 수업이 아니었다면 하루에 세 개를 볼 수도 있었겠고, 하루 쯤 더 머물면서 더 많은 영화를 볼 수 있었을 텐데. (특히, 이번에 평가가 좋았던 <에프터 양>을 못 본 것이 아쉽다.) 그래도 너무 좋았다. 전주는 두 번째 방문이었는데, 각자 다른의미의 사랑으로 좋은 기억에 남았다. 하나는 사람에 대한, 하나는 영화에 대한. 


서론이 길었다. 이 날은 마지막 날이자 세 편을 예매해서 봤다. 오전에는 굉장히 특이했던 아프리카 영화 <해왕성 로맨스>를 봤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연어덮밥이 맛있다고 블로그에 소개된 집을 갔었는데 (나름 다음지도와 네이버 지도로 교차검증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양도 적고 맛도 없어서 실망했다. 하는 수 없이 카페에 앉아서 시집 작업을 계속 하다가 두 번째 영화인 <알레프>를 감상했다. 해외문학을 많이 봤던 분들이라면 익숙한 단어다. 바로 루이스 보르헤스의 소설집 '알레프'에서 제목을 따온 영화다. 나 역시, 영화 웹진을 제작년에 지인들과 한 번 발행해본 적이 있는데, 그때 이름이 '알레프'여서 좀 더 눈길이 갔고, 예매를 했었다. 영화는 음... 처음엔 재밌었는데 중간에 배를 타고 하염없이 떠내려가는 쇼트는 너무 지루했다. 그래도 예술영화로서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은 <스파이의 침묵>. 다양한 영화를 보고 싶기도 했고, 다른 나라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1970년대의 과테말라의 독재자 밑에서 일했던 어떤 사람의 삶을 재조명 하는 영화였다. 늘 그렇듯, 역사에는 숨겨진 위인들이 있다. 그것을 발굴해내고 알리는 것도 영상의 역할이다. 


그리고 나서 난 다시 수원으로 향했다. 길이 조금 막히기도 했고, 이미 세 개의 영화를 본 뒤라 몸이 매우 지쳐있었다. 나의 차가 아직 자율주행이 아닌 것임에 실망감을 한 번 가지고 중간에 휴게소에서 들려 저녁을 먹었다. 그래도 얻은 것이 많다. 3일 동안 운좋게도 자리가 남아서 '전주 영화 호텔'에서 머무를 수 있었고, 3일 동안 총 7편의 영화도 볼 수 있었다. 거의 한 두달치 극장에서 볼 영화를 삼일에 몰아서 봤으니. 그리고 뭣보다도 좋았던 건 평소에는 볼 수 없을 진귀한(혹은 특이한)것들을 볼 수 있었다는 점. 부산국제영화제는 화려한 반면, 전주국제영화제는 그보다는 좀 더 예술지향적인 느낌이었던 것 같다. (부국제를 가본 적은 없지만..) 그런 면에서 부산보단 전주가 나에게 더 맞았던 것 같고, 출국 전 마지막 여행을 이것으로 마무리 할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이제는 베를린이다. 내년 2월이나 3월쯤에 이 도시에서 영화제가 열릴 것이다. 그때까지 나의 목표는 역시나, 영화 꾸준히 보기. 지금 하고 있는 팟캐스트 꾸준히 하기. 영화 글 꾸준히 쓰기. 한글 자막이 없어도 볼 수 있을 만큼 영어실력과 독일어실력 늘리기...가 되겠다. 


마지막날의 첫 번째 영화 : <해왕성 로맨스> 간단 감상평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며, 희토류 금속을 채취하는 곳에서 주인공의 여정이 시작된다. 이 세계에서는 어떤 통신망과 컴퓨터 부속부품 (마더보드/그래픽카드 등)이 의인화가 된 것으로 보이는데, 어쩌면 이것들은 반도체나 이차전지 시장에서 필수 불가결한 금속들이 아프리카의 노동착취에서 나온다는 것에 대한 비유를 한 거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원을 계속 빼앗아가면서 가장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 아프리카에는 늘 상 전쟁이 있고, 사람들은 굶주린다. 한편, 남자 주인공이 여자로 자연스럽게(?) 바뀌는 장면도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직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 감독이 어떤 의도를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성의 상관없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그렇다고 하기엔 그 다음에 주인공이 어떤 남자에게 추행을 당하는 것으로 보아 사회문제 또한 말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영화는 약간 발리우드 스타일처럼, 극이 진행되다가 사람들이 군무를 추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것은 인도와는 아예 다른 웅장한 느낌이라 새로웠다. 서사를 좀 더 잘 다듬는다면 더 좋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 까. 


마지막날의 두 번째 영화 : <알레프> 간단 감상평



사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무슨 말을 해야할 지 잘 몰랐다. '알레프'의 개념. 곧 어떤 우주들이 얽혀있고,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라는 그 의미로 다가가본다면, <알레프> 안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에피소드들과, 마지막 장면에서 흑인배우 둘 (실제론 같은 배우가 연기한)이 나오면서 시간이 왔다갔다 하고, 공간이 움직인는 것이 그, 알레프의 의미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시작한 어떤 한 여자의 스토리가 '완전히' 맞지는 않지만, 사막으로 옮겨가고... 또 다른 도시로 옮겨가고... 이 틈에서 어떤 느슨하면서도 어떤 지류가 결국엔 합쳐지고 바다로 빠져다나고... 다시 수증기가 되어 비로 흩뿌려지는 것처럼... 이 영화는 감독의 GV를 들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친구를 만나러 서울로 왔을 때, 나는 교보문고로 가서 보르헤스의 '알레프'를 샀다. 아직 다 읽진 못했다고 한다... 서사 외적으로 말한다면, 미술적인 부분이 매우 좋았다. (영화의 오프닝/엔딩과  포스터는 정말 죽였다.)


마지막날의 마지막 영화 : <스파이의 침묵> 간단 감상평



영화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은, 실제로는 선한일을 했음에도 경찰에게 쫓기고, '하비 덴트'를 죽였다는 죄를 뒤집어 쓴 채 사람들에게 쫓긴다. 역사에도 늘 위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진실은 아예 밝혀지면 안되고 (그 시절에) 지금도 밝혀지면 위험할 여지가 있다. 특히, 정치적으로 후진국인 나라일수록. <스파이의 침묵>에 나온 과테말라의 '엘리오느 바라오나'가 그랬다. 독재정권 시절, 독재자의 가장 옆에서 일하면서 그는 숱하게 많은 친구들과 사람들에게 욕을 먹었다. '앞잡이'라는 말로. 하지만 그는 독재자의 바로 옆에서 일하면서 민주 투사들의 수많은 목숨을 구한 '스파이'였다. 수십 년 동안 간직해왔던 그 비밀을, 이제는 허름하고 낡은 집에서 살고, 휠체어 없이는 이동하지 못하는 다 늙어버린 백발의 할아버지가 나와 법원에서 자신의 과거를 밝힌다. 50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감독은 그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극에서는 초반) 죽을 두려움은 없었느냐고 물어본다. 나에게도 그런 정도의 무거운 책임감이 있을까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후일담이지만, 아주 기쁘게도, 이 영화는 영화제에서 상을 탔다. 


전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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