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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Jun 22. 2022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어 원제목이 너무 길어서 브런치 글 제목에 영화 제목을 다 담지 못했고, 결국 중 제목까지 제목이 실려 들어온 영화. 한국에서도 개봉을 했을런지는 모르겠는데, 과연 의역을 했을지 그대로 또박또박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고 표현할지가 기대되는 영화. 이 영화는 내 인생에서 어떤 중요한 부분을 차지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해외에서 처음 본 영화의 타이틀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오늘(6월 21일) 오후 여섯시에, 나는 이 영화를 베를린의 어느 한 소규모 극장에서 봤다. 극장의 이름은 'Lichtblick Kino'였고, 단 한 개의 관을 가진 영화관은 카드결제가 안됐고... 마침 나는 현금이 모자랐고... 그래서 맞은편에 있는 현금 인출기에 갔다가, 그것이 작동하지 않아 다시 반대편에 있는 인출기에 가서 50유로를 뽑았고, 그 중 8.5유로를 써서 표를 살 수 있었다. TMI가 있다면, (독일의 모든 영화관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영화값은 Normal (8유로)과 Überlänge (8.5유로)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이 두 가지를 나누는 기준은 영화 상영시간이 120분이 넘느냐 아니냐 였다. 어찌보면, 영화관은 현실의 건물에서 임대료를 내고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주인 입장에서 더 긴 영화에 대해서는 더 비싼 값을 매기는데 체인으로 돌아가지 않는 영화관에는 적합한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8.5유로라는 가격은 한국보다 싸서, 굳이 IMAX관을 가지 않는 나로서는 같은 영화를 (스크린 크기의 차이가 있겠지만) 더 저렴한 가격에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서론이 길었지만, 혹여나 독일에서 영화를 볼 사람들을 위해 말하자면, 독일은 대부분의 영화가 독일어로 더빙되어서 상영되기 때문에 원어 그대로 보고 싶다면 OmU (Original mit Untertitel)이라는 딱지가 붙은 것을 봐야된다는 것. 오늘 본 영화는 영어가 원어였고, 자막은 독일어로 표시됐다. 그래서 한편으론, 한국어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본 첫 번째 영화이기도 했다. 그래서 사실 모든 대사를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누구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서도 자막이 나올 때 잘못된 번역이 되는 경우가 있음을 생각해보면, 적당히 영어와 독일어를 할 줄 아는 나로서는 영어로 놓쳐도 독일어 자막을 보고 뜻을 대충...이라고 파악할 수 있어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물론, 이것도 영화가 철학적인 내용을 담거나 대사량이 엄청나거나 전문용어가 많이 나온다면 답이 없었겠지만.... 


그래서 무려 두 문단이나 할애에서 이 영화를 보게된 개인적인 배경과 의의를 알아보았으니, 오늘 영화를 본 나의 (잠정적인) 결론은, 이것이야 말로 평행우주를 그린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더랬다. 마블 영화가 몇 개의 페이즈를 거치면서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바로 '멀티버스'개념인데, 나는 이것이 마블 시리즈에서 너무나 쉽게 이용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원래의 스토리로는 감당이 안될 수준이 왔으니, '다른 우주'에 대한 개념을 집어넣어서 약간 속 편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점에서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이하 EEAO, 라고 칭해보겠다.)>는 그 흐름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평행우주를 다루는 스토리는 이래야지! 라고 내 뺨을 한 대 갈긴 느낌이었다. 



주인공인 에블린(양자경 분)은 미국에 사는 중국이민자로서, 남편(웨이먼드)와 딸(조이) 그리고 늙은 아버지(공공)과 함께 세탁소를 운영한다. 일은 고되고, 남편과의 사이는 소원하고, 딸은 도통 말을 안듣는다. 늙은 아버지는 밥만 어디있느냐고 그녀를 찾는다. 영화의 시작지점, 남편은 그녀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지만, 그녀는 너무나도 할 일이 많다고 대화를 미룬다. 곧 알게 되지만, 남편은 이혼서류를 들고 있었다는 것, 하지만 성격이 물러보이는 그는 쉽게 그 말을 꺼내지 못하고 그냥 다음에 하자, 라고만 말한다. 딸은 자신의 레즈비언 연인을 데리고 오지만,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에게 차마 그녀가 손녀의 파트너라고 이야기 하지 못한다. 


겉으로 보면 아무일도 없어보이는 이 이민자가족에게는 이러한 균열이 있었다. 그리고 그 균열은 이윽고, 딸은 뺀 나머지 가족이 세무서를 가면서 본격적으로 전개가 된다. 갑자기 남편의 눈빛이 변하고, 에블린에게 이상한 이어폰을 머리에 끼워주면서 뇌를 스캔한다. 그리고는, 이혼서류 뒤에 써놓은 대로 똑같이 하라고 말한 뒤, 홀연히 다시 본인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녀는 세무조사를 받는 동안 드디어 처음으로 평행우주를 경험한다. 그리고 이 세계관에 대한 설명이 곁들어 지는데, 다른 세상의 웨이먼드가 이 세계의 에블린을 찾아온 것은, 우주를 위험에 빠뜨리는 사악한 존재로부터 전 우주를 지킬사람이 '이 세상'의 에블린이었다는 것. 그 다음부터 마치 그녀는 닥터스트레인지 2편 <대혼돈의 멀티버스>처럼 다른 우주에 있는 자신들의 능력을 가져다가 쓰면서 역경을 해쳐나간다. 



자신의 능력으로 악당들을 물리치고, 결국 보스를 잡으면서 영화가 끝났다면, 이 영화에 대한 나의 평점은 좋지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가 좋았던 것은 히어로 장르에서 나올 법한 설정들과 클리셰를 타파하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끝 맺는데에 있었다. 그리고 그 방식은 가끔은 너무나도 귀여워서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각본 또한 매우 잘 짜여졌다고 느꼈던 건, 아까 말한 '우주를 위협하는 존재'가 바로 '이 세계'에서의 에블린의 딸 '조이'와 몸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사실 히어로 물이라는 맨 처음 나온 주제는 이윽고 이야이가 전개되가며 '가족'에 대한 드라마로 바뀌기 시작한다. 


비단 가족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웃들 (혹은 그도 다른 세계에서는 연인일 수 있다.)과 친구들에게 '친절하게 해'라는 '이 세계'의 웨이먼드를 보면서, 아마도 이런 지구애적인 감정이 히어로물에 나오는 어떤 폭력에 맞서는 것 뿐만 아니라, 개인적 차원으로서의 삶의 태도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혐오와 전쟁 또한 모두 헤아리며 소리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침내, 조이(딸)을 삼키려는 거대한 검은색 베이글 (블랙홀로 비유되는)로 부터 에블린이 끝끝내 이런 범 지구적 따뜻함을 (아마도) 모든 평행우주에서 실행함으로써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려고 하는 딸을 구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EEAO의 세계를 대하는 태도는 역시 마블의 영화 시리즈 중 <어벤져스 : 엔드게임>과 비교된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수십 만(혹은 그 보다 더 많은)개의 미래 중에서 자신들이 이기는 단 '하나'의 우주(내지는 시나리오)를 선택하는 것과는 반대로, EEAO의 에블린은 모든 평행세계를 구해낸 것이니까.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우리는 꼭 이겨야 해.'라는 목표를 가지고, 악으로 표현되는 대상을 결국 없애는 데 성공하는 전쟁 스토리도 있지만 (그것이 별로진 않았지만) '서로에게 친절하게 해.'라는 태도로, 결국 모두가 정상상태로 돌아오고 삶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는 스토리가 나는 더 마음에 들었다. 


내용적인 것과는 별개로 나는 이 영화의 촬영과 편집 그리고 의상 팀에게 찬사를 보낸다. 수 많은 평행세계를 오락가락하는 탓에 배경과 수 없이 많은 로케이션과 의상을 준비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한 쇼트에서도 시시각각 바뀌는 분장과 쇼트들을 촬영한 것을 생각한다면... 배우들도 엄청나게 고생하고, 연기도 힘들었을 거라 생각된다. 그리고 역시나 이런 류의 영화를 이 정도 퀄리티로 제작할 수 있는 건 A24의 역할이 컸겠지, 라고도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개봉을 할 지 안할 지 모르겠지만 영화보기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나 또한 한국 자막이 나오고, OTT 서비스에 올라오면 한 번 더 볼 것 같다. 쓰다보니 내용이 길어진 것 같은 EEAO의 감상평은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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