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30 한

by soripza

오늘은 호텔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는 날이다. 내일이면 여기서 걸어서 20분 정도 떨어진 원룸에 들어간다. 이제 독일에 입국한지도 거의 한 달이 되어간다. 여행자로 온 것은 아니여서 떨리는 마음은 덜하지만, 7월이 되면 이제 부터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을 시작했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아침은 빵 사이에 햄 두개와 치즈 하나를 끼워먹으며 시작했다. 취사가 안되는 바람에 매번 호텔에서의 식사는 독일어로 Kaltes Essen이다. 이제 이 지긋지긋해져버린 차가운 식사도 내일부터는 그 빈도수가 줄겠지. 오늘은 아주 쉬는 날로 정해버려서, 운동도 가지않고 아침을 먹고선 쭉 침대에 누워 쉬었다. 오늘은 두 시쯤에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기로 해서, 12시쯤 씻고, 두 시 전까지 Gesundbrunnen역 옆의 쇼핑센터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돌아오려고 했다. 그러나 12시가 다되었을 때 갑자기 직원이 방문을 두드리면서, 12시라고 나가야 된다고 말했다. 내가 호텔을 예약할 때, 월이 넘어가면 예약이 안되어서 두 번으로 나누어서 했었는데, 아마도 그것을 전해받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우선 알았다고 하고, (그래서 내가 청소를 세시에 해달랬는데 그걸 계속 이상하다고 생각했겠지...) 키를 챙겨 리셉션으로 내려갔다. 살짝 당황해서 그런지 영어도 독일어도 잘 못하는 0개국어 상태가 되어버렸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리셉션에게 내 방에 대해서 설명했다. 아까 내 문을 두드린 담당자도 옆에서 와서 듣더니, 아, 그랬냐고. 자기한테 말하지 그랬냐고 말했다. 속으로 나는, 너가 모르는 걸 내가 알아도 리셉션에 가서 다시 확인을 해야되니까 내려왔다, 라고 독일어로 영작을 하다가 말았다. 가끔 이럴때는 영어라도 유창하게 하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작은 소동은 끝났는데, 바로 하우스키핑을 보내는 바람에... 10분 정도 밖에 있다가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나왔다. 쇼핑센터는 어제 돌아봤었는데, 북유럽 풍 가구/침구를 파는 곳을 미리 봐뒀었다. 나는 베게/이불 커버, 매트리스커버, 수건 3장 그리고 무려 70%할인을 하고 있는 쿠션 한 개를 샀다. 근데 가게가 비쌌었던건지는 모르겠는데. 수건이 매우 비쌌다. 한국에서는 몇 개가 합쳐서 5만원이 안됬던것 같은데 여기는 작은 사이즈가 만원, 큰 사이즈는 거의 삼만원이었다. 내가 산 걸 합치니 거의 10만원이 넘는 금액이 됐다. 돌아오는 길에는 지하철 역 근처에 있던 커리부어스트 집에 드디어 갔다. 도축장과 직접 거래를 하는지, S반 역 옆에 있는 체인점보다 훨씬 쌌다. 아저씨도 친절하고 맛도 좋았다. 종종 맛이 생각나면 올 것 같은 기분이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짐정리를 조금하고 H와 통화를 했다. 원래 J와도 3자 대면을 줌으로 할 생각이었지만 J가 회식이 잡히는 바람에 둘이서 그냥 했다. H는 공무원인데 한 달 동안 파견으로 세종대신 서울에 와있다고 했다. 나의 생활을 부러워하고 나한테 꿀빨고 있다고 말했다. 맞는말이긴 했다. 한국은 10시가 거의 된 시각이기도 했고, 출퇴근이 한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해서 H는 매우 졸려보였다. 30분 쯤 통화를 하고 끊고, 다음에 J와 다시 보기로 했다.


오늘 저녁은 나가 먹기로 결심했었다. (진작에) 호텔에서의 마지막 날은 기념한다는 핑계도 있었고, 구글 맵으로 근처 식당을 막 보다가 맥주와 음식 둘다 매우 맛있다고 사람들이 리뷰를 남겨놓은 집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오픈 시간이 저녁 6시 30분이라 시간이 좀 많이 남았고. 나는 여러가지 자투리 일들을 처리했다. 예를들면 : 유학원 글에 코멘트를 남기는 일, 보험회사에 이메일을 쓰는일, 통신사에 전화해서 로밍을 한 달 더 연장하는 일 그리고 베를린 자유대 한국학과에 연락하여 언어교환을 하고 싶다는 메일을 쓰는 것 까지. 그리고 C가 보내준 소설 3개 중 마지막 것을 읽고 합평을 남긴 뒤에 세작품을 모두 묶어서 그에게 카톡으로 보내줬다. 학회 생활을 오래했고, 사람들의 소설을 많이 읽어온 입장에서 이제 C의 문장은 아주 섬세했다. 문장만 스르르 읽으면 이제 기성작가 소설집에 하나 섞여있는 것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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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다보니 7시가 됐고, 나는 S반과 전철을 타고 식당에 도착했다. 문 연지 한 시간도 안됐을 텐데, (가게가 크진 않았지만) 바깥쪽 자리는 이미 다 차있었고, 나는 애초에 안쪽에 앉고 싶었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갔다. 40대~50대 쯤 보이는 아주머니가 주문을 받았는데 처음에 영어로 받다가 내가 독일어를 조금 하는 것을 알고는 말을 바꿨다. 헌데 그 분은 매우 열성적이었다. 맥주가 많지만 본인 가게에서 직접 만드는 맥주를 추천해주고, (이름은 라거지만 사실은 흑맥주인) 음식은 바깥에 분필로 써놓은 것을 보라고 말해줬다. 우선은 맥주를 한 잔 마시고, 베를린 아이스바인을 시켰다. 리뷰에 남겨놓은 대로... 맛은 아주 좋았다. 맥주는 코젤다크를 생으로 체코에서 처음 먹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그거 보다 훨 맛있었다. 아이스바인은 슈바인학센과는 다르게 좀 더 부드러웠고, 양도 많았다. (무려 두 조각?이라고 해야할까. 뮌헨에서는 15유로에 자우어크라우트도 없었는데, 여긴 두 조각에 자우어크라우트/감자까지 해서 16.60유로였다.)


이미 배가 찼지만, 흑맥주 한잔과 사과 파이까지 더 시켜버렸다. 사과 파이는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초코 시럽까지 껴 있어서 너무 달고 맛있었다. 나는 아주머니가 나에게 와서 음식 맛을 물어볼 때마다 맛있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왠지 단골집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가끔씩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을 때 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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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에는 배도 찼겠다 천천히 숙소까지 걸었다. 대충 3km정도 밖에 안되서, 슬슬 걸으면 40분 정도 걸리니까 딱 좋다고 생각했다. 주택지역이라 그런지 조용했다. 경치가 너무 좋았다. 베를린은 아주 크다. 파리를 안가봤지만 파리보다 거의 열 배가 더 크다고 하던데... 나중에 찾아봐야겠지만 서울이나 도쿄와 비교하면 또 얼마나 차이가 나는 지 알고 싶다. 여름이라 해가 늦게 진다. 8시 쯤 식당을 나와서, 호텔까지 슬슬 걷다가, 또 중간에 멈춰서 경치를 조금 보았는데 9시였고, 해도 지지 않았다. 혹자는 독일 날씨가 가장 좋을 때 왔다고 했다. 겨울이 되면 엄청 어둡고 우울할 거라고도 했다. 뭐 그래도 괜찮다. 그 계절은 또 그 계절만의 운치가 있겠지. 내일은 입주 첫 날이라 열쇠도 받아야 하고, 집 상태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잘 해보지 않았던 것을 독일에 와서 하려니 조금 걱정이되긴 하지만 잘 하겠지. 이제 호텔 생활도 끝이라는게 너무 좋다. 누군가가 늘상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공간, 청소를 위해 이틀에 한 번씩은 방을 내줘야 하는 공간에서 나와 이제 정말로 나 혼자만의 방에 들어간다. 오늘의 글을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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