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ssau(데사우) 탐방기
베를린에서 갈 수 있는 근교 도시는 포츠담과 드레스덴이 유명하다. 포츠담은 이미 2010년의 여행에서 방문을 했었고, 드레스덴은 편도로 두 시간이 넘게 걸리기 때문에 다음에 하루 숙박을 하면서 다녀오려고 한다. 내가 정한 곳은 데사우. 베를린에서 RE(지역간 기차)로 한 시간 사십 분을 달리면 나오는 곳이다. 작은 도시지만, 내가 여기를 방문한 이유는 딱 하나, 바우하우스 때문이었다. 중고등학생 때 독일 축구 중계를 보면서 광고판으로 자주 봤었던 7글자. BAUHAUS그래서 난 그곳이 처음에 뭔가를 만들고 세우는(BAU, 화학시간에 쌓음 원리[Aufbau principle]로 인지하고 있었다.) 회사(HAUS)라고 생각했다. 근데 커가면서 보니 디자인과 관련된 영역에서 ‚바우하우스‘라는 단어를 너무 많이 들었었고, 찾아본 결과 내가 본 바우하우스는 나중에 독일에서 세워진 동명의 가구회사였고, 오리지널 바우하우스는 1919년부터 1933년까지 독일에 존재했던 예술/디자인 학교였다.
14년 밖에 안된 학교. 그런데 이런 학교가 현대의 디자인을 논할 때 늘 언급이 됐고, 영향 받은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후에 바우하우스 책을 구입해서 알게된 사실이었지만, 바우하우스의 교육은 그냥 단순한 대학교 과정이 아니었다.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두고, 그것을 어떻게 구성해나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개념을 효율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설립자와 교수들이 심도 깊게 고민했음을 알았다. 디자인 전공자가 아닌 탓에 자세히 설명하긴 힘들지만, 독일에서 만들어진 제품디자인을 보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고 느낄 때가 많은데, 이것 또한 바우하우스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이었다. 기능과 함께하는 디자인, 그래서 불필요 한 것을 없애고, 사용자로 하여금 이 물건을 필요한 곳에서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동시에 불편함도 없게끔 하는 것. 그건 마치 내가 단편소설을 쓸 때 내가 글에 담는 문장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얽히고, 필요 없는 부분이 없도록 구성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이와 같은 이유로 나는 바우하우스 적인 것들을 좋아하게 되었고, 때문에 건축이나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들이 순례지처럼 간다는 데사우를 갈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데사우에 대한 후기는 그리 많지 않았고 네이버와 여행카페에서 몇 명이 적은 리뷰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여행 카페에서 나와 비슷한 날짜에 데사우 동행을 구한 다는 글을 볼 수 있었고 (무려 2주 전...) 그와 연락이 닿아 오늘(7월 31일 일요일) 데사우로 갈 수 있었다. 동행은 당일 아침 스위스 취리히에서 독일 베를린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고, 그래서 우리는 한 시 반 데사우 행 기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애석하게도 바우하우스 건물은 5시까지, 박물관은 6시까지밖에 하지 않는 바람에(평일도 똑같다) 세시에 역에 도착한 나에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독일은 한달 동안 고속철(ICE)를 제외한 모든 교통수단을 9유로로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을 팔아서, 기차 안도 사람이 너무 많았다.
데사우에 도착한 뒤 동행의 짐을 역에 보관하고 바우하우스로 조금씩 다가갔다. 동네는 너무 조용했고, 그래서 좋았다. 베를린은 이제 인구가 500만명이 넘어서 하루종일 북적북적하고 정신 없을 때가 많다. 누군가들은 이런 분위기가 좋고, 다문화에 남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베를린은 나와 100%어울리는 도시는 아닌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데사우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마음의 안정인지. 거리에 자동차는 많이 없고, 집들도 여기저기 지어진 것이 아니라 일정한 규칙을 따라 지어진 것처럼 보였다. 나중에 건물에 들어가서 안 사실이지만, 데사우에 바우하우스가 들어왔을 당시 그들의 손을 거쳐 탄생한 건물도 도시 곳곳에 있다고 했다. 마치 가우디의 건물이 멀리서 봐도 그의 것임을 알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500미터쯤 걸었을까, 내 눈에 사진으로 보던 바우하우스 건물이 들어왔다. 그날은 날씨도 너무 좋았고, 따로 보정을 하지 않아도 모든 사진이 예술적으로 나왔다. 물론, 피사체로 설정된 건물의 구성이 좋았기 때문에 그 효과가 배로 느껴졌다. 아쉬웠던 건, 건물 정면에서 볼 수 있는 BAUHAUS현판이 공사중이라 그것은 현수막으로 대체됐다는 것 정도? 동행과 나는 1층 카페에서 각각 아포카토와 레모네이트를 마시면서 갈증을 풀었다. 데사우에서 동행을 구한 이유는, 일반인이 이 도시를 올 정도면 그 역시 ‚바우하우스‘에 진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디자인이나 건축을 전공했을 확률이 높고, 내가 모르거나 보지 못한 것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이 모두 맞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디자인 쪽에서 일을 했고, 현재는 회사를 퇴직한 뒤 자기 사업을 삼 년째 이어간다고 했다. 자세히 물어보진 않았지만, 공간 디자인 쪽인 것 같았다. 우리는 카페를 나와 바우하우스를 둘러봤다. 나는 처음에 건물 안에 바우하우스가 학교로 이용되던 시절 학생/교수들의 작품들이 있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미 바우하우스 건물 자체가 그들의 유산이었다. 데사우의 바우하우스 흔적들이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된 것이 그것을 보여준다.
건물들 다니면서는 내가 역사적인 곳에 있었다는 사실과, 너무나 정돈되고 깔끔한 내부 디자인을 보면서 감격했었던 것 같다. 중간중간 동행이 3단 철제 사물함이나 복도, 그리고 책꽂이에 대한 설명을 해줘서 더 좋았다. 건물에는 전반적으로 다섯가지 색깔이 쓰였는데, 하양/검정/파랑/노랑/빨강이었다. 그리고 빛의 들어오는 방향에 따라, 그리고 위치에 따라 색의 채도나 명도를 조금 조정해서 건물 내부의 색깔이 정해진 것 같았다. 그래서 같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더라도 조금씩 구성이 달랐고, 그것은 마치 음악에서 비슷한 마디(라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다)를 반복하지만 조금씩 변형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여담이지만, 칸딘스키 역시 바우하우스에서 미술을 가르친적이 있었고, 그의 작품들은 음악을 듣고 만든 Komposition연작 들도 있다는 점에서 바우하우스 내부의 구성이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렇게 후다닥 건물을 둘러보며 나왔고, (사실은 표 구입하는 곳에 상점도 있어서 미리 포스터를 샀다)포스터를 하나 구입해서 나왔다. 시간 상으로는 박물관으로 가야 했으나, 동행이 바우하우스 위에 있는 Meisterhäuser를 보러가자고 제안해서 그렇게 했다. 나야 베를린에 살고 있으니 나중에 또 와도 되지만 그는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까. 조금 북쪽에 위치한 그곳은 걸어서 20분 정도 걸린 것 같고, 나는 중간에 독일 할머니가 도움을 요청해서 그를 양로원 반층 까지 안내해드렸다. 마이스터하우스는 바우하우스의 설립자인 발터 그로피우스와 교수들이 살던 곳이었는데, 이곳 또한 매력적이었다. 학장의 집은 작지만 1인실이었고, 다른 3개의 집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지만, 집마다 조금씩 디테일이 달랐다. 문앞이나 내부 계단에 칠해진 페인트 같은 것들. 이곳도 시간이 허락된다면 들어갈 수 있었지만 이미 저녁 다섯시가 넘어버려서 들어가진 못했다. 그리고서 박물관으로 향했다. 중간에 기차길도 지나고, 데사우의 곳곳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약국은 바우하우스 서체를 사용하고 있었고, 어떤 집들은 반복되면서 조금씩 좌우균형이 다른 (이라고 동행이 설명해줬다.) 형태를 띄고 있었다. 바우하우스 박물관은 현대적으로 지은 유리건물이었고, 우리가 도착했을 땐 딱 폐점시간(6시)가 되어서 입구컷을 당했다. 데사우는 조용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미술관 앞의 공원에서는 힙합음악을 틀어놓고 고기를 구워먹는 사람들, 아이들과 밖으로 나와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중앙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중간에 또 멋지게 밖이 색칠된 건물도 만날 수 있었다.
베를린으로 돌아가는 기차는 7시였고, 목이 마른 나는 탄산수 하나를 사서 역 앞의 벤치 앞에서 그것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다음에 또 오게 된다면 그때는 11시에 시작하는 독일어 설명도 들으면서 (그들에게만 오픈되는 공간도 있다!) 마이스터 하우스의 내부과, 박물관도 꼭 가기로 다짐했다. 돌아오는 기차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소풍을 다녀온 사람, 하이킹을 한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산을 탄 것 같은 사람들. 자리가 없어서 나와 동행 모두 선 채로 두 시간을 보내야 했고, 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데사우를 가는 기차에서 동갑임을 알아 반가웠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사람들과 말을 잘 안놓게 되서 편하게 말을 할까요?라는 말이 나오진 않았다. 기차는 평지를 가로질러 북쪽으로 향했고, 바닥에 앉은 아이는 엄마를 보채면서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베를린에 도착하니 시간은 9시가 넘었고, 배는 고팠으니 역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테이크아웃으로 음식을 샀다. 동행은 아직 숙소에도 못들어간 상태였고, 시간이 늦어 내가 도움을 주기로 했다. 그는 중앙역에서 동쪽 아래에 Airbnb를 잡았는데, 밤이어서 그런지 조명도 없었고 사람도 없어서 그 공허에 나 또한 조금 불안함을 느꼈다. 그래도 다행히 집에 도착했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치즈가 말라 굳어진 햄버거를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처럼 포크와 칼을 이용해 먹었다. 지난 6월 중순에 베를린에 오고, 7월부터 하루도 쉬지않고 학원에 다녔던 나로서 오늘 데사우 근교여행은 성공적이었다. 오랜만에 여행을 한 느낌이었고, 사는 곳과 다른 도시에 가니 마치 같은 국가여도 도시마다 다른 디테일을 볼 수 있었던 것이 바우하우스와 마이스터하우스에서 내가 느꼈던 것의 합집합처럼 느껴졌다. 다음에도 근교여행을 주기적으로 꼭 해야겠다,라고 되뇌었다. 오늘의 여행이 스케치였다라면, 다음에 데사우에 다시 오면 그땐 꼭 채색을 하고 마리라. 그럼 오늘의 일기이자 데사우 방문후기는 여기에서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