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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Aug 17. 2022

<우연과 상상>

*해당 글에는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미 본 지가 몇 달이 지난 영화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매우 어렵다. 

<우연과 상상, 偶然と想像 2021>은 내가 독일에 오기전 마지막으로 영화관에서 본 영화였고, 그 때는 아직 봄기운이 남아있던 5월이었다.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은 이 영화는 <드라이브 마이 카>이후 내가 기다렸던 하마구치의 영화였고, 한국을 떠나기 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담이지만, <헤어질 결심>을 아직도 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 서럽다..

독일에서는 8월 말 쯤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가 개봉하는 것 같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를 관람했던 작은 영화관도 <드라이브 마이 카>와 <우연과 상상>을 원어음성에 영어자막으로 상영한다고 하니, 한 편 정도는 다시 찾아가서 볼 생각이다. 많은 아시아 영화가 이곳에서도 상영된다는 건 좋은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한, 최소한 '한국 제목 명'에서의 하마구치 류스케는 제목을 영화의 내용과 연결되도록 성실하게 짓는 편인 것 같다. 말그래도 '자신의 차'를 남에게 맡겼던 <드라이브 마이 카>와 청춘시절의 열기가 보였던 <열정> 그리고 한국 명으로는 <아사코> 영어 명으로는 <Asako I&II>가 있었다. <우연과 상상>은 그 중에서도 가장 충실하다. 이 영화는 3개의 더 작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1화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 / 2화 문은 열어둔 채로 / 3화 다시 한 번은 각각 서사에서 '우연'과 '상상'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간단하게 배경만 말한다면, 1화는 이전과 현재 연인(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2화는 대학교수인 소설가와 어떤 유부녀 수강생의 이야기 그리고 3화는 중년이 된 두 여자의 이야기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3화가 가장 인상 깊었다. 그 이유는, 세 작품 중 인간의 관계에 대하여 가장 깊에 탐구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 


3화 : 다시 한 번



한 여자가 다른 도시로 동창회를 왔다가 찾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 다음날 아침, 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가다가 누군가를 보고 놀라고(우연1), 약간의 어긋남을 언어로 해결 한 뒤 만나 반가워한다. 중학교 때 같은 반 동창인 것 처럼 보이는 그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그간에 있었던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앞서 말했던 한 여자는 IT회사에서 일했던 사람이었지만 (근미래. 영화의 설정상) 거의 모든 전자기기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사람들이 다시 우편에 의존하는 시대에 살게되어 직장을 잃은 상태다. 반대의 여성은 가정주부고, 남편과 오타쿠인 중학생 아들과 살고 있다. 집에 들어와서 차를 마시고, 떡을 먹던 도중 그들은 뭔가가 이상함을 느낀다. 그리고 서로가 졸업한 학교와 이름을 안 순간, 서로가 실제로는 만난적도 없고 아는 사이도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뒤 당황해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눴던 대화와 기억은 다 무엇이었을까?


인간은 어느정도 공유된 경험과 기억을 가지고 있다. 동일한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통하는 것들이 있는 것처럼. 그때의 교실의 분위기, 배웠던 것들, 즐기고 놀았던 것들 (90년대 초반생인 나에게는 그것이 아마도 모뎀으로 사용했던 인터넷, 포트리스/스타크래프트와 같은 고전게임, 그리고 쿨이나 신화 그리고 핑클 같은 음악으로 치환될 수 있다.) 그리고 시대정신 (이라고 까지 말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말도 잘 통하고 친해지기도 쉽다. 그런데 다르게 말한다면, 지금 이 두 여성처럼 배경만 신호가 맞고 세세한 것이 맞지 않아도 착각을 한다면 실제 대상이 아닌 사람과도 한 시간을 더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가졌던 그리움의 대상은 (이)사람이 아니라 (저기 멀리에 있는, 그리고 어디 있는 지 알 수 없는 저)사람인데. 마치 복수의 칼날이 잘못된 방향을 향한 것만큼의 당혹감이 올라온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리고 마치 서로가 각자 품고 있었던 그리운 대상에게 말하는 것 처럼 고민을 털어놓고, 서로에게 마음을 연다. 우연이 만난 우연의 인물에게 고백을 하는 것. 오히려 익명이라 가능했을지도 모르는 말들. (마치 인터넷에서 만난 모르는 사람과 밤을 세면서 채팅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스물다섯, 스물 하나>의 나희도 처럼) 결국에 중요했던 건 그들의 마음이었고,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미래는 불확실 하기 때문에(대상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태) 현재의 (어떻게 보면 사전적으로만)잘못된 환승 버스 정류장에서 그들은 마음 버스를 다시 탈 때까지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헤어질 준비를 하러 그들이 처음 만난 역으로 간다. 우연이 시작된 곳에서 다시 상상(상상1)으로 연극을 시작하고, 영화는 끝난다.


3편이 영화 외적으로 다른 두 편 보다 재밌게 다가왔던 것은 캐스팅이었다. 감독의 첫 장편데뷔작 <열정>에서도 두 배우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때는 가정주부역의 카와이 이오바가 결혼을 앞둔 선생님 역으로 나오고, IT개발자 역의 우라베 후사코가 남자가 마음을 둔 여성으로 나온다. 그것도 벌써 15년도 더 된 영화고 이야기라, 실제 촬영장에서도 두 배우의 재회가 영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참고로, 이 영화에는 <열정>에서 나왔던 배우가 한 명 더 나오는데, 그는 2부의 소설가이자 대학교수다. 


2부 : 문은 열어 둔 채로



어느 대학교, 수업 중이던 도중 건너편 방에서 큰소리가 난다. 사람들이 뒤를 돌아서서 보니, 어떤 교수의 사무실 안에서 어떤 남자가 무릎을 꿇고 빌고 있다. 자신의 졸업과 관련된 문제인 것 같은데, 교수는 그를 용서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반대편에서 나온 사람이 문을 닫으려고 하지만, 교수는 단호이 문을 열어놓으라고 말한다. 이유는 : 그래야 사람들이 다른 것으로 오해하지 않으니까. 아마도 그의 생각은, 방에서 일어나는 일이 무엇이던 투명하게 그대로 보여져야 오해를 사지 않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어떤 자취방에서 여자와 남자가 이야기를 나눈다. 남자는 첫 장면에서 교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던 사람이고, 여자는 남자의 연인이다. 그런데, 여자는 사실 유부녀고 잠시 휴직을 하고 학문을 위해 대학교에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여자는 남자와 밀애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그때, TV에서 앞의 장면의 교수가 새로 나온 소설로 상을 탔다는 장면이 나온다. 남자는 부들거리며 복수를 하고 싶어하고, 여자를 미인계로 써서 교수를 골로 보내려는 계획을 짠다. 
 
 여자는 교수의 방으로 찾아가고, 수업을 잘 듣고 있으며 상담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는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윽고, 자신이 감명을 받았다는 장면을 낭독한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전혀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여자가 읽는 부분은 두 남녀의 성행위를 묘사하는 장면이었다. 여자는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교수는 이것을 보고 문을 다시 연다. 계획대로 되지 않자 여자는 잠시 당황하다가 이윽고 다시 침착하게 자리에 앉아 긴긴 시간동안 마침내 낭독을 완료한다. 그리고 교수에게 질문을 한다.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이런 장면을 쓰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런 장면을 쓰게 된 기저에 교수 자신의 어떤 성향이 반영되었는지. 교수는 담담히 그 질문에 답변을 한다. 그는 (화면에서 보이기에)청렴하고 윤리적인 사람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윽고, 교수를 물먹이기 이전에 그의 팬이기도 했던 그녀는 일순간 태도를 바꾸며, 자신의 계획을 말하고, 자신의 선택을 반성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에피소드가 끝났다면 그저 일반적인 협박과 회유가 됐을테지만 변주가 일어난다. 교수는 여자가 협박용으로 녹음한 파일을 간직하고 싶어한다. 아마도 이것은 그만의 취향일지도 모르겠다. 내지는 영화 속 대사처럼 자신의 문장을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묘사하여 읽은 것에 감명을 받은 것일지는 모른다. 그런데, 여자는 여기에 한 술을 더 떠서 교수가 자신이 녹음한 소설 장면을 들으면서 (진심으로) 자위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상상2) 그래야 녹음파일을 보내주겠다고. 확인할 길은 없겠지만, 교수는 그것을 승낙하고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방에서 나간다. 원래는 남자의 악의적인 의도에 여자가 동참하면서 시작됐던 일이, 교수가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면서 윤리적인 결말로 나아가는 듯하지만, 여기서 한 번 더 이야기가 꼬이면서 둘의 성적 성향(으로 보이는)의 특성으로 새로운 분기점이 생겼다. 이 모든 일은 (거의) 문이 다 열린 채로 이루어진 일이고, 법적으로 문제되고 오해를 살 일도 없는 상태다. 다만, 남자와 교수의 상황과 다른 점이 있다면, 둘 사이에만 납득하고 합의된 어떤 비밀 같은 일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 비밀은 교수와 여자 사이에서는 통용되지만, 다른 사람에 귀에 들어가면 안되는 일이다. 그리고 며칠 후 여자가 정신없는 틈에 녹음파일의 수신인 메일 주소를 우연이 잘못 기입하게 되면서 (우연2) 문 밖으로 새어 나가지 말았어야 할 것이 퍼진다. 


영화는 그 파국의 단계를 보여주는 대신,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 (아마도) 이혼을 당한 후 편집회사에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담는다. 그녀는 매우 피곤해 보이고, 화려함도 잃었다. 그때, 이 모든 일을 최초에 설계했던 남자가 그녀가 탄 버스에 올라탄다. 그는 뻔뻔하게도, 그녀에게 곧 자신이 결혼을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교수는 행방불명이 됐다고 말한다. 이 불행의 책임은 대체 누구에게 물을 수 있는 것일까? 최초의 설계자인가, 거기에 동참한 사람인가 혹은 불행의 씨앗을 받아드린 누군가일까. 


1부 :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



직장동료의 새로운 썸상대가 나의 전 남친이었다니. 1부의 인간관계는 이것으로 정리가능하다. 하지만 중요한건 관계 자체보다 관계를 이루고 잇는 기저의 심리상태다. 관계의 종말점이란 것은 진짜 있는 걸까? 메이코가 츠구미와 택시를 타고 가면서, 모델인 메이코는 사진작가이자 친구인 츠구미에게 그녀가 얼마 전 만난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서로의 연애관과 스타일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츠구미는 그 남자와 그날 잘수도 있었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 날 그 공간에서의 느낌과 기억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자고 나면 그 기분을 놓쳐버릴 것 같아서. 한편, 남자는 이전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여자친구가 바람을 펴서) 사랑을 쉽게 믿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래도 둘은 한 번 더 만나기로 했고, 메이코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에 빠지는 것 같다. 그리고는 츠구미가 내린 후 차를 돌려 집으로 다가다 문득 다른 행선지를 말한다. 


어느 스타트업의 사무실로 보이는 곳으로 다짜고짜 들어가 어떤 남자를 부르는 메이코. (약간은 진부할 수 있지만) 사실 츠구미가 만난 운명의 남자(라고 생각되는)는 그녀의 전 남자친구인 카즈아키 였던 것. (우연3) 사실은 끝났을 줄 알았던 관계가 다시 시작될지도 모르는 오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어쨌든 누군가를 사랑했다면 그 흔적이 남기 마련이니까. 이성적으로 보자면 새벽이 다 된 시각에 남의 사무실로 들어와 자기의 바람으로 끝났던 관계에 다시 심폐소생(내지는 자신의 지인에게 넘기고 싶지 않은 마음?)을 불어넣으며 영화는 나에게도 긴장감을 주입했다. 



그리고 며칠 후 (영화를 본지 오래되어서 확실치 않다...) 츠구미와 메츠코가 카페에서 만난다. 츠구미는 메츠코에게 묻는다. 그 남자랑 만나기로 했어? 츠구미는 응, 오늘 저녁에. 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 순간 카즈아키가 카페앞을 지나가고 그 둘의 관계를 알리 없는 츠구미는 그를 부른다. 어색한 분위기로 인사를 오가는 찰나 메츠코가 갑자기 돌변하며 자신과 카즈아키의 과거를 말하고, 둘이 관계를 부정한다. 츠구미는 충격을 받아 나가고... 메츠코는 다시 정신을 차린다. (상상3) 잠깐의 상상을 한 메츠코. 하지만 현실(로 보이는)에서는 그런 대담함을 보이지 못하고 그 둘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자리를 피한다.


1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 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랑에 대한 스탠스는 아니였을 까.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의 기분과 사랑을 끝낼때의 기분과 그리고 끝난(것같은)사랑을 다시 만났을 때의 자세, 그리고 그 옛사랑을 떠나보내며 성숙해지는 사람의 자세를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왠일로) <우연과 상상>의 1부가 파국이나 불투명한 미래를 향하고 있던 것과는 다르게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끝난 것 같아 놀랐다. 하긴, 거기에서 메츠코가 자신의 상상을 실현했다면, 영화는 그것을 매듭짓기 위해 (혹은 매듭을 풀다가 가 더 꼬이는 식으로) 시간이 더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난다. 어떻게든 결정이 나는 일들이 있고, 그 순간마다 선택을 해야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땐 너무나 불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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