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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7-28 한

Lange Nacht der Museen

by soripza

베를린에 행사가 있었다. 토요일 여섯시부터 그 다음날 새벽까지 베를린의 박물관을 개방하고(물론 티켓은 사야함), 여러가지 부대행사가 있는 'Lange Nacht der Museen(박물관들에서의 긴 밤)'이었다. 나는 이주 전 쯤 티켓을 사놨고, 당일날에 유학원에서 알게된 두 명의 친구들과 함께 행사에 참가했다.


https://www.lange-nacht-der-museen.de/

수 많은 박물관/미술관과 더 많은 (거의 700개)에 해당하는 부대행사에서 어디를 갈 것인가는 (적어도 나에게는)중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미리 추리고 추려서 리스트를 작성했고, 다른 한 친구가 작성한 것도 합해서 그날의 일정을 짰다. 사실, 행사가 6시에 시작되어서 4시에 만나자고 했는데, 나만 계획적인 성격이라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처음 간 곳은 Gropius Bau라는 현대미술관이었는데 여기에서는 전시를 봤다. 곧 석사를 시작하는 한 친구가 패션 쪽이었는데, 여기에서 진행되는 특별전시를 보고싶다고 했고 알고보니 내가 이 미술관을 오고싶던 이유도 그 전시때문이었음을 포스터를 보고 알게됐다. 작가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직물 또는 천을 이용한 여러가지 작품을 만들었고, 주목할 만한 점은 여성의 몸/거미/본인의 옷 등이 주요 소재 또는 테마로 사용됐다. 특히, 거미에 대한 것이 흥미로웠는데, 그녀가 실로 무엇을 제작하는 사람인 만큼 '거미'라는 존재역시 실을 뽑아내 집을 짓고, 고치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그녀는 자기 자신을 거미에 투영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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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선 80년대 베를린의 VR체험을 할 수 있는 체크포인트 찰리로 향했다. 여기에 온 것은 나도 처음이었는데, 마치 너무나 '관광지'적인 느낌을 받아 미묘한 느낌이 들었다. 알고보니 VR체험은 미리 따로 티켓을 사야해서 못했고 대신 주변에 마련된 공간들을 보며 장벽이 너머의 동독/서독의 상황을 간단하게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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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가 되가다 보니 배가 고파졌고, 근처의 푸드트럭이 있는 곳으로 가서 피자와 감자튀김을 시켜 간단히 먹었다. 독일에서 세명이 모인 것은 나에게 처음이었는데, 말을 하는 것이 나에게는 쉽진 않았다. 베를린이라는 같은 공간에 있고, 독일로 공부를 하러왔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과도 다 다르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환경도 다르고 나이도 달라서 공감대가 있어도 그것은 보통 '유학생활'에 대한 이야기일 경우가 많았다. 나는 좀 더 깊거나 개인적 차원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이런 상황에서는 서로 걷도는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있다. 혹은, 내가 아직 조급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에 있는 친한친구들과도 한 두 번 만났을 땐 당연히 어색한 시간이 있었을 것이고, 누적된 시간과 만남을 통해 지금에 이르렀을 텐데. 뭐 그런 친구들도 어느정도는 결이 비슷했기 때문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건 지금의 환경과 나의 성격이 이루어낸 콜라보이고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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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선 기술박물관으로 넘어갔다. 여기서는 박물관 관람 보다는, 쥬얼리공예와 모스부호로 만든 팔찌를 만들기 위해 갔는데,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역시 직접 뭔가를 하는게 제일 재밌고, 여기서의 텐션이 제일 높았던 것 같다. 나는 사실 리스트업을 할 때 뭔가를 체험하는 것은 제외하고 검색을 했었는데(설명을 듣고 하려면 독일어나 영어를 잘 알아들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꼭 그럴 필요는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다른 친구가 잘 골라서 덕분에 제법 의미가 있는 팔찌를 만들 수 있었다. 내 이름 두글자를 영어로 했을 때의 신호를 담았고, 기술과 예술의 만남...같기도 해서 좋았다. 쥬얼리 공예는 나는 따로 하지 않았다. 색칠을 해야했기도 했고, 주로 어린 아이들이 와서 체험을 하고 있어서 그냥 나를 제외한 두 친구가 하는 걸 지켜보면서 잠깐 쉬었다. 아이들이 엄마랑 오는 곳에 왠 성인 세명 (25살 2 / 32살 1)가 와서 하고 있는 걸 보면 누군가는 안좋게 생각 할 수도 있겠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는 사람들이 만족했으니 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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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는 메르키세스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출발할 때만 해도 그것이 잘못된 선택인지도 모른 채. Hof에서 행사를 한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박물관 로비에서 행사를 하고 있었고, 칵테일 파티는 너무나 썰렁하게 거의 텅 빈 공간에서 몇명의 사람들도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칵테일을 하나 씩 시켜먹었는데, 거기에서 텐션이 떨어져버렸고... (물론 시간도 12시가 다 되가기도 했다.) 하필 나오니 비가 오기 시작했고, 지하철은 늦고... 놀라운 것을 하나 봤다는 것이라면 근처 지하철 역에 내렸을 때 클럽에 가려는 사람들의 엄청난 행렬을 보았고 파격적인 코스튬을 보면서, 도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궁금해졌다. 나는 개인적으로 클럽에서 노는 건 영 취향에 안맞고, 그냥 들어가서 구경만 하고 싶긴한데 입구에서 거절당하겠지... 라고 생각했다.


비를 뚫고 마지막으로 향한곳은 Neues Museum이었다. 나는 이 행사를 봤을 때 처음부터 밤의 박물관에서 이집트 유물 옆에서 사진을 찍고 싶은 욕망을 이루리라 라고 생각했다. 과연, 살짝 어두운 박물관에서 보는 유물들은 (피곤했음에도 불구하고) 멋졌고, 나는 몇 개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조명으로 빛춰진 탁트인 공간의 상들은 마치 '문나이트'의 장면을 보는 것 같아 설랬다. 그 때는 이미 새벽 한 시 반을 지나가고 있었고, 그때정도 되니 다들 지쳐서 슬슬 집에 가고 싶어했다. 행사는 새벽 3시까지긴 하지만, 차가 끊길수도 있고 집에 돌아갈 때 위험할 수 있으니 이쯤에서 헤어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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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S-Bahn과 Tram을 타고 집에 도착했다. 씻고 누우니 거의 세시가 됐고, 내일은 그냥 천천히 일어나서 장학금 신청을 위한 자기소개서와 추천서를 위해 교수님에게 보낼 메일을 완성할 생각이다. 월요일이면 다시 새 수업이 시작한다. 주말을 알차게 보낸 것 같아 기쁘다. 비자 신청도 빨리 끝냈으면 좋겠고, 다음 수업이 끝나면 이제 나를 기다리는 건 카셀 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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