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9월2일)로서 무비자로 독일에 머무를 수 있는 쉥겐조약비자 90일이 끝났다. 그 사이 괴테인스티튜트에서의 새로운 C1.1수업도 일주일이 지나갔다. 매번 들었던 수업에서는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는데, 이번 수업은 그것의 안티테제도 아니고 12명 중 유럽인은 딱 3명에 불과했다. 그리고 여기와서 처음으로 같은 반에 동양인을 만났다. 그것도 3명이나. 아시아사람이 중국, 일본, 몽골 그리고 나 까지 네명이라 무려 33%를 차지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서로 사이가 다 안좋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이야기를 하면 안되겠다라는 생각을 의식으로 가져와서 내내 내 머리맡에 뒀다. 아시아인들은 말이 없었다. 중국인은 매번 수업때마다 질문을 많이 하고, 수업시간 중간에도 뭔가 말을 많이 하는데 영양가는 없는 것 같다. 이와 반대로 일본인과 몽골인은 말이 (거의)없다. 독일어로 따지면 wortlos한 사람들... 일본인 여자애는 25살이었고, IT회사에서 마케팅 같은 것을 하다가 관두고 독일어 번역 일로 커리어를 바꾸고 싶다고 해서 독일에 여행 겸 언어를 배우러 왔다고 했다. 일본어 투가 심해서 첫날 그와 옆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눌 땐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다. 몽골에서온 남자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기에 넘어와 베를린에서 3년을 살았다고 했다. 이제 10월에 대학교 지원을 한 상태고, 곧 TestDaF시험을 본 뒤 그 성적으로 학사를 시작할 것 같다고.
하지만 이번주를 보내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멕시코인 두 명이었는데, 한 명은 수요일날 있었던 오전 시내 투어에서 같이 말하면서 친해졌다. 본인이 생각보다 나이가 많다면서 (29살이었다. 나보다 어렸지롱), 본인은 이미 대학도 졸업하고 선생님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철학을 전공했고, 학교에서 철학이랑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멕시코에 대한 흔한 스테레오 타입을 내가 그녀에게 투영하고 있는 걸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밝아보였고 말을 걸면 뭔가 신나서 말하는 모습이 하루하루를 즐겁게 즐기는 중남미의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나머지 또 한 명의 멕시코인은 두 번째 날인가, 쉬는 시간에 우르르 내려와서 벤치로 가려는데 담배를 한대 피면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같은 반이었고, 둘째날에 편입이 됐는데, 옷차림도 조금 꽤죄죄하고 힘도 없어보여서 저 사람은 뭘까... 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그는 (아직 나이는 모름, 하지만 상관없음, 나보단 어려보였음...) 내가 한국인인것을 알고서는 대뜸 자신이 '홍상수'의 팬이며, 너도 영화가 취미라고 들었는데 홍상수의 영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다. 나도 물론 아트하우스 영화를 좋아하고, 홍상수의 영화를 좋아하지만, 이런, 어찌보면 거대한 질문을 독일어로 하기엔 나의 독일어 실력은 아직 작고 소중해서 표면적인 이야기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곳곳에 나와 비슷한 영화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꼭꼭 숨어있다가 어느샌가 나와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재밌었다. 그는 한국에 관심이 많은지, (비록 좋은 영향은 아니겠지만) 자신이 가끔 보는 비트코인 한국유투버 영상도 나에게 보여줬다. 그러면서 이 사람 말투가 어떠냐고 물어보기도 했고, 그런 방송에서 많이 들은 욕을 나에게 웃으면서 시연하기도 했다. '시불'이라는 말을 걸걸하게 내뱉는 것을 들었는데, 그것이 된소리가 아니라 막걸리 한 잔 아저씨가 다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세상에 한탄하는 소리처럼 들려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올애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가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고, 언젠가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은 나오지 않았다.
이번반은 다들 조용해서 수업시간이 조금 심심하긴 하다. 두 번째 수업의 체코아저씨 처럼, 이번엔 내가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다음주에는 맥주마시러 가자고 말할 생각이다. 한편, 선생님은 스위스에서 왔는데, 약간은 FM대로 가르치는 스타일이라 대화로 무언가를 많이 하다기보단 문법이나 읽기를 많이 시킨다. 그래서 쉬는시간에 몇몇과 이야기를 했을 때 그것에 조금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도 했다. (나도 일부 포함) 오늘은 독일어 사투리에 대한 글을 읽었는데, 선생님이 자기도 사실은 스위스 사투리 억양이 엄청 심한데 수업에서는 엄청 참으면서 표준어 쓰고 있는거라고 말했다. 자기 친구들이 이모습을 보면 쓰러질거라고.
얼마전엔 리디북스 계정에 가입했고, 유디트 헤르만의 <여름 별장, 그후(Sommerhaus, später)>를 샀다. B2.2 수업 때 읽었던 기억이 너무 좋아서 독일어 책을 샀고 저번 토요일날 빨래를 돌리면서 단편 하나를 읽었고, 내가 이해한게 맞는지 한국책과 교차검증을 했다. 확실히 독일에 오고나선 느끼는 것도 많아서 다시 예전처럼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고, 실제로 초고지만 한 편을 쓰기도 했다. 거기의 그녀(유디트 헤르만)의 소설이 큰 역할을 해준 것 같다. 약간은 고착화된 한국내의 소설씬과는 다른, 90년데 말의 세기말 느낌이 듬뿍 들어간 그녀의 소설은 내가 한창 대학을 다닐 때 좋아했던 은희경이나 권여선의 소설 분위기를 생각나게 했고, 그래서 나는 오랜만에 컴퓨터에 저장해둔 그들의 소설을 다시 읽기도 했다. 과거 미화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때(90년대)의 소설들이 지금 것 보다 문장의 느낌이나 소설의 전체 구성이 좀 더 세련되고 멋있다고 생각한다.
독일어를 하는 나를 마주하면, 마치 또 다른 나의 자아를 마주치는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한정적이기도 하지만, 내가 배운 표현과 독일어를 익히면서 생긴 내가 자주 쓰는 문장이 있기도 하고, 독일어의 진정한 느낌을 (단어에서 풍기는) 모르는 외국인이다 보니 이걸 한국어로 옮기면 그 모습은 한국어를 하는 내 모습과는 또 다를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업 때 만난 사람들이 혹시 내가 한국어로 말하는 것을 각자의 모국어로 변역되어 접하면 놀랄지도 모르겠다.
또다른 한편, 저번 수업때 가장 친했던 장-필립에게서 이메일 답장이 왔다. 메일을 써줘서 고맙다고, 곧 프랑스는 개학이라 바빠질 것 같다고 했다. 앨자스에 오면 꼭 연락을 다시 하라고도 했다. 편지 맨 끝에 그의 주소처럼 보이는 것이 있어서 구글에 검색했는데, 밑에 지도 뷰가 떠서 클릭해봤다. 과연 그의 집은 작은 도시에서도 또 들어가야 하는 시골같은 곳에 있었다. 하지만 웃겼던건, 구글 스트리트 뷰에서 그의 집을 찍은 사진에 그와 그의 두 아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얼굴은 블러처리가 되서 볼 수가 없었지만, 나는 그의 체격와 느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은 영락없는 그였다. 구글 스트리스 뷰의 업데이트 간격이 얼마간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내년 봄에 내가 그를 찾아가면 업데이트 된 사진엔 나도 손을 흔드는 사진이 찍혔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년 봄, 수업이 끝나고 나서 프랑스로 갈 여행 계획도 대략적으로 머리에 그렸다. 베를린에서 출발하여 우선 슈투트가르트 - 칼스루헤를 거친뒤 프랑스로 넘어가 슈트라스부르크와 콜마(쟝-필립을 여기에서 보고)를 거친 뒤 파리로 가거나 니스 혹은 칸에 가볼 생각이다. 그리고선 비행기를 타고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오면 되겠지.
오늘은 수업 시간에 전형적인 듣기 시험 문제와 읽기 시험 문제를 풀었다. 듣기는 10개중에 꼴랑 4개를 맞아서 시무룩 했는데 (C1합격선은 60%를 맞추면 합격이긴 하다) 다음 시간에 이어진 읽기는 8개중 8개를 다 맞춰서 다시 자신감이 상승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충분히 잘 하는 사람일거야, 라고 되뇌였다. 나는 꼭 나보다 더 잘라거나 어느 한 영역에서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을 부러워만 하고, 나를 낮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내가 가진 것들 (혹은 잘 하는 것들)에 만족을 하는 대신에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을 자주 느꼈다. 여기와서도 그런 순간들이 많았다. 말을 마치 독일사람처럼 잘하는 같은 반 사람들을 보면서 와, 나는 언제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고, 나와 말은 비슷하게 하는 것 같은데 듣기 문제와 독해 문제를 잘 맞추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 저사람들은 유럽에서 살아서 그래도 잘 알아듣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어학원 다니는 나날도 길어졌고, 이제는 여유도 생겼다. 말도 빨라지고 (비록 고급 어휘는 아직 사용하는게 어렵지만...) 6월의 나보다는 장족의 발전이 독일어 영역에서 있었다고 생각한다. 숙제하고 집안일하고 다른 일(장학금 신청 / 대학 알아보기 / 서류작업)등을 하느라 솔직히 일기를 매일 못쓰는게 아쉽기도 하고 나와의 약속을 못 지키고 있는 것 같아 위선자 까진 아니지만 실망스럽다고 생각 될때도 있다. 강박을 점점 버리고 결국엔 잘 되면 다 좋은 거 아니겠어, 라고 생각한다. 중요한건 생각만 하는게 아니라 좋게 되기 위해서 내가 실제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하고 있으면 아무렴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