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의 파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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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가 알고리즘으로 떠서 보게된 유투브 동영상에는 이런 설명이 :
4인 가족 한 집이 한 달에 에너지를 1000kWh를 쓴다고 하였을 때 이는 18m짜리 나무 두 개를 태웠을 때 나오는 열량과 같다.
차가 고속도로에서 1인치 (2.54cm)를 갈 때 사용되는 석유는, 20억 마리의 플랑크톤의 잔해가 오랜시간이 흘러 압축되어 만들어진 액체 한 방울(은 될까?)이다.
2018년 한 해의 인류가 소비한 화석연료의 양은 현생(2018년 지금 지구상에 있는 모든 식물/동물/미생물)을 살고 있는 모든 동식물에 들어있는 탄소양의 100배다
우리는 과거의 존재들로 지탱되고, 그들의 사체로 지금 생활을 유지하는데. 그런 유리의 생각은 지구가 망한다는데 나 때만 아니면 됐지, 내지는 어차피 멸망한다는데 펑펑쓰고 죽지가 많은 것 같아 아쉽다. 근데 말을 똑바로 해야지. 지구가 망하는게 아니라 우리가 지구에 살 수 없는 것이라고. 어쩌면 그래? 우리를 받혀준 과거의 생물들, 그러니까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플랑크톤들 꼭대기가 보이지도 않을 만큼 높은 나무들. 그들이 지금 인간의 마음을 알 수 있다면 당장 우리에게 달려들어 그 작은 촉수와 나뭇가지로 우리의 멱살을 잡아채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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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책없이 어두운 혹은 화질이 구린 혹은 선명하지 않은 00년대 초중반의 일본영화들을 좋아한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스윙걸스> <무지개여신>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등. 핸드폰이 똑똑하지 않고 음악을 시디플레이어나 엠피쓰리로 들어야할 그 시점의, 그래서 지금 사람들이 보면 너무나도 오래되고 낡은 감정들이라고 생각되는, 그런 로맨스의, 그런 영화에서 보이는 연애의 감정들이 나는 좋았고, 아니 그런걸 보면서 그런게 좋아진 걸 지도 몰랐고 그래서 지금 내가 현재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는 건지. 어떤 영화는 OTP서비스가 시작되어도 구하기 힘들어서, 이전에 내가 불법적으로 다운받아 놓았던 외장하드를 USB로 연결하여 다시 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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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나의 비밀을 한 명에게는 말해 놓을 것? 누군가가 알아야할 비밀을 제3자에게 말해놓는 다면, 갑자기 내가 죽어버렸을 때 누군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잖아. 하지만 그 비밀을 말하는 사람을 신중하게 고를 것. 근데, 그러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지 않나? 지하에 파놓은 구멍이나 대나무 숲 그리고 <화양연화>에서 나온 것처럼, 앙코르와트 신전에 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 비밀을 말하고 그것을 덮어도, 언젠가는 그것을 알게되는 것처럼. 어쩌면 그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한다는 건 그것이 나중에 알려져도 상관없다는 무의식에서 비롯된 행동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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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출국 전 봤었던 국립극단의 연극이 온라인극장에 올라왔다. 한국을 떠나기 전 봤었던 4~5월의 연극들은 너무나도 다 좋았어서, 하루에 하나씩 결제해서 보고있다. 그래서 여기에도 쓴다.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
<금조 이야기> 꼭 보세요 두번보세요. 22일까지는 할인해서 6600원입니다. 국립극단 온라인 극장.
나는 저 두 연극을 보고 리뷰도 썼었고 (하지만 친절한 버젼은 아닌) 지금도 <서울 도심의~>를 보고 있다가 2주간 밀린 한국어 일기이자 파편일지도 모르는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 국립/극단/연극/온라인/극장 이라는 단어를 연속해서 쓰면 검색어에도 걸리고 사람들이 지금 이 문장을 읽고 저것들을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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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춥다. 한 수업이 끝났고 다시 한 수업이 시작됐다. 지금까지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저번 수업에서는 멕시코 인 두 명과 친해졌다. 한 명은 첫날에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고 홍상수에 대해 물었고, 한 명은 두번째 날에 어학원 투어를 나가서 이런저런 말을 많이 했다. 그 중 한 명은 멕시코로 다시 돌아갔고 오늘 아침 메일을 썼다. 나머지 한 명은 지금 같은 반을 연속해서 같이 듣는 중이다. 그러는 사이, 이번 수업에는 10월에 베를린 자유대 독일어과 입학을 앞둔 만 23세의 일본인 남자아이를 알게됐다. 그가 나이를 물어봤을 때 나는, 생각보다 조금 많아요라고 말하며 만 31살이라고 밝혔는데, 그는 (내가 잘못들은 것일수도 있지만) 생각한 것 보다 적은데요?라고 말하서 당황했다. 이것이 일본식 맥이기인가? 아니면 순수한 말이었을까... 금요일엔 그와 또 한 명의 우크라이나 사람과 그의 제안으로 아시아마트에 다녀왔고 청하 한 병, 막걸리 한 명, 너구리 한 봉지 그리고 짜파게티 한 봉지를 사서 들어왔다. 다음주나 수업이 끝나고 언젠가 일본인의 집에 가서 짜파구리를 해준다고 했고 그들도 좋아하는 눈치였다. 입국 100일만에 드디어 (간헐적이지만 볼 수 있는) 내 힘으로 만든 외국인 친구가 생긴걸까? 일본인 친구는 나의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살았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사이 그는 나지막하게 '일본이 없었다면 한국이 지금 남한/북한으로 안나눠졌을텐데요... 일본에게 책임이 있는 것 같아서 미안합니다.'라고 말했다. 술에 취하지 않은 채로 말한 거니까, 이사람은 괜찮은 사람일지도 몰라, 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