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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Nov 19. 2022

하노버와 옐라<Yella, 2007> 3부

※ 해당 글에는 영화 <옐라>에 대한 스포일러가 가득합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하노버 여행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 있습니다. 


2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ods115/214


독일에서 산 DVD 표지. 하지만 리더기가 없어서 보지 못하고 있다..



쓰다 보니 글이 3부까지 왔다. 이 정도로 영화 글을 썼던 건 몇 년 전에 쓴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 Arrival> 이후 오랜만인 것 같다. 그때는 거의 순수하게 영화적인 내용만 썼던 것 같긴 하다. 이번 글엔 하노버 여행에 대한 글도 들어있으니 길어진 것도 있다. 


대충 동쪽 전람회 지역이라는 뜻


내가 미술관을 나온 후 향한 곳은 엑스포 지역이었다. 옐라가 하노버에 도착해 호텔을 찾아가고, 알파 윙스에서 사기를 당하고, 남자와의 관계가 이루어진 곳이 이곳이었다. 하노버 시 홈페이지에서 정확한 거리까지 알아내진 못해서 영화 장면과 비슷한 곳을 찾아내진 못했다. (내지는 시간이 너무 흘렀고, 내가 게을렀을 수도 있다.) 엑스포는 내가 온 이곳과 다른 곳에 장소가 하나 더 있는데, 1부에서 말했던 박람회는 다른 쪽에서 열리고 있어서 내가 도착한 곳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옐라>에서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넓은 땅과 거대한 건물이 있지만, 거기에 있는 건 사람 몇 명뿐. 마치 유령들이 사는 동네처럼 나는 엑스포 거리를 걸어 다녔다. 거기엔 어느 대학의 건물도 있었고, 회사도 많았다. BMW는 아예 큰 전시회장을 가지고 있어서 오토바이와 그들의 신규 전기차 라인업도 전시해놓은 것 같았다. 


영화 촬영지였던 호텔. 아마도 내부 씬을 찍은 것 같다. 입구와 로비는 영화에서 나온 곳과 달랐다. // 근처의 창고들


엑스포에는 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그 밑으로는 고속도로가 있었다. 양방향으로 빠르게 달리는 차들을 보면서 저 것들을 다 합치면 얼마일까 생각했다. 나도 한 때는 차가 있었다. 차는 가격도 비싸고 유지비도 많이 든다. 그만큼 편리한 물건이지만 이제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은 지도 6개월이 넘었다. 이제 다시 다른 의미의 BMW로 돌아왔다. 큰 도시에 살면 그런 것들이 불편하지는 않다. 하지만 다른 도시에 가면 중고차를 하나 사야 될지도 모르겠다. 도르트문트에서 만났던 지인이 중고차를 파는 사이트를 알려줬다. 나중에 내가 어떤 도시에 갈지 모르겠지만, 대도시가 아닌 곳으로 간다면 차를 하나 구매할지도 모르겠다. 다행스럽게도, 독일엔 멋있는 올드카들이 많다. 그래서 나중에 중고차를 구하게 될 때도 내가 가지고 있는 한도 내에서 꽤나 디자인도 마음에 드는 차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영화 이야기 : 후반부

옐라는 물에 빠져 죽은 남자를 바라본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어 그녀는 경찰차 뒷좌석에 있다. 그녀는 흐느끼고 있다. 그녀가 해버린 실수. 돈 때문에 다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 버린 그 실수 때문에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되돌릴 수 없는 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비가역적이면서 후회되는 것은 생명일 것이다. 그러다가 일순간, 배경이 바뀐다. 옐라는 다시 처음 장면으로 돌아와 있다. 그의 옆에는 화난 남편이 차를 몰고 있고, 차는 마침 다리로 들어섰다. 남편을 다시금 '미안해'라는 말을 남기며 핸들을 옆으로 돌린다. 이번에 옐라는 핸들을 잡지 못하고, 담담히 자신의 최후를 받아들인다. 차는 다시 다리 아래로 떨어진다. 옐라와 남편은 강 둑에 옮겨져 있다. 그리고 몇 초 후 누군가가 그들의 시체를 은박지와 같은 재질로 덮으면서 영화가 끝난다. 



처음 이 영화를 본 건 앞서 말한 GV가 있을 무렵의 대한극장에서였다. <트랜짓>과 <운디네>의 한국에서의 소소한 성공으로 인하여 수입자가 특별전을 개최했고, 서울/경기 권에서는 CGV아트하우스와 대한극장에서 그의 영화들을 상영해줬다. 그날은 <옐라>와 <열정, Jerichow>를 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옐라에서부터 충격을 받았다. 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이라고 느껴질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감탄했다. 그의 영화에서, 그러니까 최소한 <옐라>에서 영화를 감상한 뒤에 '그래서 그녀가 첫 번째 추락에서 죽은 거야 아닌 거야?'내지는 '그래서 그녀가 겪은 것들은 진짜야 가짜야?'라는 물음은 중요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용상으로 옐라는 1차 추락에서 숨지고, 그 이후의 일들은 유령이 된 그녀의 여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만, 모든 내용들을 체크해가면서 이건 유령이면 안 일어났을 일이야,라고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영화에서 다루는 자본주의에 대한 잔인함과 돈에 대한 끈질김과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의 욕망이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옐라>는 물귀신의 이야기로 보이기도 한다. 옐라와 남편은 다리에서 떨어져 강에 빠졌고, 옐라는 계속해서 물에 젖어있다. 그리고 중요한 순간마다 '물'을 지각한다. 호텔 로비에서 남자를 처음 마주쳤을 때, 남자의 노트북 화면보호기로 나온 거대한 파도를 본다던지, 회의 중에 떨어진 물컵에 압도되어 다른 이들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다던지. 그리고 물에 빠져 자살한 남자의 유령을 본다던지. 그리고 역시나,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최후를 받아들이며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한다. 마지막 순간 그녀가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돈에 의해 자행된 일들에 대한 수치심? 부끄러움? 확실한 건 영화에서 그녀는 두 번의 죽음을 맞았다는 것이다. 첫 번째가 사회적인 죽음이라면 (남편은 파산하고, 자신도 실업자인 신세였다는 점에서) 두 번째 죽음은 정신적인 죽음일 것이다. 두 번째 죽음은 첫 번째 보다 그 의미가 깊다. 왜냐하면 어떻게 보면 그녀에게 다시 주어진 원코인을 그녀의 욕심으로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남자가 부탁했던 2만 5천 유로에서 그 실수를 그만두었다면, 옐라가 다시 강으로 빠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그녀 스스로 돈에 대한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다.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이러한 타살과 자살들이 <옐라>의 배경에 깊게 깔려 있다. 그리고 이것은 영화 곳곳에서 느껴진다. 사람이 없는 박람회장. 파산된 회사 또는 사람 등등으로 변주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영화가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이유도 돈과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내가 느낀 자본주의에 대한 환멸감, 예컨대 회사에서 계속 들었던 '돈이 먼저지.'라는 논리와 '회사는 돈만 벌면 돼.'라는 사람들의 생각들. 요새 생기는 수많은 한국사회에서의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돈의 흐름이 연관되어 있는 일이 대다수라고 생각한다.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저버리고, 자연을 생각하는 항이 빠져있는 자본주의는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 노예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옐라도 그랬듯이(혹은 당했듯이)-죽음으로 브레이크 없이 끌고 가곤 한다. 이것은 가히 파멸적이다. 


현재의 독일은 동독이 서독에 흡수된 형태이다. 서독은 독일이 분단됐던 시절에 미국의 지원을 받아 자본주의로 성장했다. 물론, 그 자본주의의 정도에 있어서는 미국과 한국에는 비할바가 아니긴 하나, 동독과 비교했을 때는 확실히 경제 노선이 달랐다. 베를린은 동서로 나누어져 있었고, 내가 베를린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는 동독에서 태어난 사람도 있다. 나는 그들에게 관심이 간다. 물론, 동독도 그들의 체제를 위해 사람들을 불법적으로 감찰하고 감시하는 일들을 저질렀다. 그 점은 잘못된 일이다. 장벽을 넘어가는 사람들을 사살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동독 출신의 사람들은 보면 적어도 '돈'에서는 서독 사람들보다 좀 더 자유로운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거기에는 인간성이 보인다. 그들은 좀 더 여유 있고 (돈의 유무와 상관없이) 삶을 즐기는 것 같다. 물론 이것도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통일 이후에 동독 지역 경제는 안 좋아졌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AfD라는 극우 정당을 지지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동독이야 말로 사회주의를 믿었던 좌파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그들이 현재 상황으로 인해 그 누구보다도 극우를 지지하는 주요 세력 중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이 슬프다. 



떠나는 날 아침엔 비바람이 세차게 내렸다. 나는 조용히 샤워를 하고 숙소를 나섰다. 문 소리가 들렸는지 호스트가 다가와서 잘 지내고 가냐고 물어봤고, 아직 부끄럼이 많았던 나는 속 안에 있던 말을 다 내뱉지 못하고 연신 Danke만 실컷 내뱉고 버스를 타러 갔다. 열차를 기다리면서 옐라를 생각했다. 영화의 시작 장면의 과거, 그러니까 하노버에 와서 채용이 됐음을 알고 (결국엔 사기였지만...) 신난 마음으로 비텐베르게로 돌아갈 생각을 하는 상상 속의 그녀를 생각한다. 나도 요새 '돈'걱정이 많다. 이제 나는 수입이 없고, 지금까지 번 돈을 까먹는 신세다.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도 하고 (그래서 장을 볼 때 가격에 민감해졌다.) 가끔은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선물처럼 근사한 식사를 스스로에게 주기도 한다. 어쨌든 나는 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유로운 사람은 정말로 천문학적 돈을 사진 소수의 사람들뿐일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람들도 아닐지도 모르겠다. 시험이 끝나고 일주일 동안 독일의 중부지역을 머물며 또다시 에너지를 충전했다. 이것은 내가 다시 살아갈 힘이다. 인간성을 잃지 않고 유령이 되지 않기 위해서. E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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