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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Nov 19. 2022

하노버와 옐라<Yella, 2007> 2부

※ 해당 글에는 영화 <옐라>에 대한 스포일러가 가득합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하노버 여행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 있습니다.


1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ods115/213


가장 마음에 드는 포스터


세상의 거의 모든 것에는 흐름이 있다. 유체적으로는 바람의 흐름, 물의 흐름 등이 있겠고 사람과 물류의 흐름도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엔 돈의 흐름이 있다. 그리고 영화에서 자주 언급되는 '대차대조표'는 자본주의 사회를 이루고 있는 한 축인 회사 내부의 자금 상태와 흐름을 알려준다. 1부에서 옐라와 호텔 로비에서 처음 만났던 남자의 질문. '대차대조표에 관심 있어요?'란 말에 옐라는 '그렇다.'라고 답한다. 그녀가 취업사기를 뒤로 하고 호텔로 돌아왔을 때 그가 그녀에게 다가온다. 같이 회의에 들어가 주고 대차대조표를 봐줄 사람이 필요하다면서. 마침 그녀는 회계(Buchhaltung) 쪽에서 일하기로 되어있었고, 현재 상황이 꼬였으니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그 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남자는 파산 직전의 회사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재무상태를 점검하고 투자를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처음에 옐라를 들러리 정도로 생각한다. 자신이 회의에서 어떠한 자세를 취하면 다가와 귓속말을 하는 척하라는 한물간 비니지스 심리전을 요구하거나, 안경을 써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회의 장소에서 옐라는 대차대조표를 파악하여 오히려 상대방에게 한 방을 날리게 된다. 그것은 바로 그 회사의 투자 물로 등장한 인프라와 네트워크망에 대한 비도덕성을 잡아낸 것. 그녀는 회계에 등장한 그 투자 물이 파산 전문 기업에서 사 온 것이 아니냐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구매한 가격은 몇 천 유로일 텐데 왜 이것이 대차대조표에서는 몇 만 유로로 둔갑하는 것이냐고.



사실 이 것은 그녀가 다리에 빠지기 전 그의 남편을 통해 유추한 내용이었다. 남자는 자신의 파산 뒤에 그것들을 위에서 얘기한 가격에 팔았고 다시 재기를 위해서 2만 5천 유로가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옐라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의 남편 회사에 있던 물품들이 이 회사로 옮겨간 것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이 일은 그녀가 그만큼 대차대조표를 자신의 능력으로 유심히 봤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남자 역시 그녀의 이런 부분을 높이 사고, 솔직히 놀랐다며 그녀를 그저 들러리로 생각했다는 것을 사과한다. 그렇게 그녀는 남자와 계속 일을 하기로 한다. 하지만 호텔에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상한 것을 느낀다. 자신의 방에 누군가가 왔다간 흔적이 있는 것. 그녀는 그것이 자신을 따라온 남편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한편, 자신을 데려갔던 남자가 밤에 호텔 앞에서 아까 회의장에 있었던 회사의 사장과 거래하는 것을 본다. 영화에서 자세히 나오진 않았지만, 남자는 그런 파산 직전의 회사들을 이용하여 뒷 돈을 챙기고, 투자 유치를 해주는 역할인 것 같았다. 다시 말해, 남자는 사기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하노버 이야기 :

자본주의의 사기성과 비인간성에 대한 생각을 잠시 뒤로 하고, 나는 미술관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멋진 거리의 모습과 거대하고 오래되어 보이는 신시청사 건물을 보았다. 솔직히 그걸 보면서 하노버라는 도시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관광도시는 아니지만 주택지역은 조용하고 정갈했고, 도심 쪽에는 이렇게 멋진 공원과 건물들도 있었으니까. 베를린처럼 북적북적한 것도 아니었고, 역은 적당히 붐볐다. 그리고 미술관이 무엇보다도 너무 멋진 기억으로 남았다. 몇 년 전에 리노베이션 한 상설 전시와 계속해서 바뀌는 특별전 네 가지를 전부 보고 나왔는데 내가 좋아하는 현대미술의 영역이라 더 좋았다. 미술관 내부 구조도 멋졌고, 덕분에 오랜만에 좋은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1층 어떤 구역에는 3D 프린터로 만들어진 작품이 있었는데, 그것은 작가가 VR 장치를 이용해 빈 공간에서 가상 작업을 하고, 이후 실제 3D 프린터가 그의 작업을 그대로 쌓아 올린 것이었다. 그가 만든 것은 어떤 섬-영국 쪽이었던 것 같다-을 보며 느낀 자연스러움과 곡선의 아름다움을 쌓아 올린 거대한 절벽 구조물이었는데, 층층이 색도 다르고, 이것을 그가 몇 개월 동안 VR을 이용해 만들었다고 하니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노버 신시청(Neues Rathaus)와 NORD/LB건물. 여기에서 옐라의 일부 부분이 촬영됐다.


상설 전시회는 미술을 이루는 요소들(Elemental)로 주제를 나누어 박물관이 가지고 있던 소장품을 정렬해 놓았는데, 마치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의 1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시 역시 흥미로운 작품들이 많았고, 시대와 상관없이 뭉쳐진 컬렉션들을 보며 시간을 초월하는 예술의 흐름을 목격한 것 같았다. 지상 층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아뜰리에가 막 끝난 것처럼 보였다. 도서관이 공사 중이라 가보지 못했지만, 내가 만약에 이 도시에 살게 된다면 자주 올 것 같은 장소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중간에 쉬는 장소에서는 미술관 바로 앞에 있는 큰 호수도 봤다. 탁 트인 시야에서 오는 안정감이 편안함을 배가시켰다.


미술관 사진들


옐라는 남자와 일을 계속해서 같이 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녀도 실수를 한다. 아니, 실수라기보다는 사기를 치려다가 걸린다. 남자가 입금을 부탁한 돈 중에 2만 5천 유로를 빼돌리려고 한 것이었다. 자신의 남편을 자신으로부터 떨어뜨려놓게 하기 위한 이유였다. 하지만 그것은 남자에게 제지당하고, 남자는 큰 화를 내며 호텔 앞에서 헤어진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옐라는 다시 남자의 방으로 향한다. 남자는 방에서 '로드 투 카이로(Road to Kairo)'라는 팝송을 듣는다. 그리고 그것은, 첫 장면에서 옐라를 따라오는 남편이, 빨간색 레인지 로바에서 듣는 노래와 동일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과거를 솔직히 털어놓는다. 남편과의 일이라던지, 남편이 왜 2만 5천 유로가 필요했는지 등에 대한. 남자는 옐라에게 말한다. '솔직히 당신의 사랑이 식어서 멀어진 게 아니잖아요. 남편이 파산하니까 사랑이 식어서 멀어지려고 거지. 당신은 거기에 죄책감이 있는 거고.'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그녀의 방으로 남편이 찾아오고, 그녀에게 위협을 가한다. 옐라는 남자의 방으로 찾아가고, 남편은 어느 순간 사라져 있다. 그녀는 그와 사랑을 나누고 둘은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려고 한다.



추측하건대, 옐라가 하노버 호텔에서 만난 남자는 자신이 바라는 이상이 모두 담긴 사람처럼 보인다. 자신에게 결핍이었던, 내지는 남편에게서 부족했던 것들을 채운 남자. 남자는 낡은 레인지 로버 대신 새끈 한 빨간색의 벤츠 해치벡을 모는 사람이다. 또 옐라의 남편과 정 반대로 파산을 하는 대신, 파산한 사람들을 이용해 많은 부를 축적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고향으로 돌아와 느낀 아버지의 따뜻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오렌지를 까주는 장면, 옐라를 챙기는 장면 등) 그러니까, 옐라를 유령으로 생각했을 때, 그녀의 한은 '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남자에게도 투영됐다고 볼 수 있다. 돈이 물질적인 것이라면 남자는 그 물질적인 것을 포함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다음날, 옐라는 남자 차를 대신 몰며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걸 알아챈 남자는 화를 낸다. 그는 결혼을 원치 않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 둘은 옐라의 아버지를 보러 갈 수 없다. 남자는 존재하지 않고 여자는 죽었다. 그래서 생각하건대, 초반 장면에서 남편이 옐라를 데리러 왔을 때 입고 있던 검은색 양복은 어쩌면, 옐라의 죽음을 암시하는 상복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옐라는 차를 멈춘 곳에서 남자의 사업 구상을 듣는다. 석유 시추하는 드릴과 관련된 사업을 하기 위해 이제 얼마만 더 사기를 치면 된다고. 옐라는 거기에 자신도 동참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녀가 다른 회사와의 회의에도 참석한다. 거기에는 얼굴이 익숙한 남자가 있다. 바로 옐라가 처음 하노버에 왔을 때 한참이나 보았던 부잣집의 남자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였던 그도 그의 사업에선 위기에 놓여있는 것이었다. 이제 옐라는 그 누구보다 무서운 기세로 따로 그 남자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의 생명보험과 아내 명의로 되어있는 집을 들먹이며 자신에게 필요한 돈을 한 번에 취득하려는 욕심을 부린다. 남자는 크게 불쾌해하지만 자신의 사업과도 연결된 일이라 그것을 승낙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음 날, 회의에 그가 들어오지 않는다. 옐라는 문득 물에 젖은 남자의 환상을 보고, 직감적으로 그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생각을 하고 그의 집으로 달려간다. 아니나 다를 까, 집 근처의 호수에 그가 죽은 채로 있었다.


미술관 근처 공원과 문이 닫혀있었던 또다른 미술관 (오전에 문을 안열었다.)


2부 끝, 3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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