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FilmKarton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ripza Feb 03. 2023

붕괴되어도 영속되는 : <헤어질 결심>-2

<헤어질 결심 Decision to Leave, 2022> 감상평 2부

*1편에서 이어집니다



영화 감상평 - 2


장면의 유사성

등장인물들은 어딘가를 오르내리고, 뛰어다닌다. 평지보단 산을, 산동네의 골목길을 오다니고 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한다. 질곡동 사건의 용의자 들을 해준이 쫒는 장면은 마치 흡사 서래가 전남편을 죽이기 위해 힘겹게 산을 오르는 것과 흡사해보인다. 그들은 지치지만 어떤 일을 수행하기 위해 움직이는, 다시 말해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산에서는 사람이 죽는다. (기도수/홍산오 그리고 재가 된 서래의 엄마와 외조부) 한편 바다는 평평하다. 평평한 장면에서는 마음이 안정된다. 첫 사건 이후 경찰의 취조실에서 서래와 해준이 처음 만났을 때, 평평한 책상에서 그 둘은 스시를 먹고, 마치 합이 잘 맞는 부부처럼 그것을 치운다. 흔들리지 않는, 균형이 맞는 공간. 하지만 바다에서도 사람이 죽는다. 서래의 두 번째 남편(빌라의 풀장)과 서래 자신.



장면의 흐름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에서 시작된 뼈다귀 -> 우주선 장면같은 화면 전환이 수없이 많이 사용됐다. 신체의 일부나 전체가 겹치는 것부터 시작해서, 동일한 박자로 깜빡이는 빛이 그렇다. 이런 형태적 유사성을 이용한 것 뿐만아니라, 현재와 과거가 오가고, 서로 다른 장소가 하나로 합쳐지는 것도 이런 자연스러움을 배가시켰다. 예컨대 서래의 집 앞에서 잠복 근무를 하고 있는 해준이 어느순간 서래의 바로 앞에 서있고,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을, 상상으로 생각한 행동을 취한다.  


시간의 지속

어쩌면 시간이라는 것을 오랫동안 쌓아오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질곡동 범인 추격씬(미결로 남아있었던 오래된 사건)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투사로 일했던 서래의 외조부의 대한 나래이션이 겹친다. TV에서는 시간대가 다르지만 비슷한 장면들이 반복된다. (장면의 유사성도 있다.) 조선시대에서부터 현재의 원자력발전소 드라마까지 이어지는,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 여기서는 남자가 모두 여자를 구하고 있다. 이렇듯 사랑의 '영속성'을 다른 이미지로 계속 투영시켰던 것은 아닌지.



헤어질 결심

헤어질 결심을 하기위해 새로운 남자를 만난다. 새로운 사랑으로 옛사랑을 잊는 것이 아니라, 옛사랑을 잊기 위해  사람을 만나는 . 언뜻 들으면 비슷해보이지만 전혀 다른 행동들. 전자는 내가  감정이 싫어서, 혹은 멀리하고 싶어서지만, 서래의 결심은 잊는것이 너무나도 힘들어서 억지로 다른 이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결국 말미에서 (그녀 입장에서) 완전한 헤어질 결심을 위해 그녀는 그녀 스스로 수중에 갇힌다.





베를린 GV 질문 답변들


Q1 마지막의 죽음에 대해

시적인 방식의 죽음을 원했다. 30년 전 쯤 단편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로, 어떠한 남자가 정교한 기계장치를 만든 뒤에 산에 구덩이를 파고, 그가 들어간 뒤 장치에 의해 묻히는 것이었다. 남자가 묻어지고 나서는 마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모든 것은 다시 원래 상태로 (기계의 도움을 통해) 돌아간다.

서래의 죽음의 경우 기다림으로 조금은 변형되었다. 자연적으로 기다리면서 죽음을 기다리고 소멸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Q2 헤어질 결심은 어떤 것을 뜻하는가?

감독이나 어떤 권위적인 입장이 아니라 관객으로서의 해석을 말하자면: 서래의 입장에서는 이미 살인을 저질렀고, 해준의 인생을 더 망치지 않기 위해서 그런 선택과 마음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미결으로 남아서 자신을 잊지않도록 잠을 못자도록하는 선택이기도 하다. 그녀의 선택은 언뜻보면 배려같지만 알고보면 잔인하고 이기적인 행위라고도 볼 수 있다



Q3 안개라는 노래는 어떻게 고르게 되었나?

이 곡은 골랐다는 표현을 정확치 않다. 이 노래에서 영화가 출발했기 때문이고 노래가 나를 골랐다라고 보는것이 맞다. 영국 런던에서 리틀 드러머를 찍을 때 한국에 대한 향수병이 생겨 유투브로 내가 어렸을 적 들었던 노래을 들었고 '안개'라는 이 곡을 특히 많이 들었다. 어린시절에는 몰랐던 감정을 노래를 통해 이제는 느낄 수 있었다. 노래가사와 무드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각본을 썼다.

보통은 편집이 끝나고 노래를 선택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반대였다고 볼 수 있다.


Q4 영화에서 어떤 씬이 가장 좋았는지?

호미산에서 눈내리는 장면이 좋았다. 사실 그 장면은 신 전체가 없어도 이야기 전개에 무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 장면을 빼려고 고민했었다. 그정도로 독립적인 장면이었다. 그런데 함께 각본을 쓴 작가의 주장을 받아들어 그 장면을 넣었다. 시적으로 잘 찍혔고 의도하지 않았는데 포착된 순간도 있다. 뼛가루를 뿌릴때 서래을 포착하는 장면. 헤드랜턴에서 나오면서 강렬해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실루엣만 보이는 그녀는 등대같기도 하고 사이클롭스(외눈박이 괴물)같기도 했다. 그래서 특히 그 이미지에 매혹당했다.



Q5 배우들에 대해

탕웨이에게 반했었고 일할기회를 찾았다. 하지만 그녀가 한국어를 하지못해 배역찾기가 어려웠다. <헤어질 결심> 초창기에 여자주인공에게는 어떠한 캐릭터를 정하지 않았었는데, 때문에 한국어를 못해도 괜찮았고 심지어는 말을 하지 못하고 괜찮았다.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했고 그녀에게 역할을 제안했다.

박해일은 훌륭한 남자배우이고 해준이라는 캐릭터에서 있어야할 품위가 있고 따뜻하고 스윗힌 친절한 상대방에 사려깊데 하는 자상한 이미지가 있는 남자배우여서 골랐다. 둘의 케미는 상상만 해도 좋다고 확신했다.

실제로 둘은 처음 만남부터 마치 알고 있던 사람들처럼 친하게 지냈다.


Q6  독일 관객들은 한국의 자연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자연경관 장면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전작이 <아가씨> 였다는 점이 작용한거같다. <아가씨>는 집안에서, 거대한 저택을 구성한 인공세트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였다. <헤어질 결심>은 세트보다는 원래있던 공간을 활용할 생각이었다. 야외장면, 즉 자연속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영화를 찍을 결심을 했다. 한편 산과 바다의 대조적인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규모는 작지만 독자적인 우주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Q7 기술적인 면모를 영화에 넣은 이유는?

현실에서 중국어를 번역해주는 앱은 존재하지 않아 농담으로 내가 <헤어질 결심>을 SF영화라로 부르는 이유가 있다.

처음에는 문자를 사용한 장면이 없길 바랬지만 현대인의 싦을 묘사할때 그것을 피해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사용했는데 어느순간 이것을 사용하기로 한 이상 창의적으고 적극적으로 이용해보다라는 결심을 힜다. 차갑고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런 것일까?라고 질문하면서 현대인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직접 커뮤니케이션에서의 친밀감을 높여주는 일로서 현대의 기술들이 작용하기도 한다. 편지를 쓰는것은 좋지만 시간차가 너무 길다. 답장까지 기다리는 것은 더 길다. 동시에 무언가를 한다는 것. 마치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고 있으면 사람이 그 안에 들어있는 것 같은, 그래서 폰 안에서 밖의 인물을 바라보는 시점샷이 나왔다.


*이하 8번부터는 왓츠앱으로 받은 관객들의 질문들

Q8 가장 힘들었던 것?

맨 마지막 바닷가 씬이 어려웠다. 만조가 있고 그 시간에 해가 져야 했다. 파도도 거칠어야 했다. 기상청과 논의해서 날짜를 특정했고 그 날짜에 무조건 찍는다, 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만만의 준비를 했고, 아주 짧은 시간에 모든 장면을 잘 찍었다.

한편 바닷가 씬에 나오는 산 모양의 바위를 보았을 때 행복했다. 영화에서 계속 산과 바다의 대조를 말해주고 있었는데, 그 바위가 그 둘의 이미지를 모두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Q9 얼마나 걸려 찍었나? 중간에 나오는 자라가 발로 걷어차지던데 괜찮았나?

영화는 총 70회 넘게 찍았고, 자라는 안전했다. 중간에 형사에게 발로 걷어차는건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짜 자라였다.


Q10 해준과 감독님의 공통점이 있다면?

나와 해준과의 공통점은 하나 빼고는 없는데, 그 하나가 바로 수면장애로 고통받는 다는 것이었다. 영화 속에서 나온, 코로 숨쉬는 장치를 실제로 착용한 적이 있었다.



Q11 <기생충>과 <오징어게임> 그리고 <헤어질 결심>을 보면 한국영상들은 잔인해보인다. 다른 것들은 왜 유명하지 않을까?

폭력적이지 않은 좋은 한국영화도 많다. 오히려 외국에서 이런걸 좋아하는게 아닐까 반문해본다. 그래서 피가 많이 나오는게 영화들이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이전에 영화 수입사에서도 잠깐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당시에도 해외에서 잔잔한 영화보다 싸우고, 피가 튀기는 영화들을 더 선호하고 사갔던 것 같다.


Q12 <헤어질 결심>은 몇 번을 봐야 할까?

많이 봐주시면 좋고, 많이 볼 수록 영화의 다른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것만 보지말고 다른 영화들도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소망으로는 두 번을 추천하고, 한 번은 남자(해준)의 시점으로 보고 그 다음 은 여자(서래)의 시점으로 영화를 보는 것을 추천드린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나온 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나는 다시 지하철 역으로 향했고, 환승없이 집으로 도착했다. 가끔은 이런 순간들이 해외 생활에 있어 소중하다. 그리고 나는 다다음주에 있을 베를린영화제를 기다린다. ENDE


매거진의 이전글 깊어지는 것은 수심만이 아닙니다 : <헤어질 결심>-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