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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Feb 03. 2023

깊어지는 것은 수심만이 아닙니다 : <헤어질 결심>-1

<헤어질 결심 Decision to Leave, 2022> 감상평 1

영화는 시차가 있다. 크랭크 인을 들어가서 개봉하기까지의 지연시간이 있고, 그 앞에는 각본이 완성되고 크랭크 인이 들어갈 때까지의 시간. 한편으론 나라마다 다른 개봉날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지연이 있다. 내가 독일에 와서 주로 경험하는 것은 세 번째 것인데, <헤어질 결심>도 여지없이 거기에 포함됐다. 베를린의 어떤 지인은 칸 영화제가 열리는 기간에 프랑스를 다녀온 덕분에 한국 개봉과 비슷한 시기에 그 영화를 접했지만, 독일에서는 현재 시간으로 2월 2일이 되어서야 영화가 정식개봉됐다. 공교롭게도 오늘(2월 2일)은 베를린의 대중교통 마스크 규제가 풀리는 날이기도 했다. 요새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일이 별로 없었지만, 나는 어학원이 끝나고 극장까지 지하철을 이용했고, 그 때문에 아주 오랜만에 마스크 없이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이걸 '정상'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코로나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버렸고, 이전의 환경을 더 이상 '정상'이라고 규정할 수 없기도 하고 (소위 뉴노말이라고 일컬어지는) 지금의 시간이 다음 팬데믹 사이의 잠시 쉬어가는 기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헤어질 결심>의 인기는 독일에서도 개봉 전에 대단했는지, 개봉일에 맞춰서 영화가 끝난 뒤에 박찬욱 감독과의 온라인 GV 시간도 준비되어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번 행사는 독일 전역의 38개 극장에서 동시에 진행됐고, 일부 극장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도 있었다. 국제적 명성을 얻는 것이 이렇게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인지는 느낄 수 있었다. 베를린에서는 두 극장에서만 이번 GV를 접할 수 있었는데, 내가 간 곳은 'Neues OFF'라는 영화관이었고, 여기서는 한국어/중국어 원어와 영어 자막으로 <헤어질 결심>이 상영됐다. 


<헤이질 결심>의 영어명 제목은 한국제목을 그대로 옮긴 듯한 'Decision to Leave'지만, 독일어 제목은 'Die Frau im Nebel (안갯속의 여자...)'였다. 너무나 직접적인 제목이라서 실망했었다. 물론 영화에서 보이는 이미지가 중요하긴 하지만, 영화에서 더 집중적으로 다뤄지는 것은 등장인물의 내면이었기에, 나는 한국어 원제가 탁월하다고 생각해 왔다. 한편으론 요새 쓰기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독일인 선생님이 나에게 해준 수정사항들을 되돌아보면, 그는 나에게 항상 경계를 정하고, 정확하게 (deutlich) 단어를 선정하라고 했다. 어쩌면 안갯속의 여자라는 제목은 이런 생각에서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현재 나오는 영화들이 더 이상 스크린의 점유물이 아니라 OTT시스템에서도 공급이 되면서, 요새는 극장에 가는 것보다 집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더 일상화가 된 것 같다. 나도 그랬다. 그리고 <헤어질 결심>을 본 것도 넷플릭스에 나온 뒤 태블릿피씨로 본 것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오늘 영화가 끝난 후에 역시나 느끼는 거지만, 영화는 큰 스크린으로 볼 때 안겨주는 감동이 있다. 그것의 이유가 화려한 그래픽이나 배우의 얼굴을 더 크게 보기 위한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넓은 (스마트폰의 그것보다) 스크린에서 그것이 상영되고, 그것이 상영될 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기 때문에, 영화의 감동이 배로 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헤어질 결심>이 나에게 있어서 두 번째 보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흡족하게 관람을 할 수 있었다. 



영화에 대한 감상들 - 1 

최신의 정보를 전하는 형태보다 내가 느낀 생각을 키워드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상영 후 진행된 GV에서의 질문답변 내용을 적어보았다. 



색상

감독의 전작 <아가씨>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에 나오는 색감의 훌륭함은 <헤어질 결심>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전 글에서 내가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었던 서래가 입은 청록의 원피스부터 시작하여 단청의 색깔과 여러 가지 패턴이 그려진 물건들 (예컨대 집안의 벽지나 노트의 겉면 그리고 핸드폰 케이스까지). 파랑과 녹색이 중요한 이유는 이후 진행된 GV에서 박찬욱 감독이 말했었던 '산과 바다'의 이미지와의 일치 때문 인 것 같았다. 녹색의 산과 파랑의 바다, 그래서 <헤어질 결심>은 자연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불러일으키고, 동시에 그 짙은 색감은 영화의 깊이, 특히 감정적인 부분에서의 수심을 더한다. 


사랑

사랑에 대해 일반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여구가 떠오르고 '사랑해'라는 직접적인 표현이 떠오른다. 하지만 본 영화에서는 이런 것들과는 정 반대에 있어 보이는 사랑이 묘사된다. 영화에서의 대사처럼, 서래의 사랑은 해준의 사랑이 끝나는 시점에서 시작되었다는 엇갈리는 것. 둘은 다시 만나지만 결국 서래가 택한 것은 자신을 잊지 말고, 자신 생각으로 잠에 들지 못하도록 사라진다(혹은 죽는다). 이기적이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하다. '미결'의 상태로 남는 사랑. 확정되지 않고, 미래에 있을 해준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될 사랑. 이것이 서래가 바랬던 사랑을 영속시킬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원자력 발전소

영화를 처음 봤을 땐 '붕괴'라는 단어 사용을 위해 가져온 소재라고 생각했다. 해준의 시적인 말투에서 오는, 사랑과는 평소에 조합되지 않는 단어. 하지만 오늘 영화를 보고 생각해 보니, 원자력 발전소에 사용되는 방사성 동위원소들의 '반감기'가 생각났다. 반감기란 원소가 붕괴되어 전체 양의 절반이 다른 원소로 바뀌는데 드는 시간을 말한다. 그리고 우라늄 같은 원소들의 반감기는 아주아주 길다. 그리고 반감기는 계속 절반 씩 줄어드는데, 그 때문에 100 -> 50 -> 25 -> 12.5 -> 6.25.... 이런 식으로 거의 영속적인 시간 동안 (인간의 삶이 비해서도 그렇고 우주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도) 이루어진다. 이것은 서래가 원하는 '영속적인 사랑'과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아내

원자력 발전소와 이어서 이정현씨가 연기한 해준의 아내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속칭 '너드'처럼 보이는 그녀의 대사들을 보면 그녀를 무언가를 '확실'하게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연구의 수치로 자신의 논리를 받치며, 섹스를 일주일에 한 번을 꼭 해야 한다는 '계산'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이것은 해준의 말하기와는 정 반대이며, 서래의 사랑 방식과도 반대다. 그래서 해준이 서래와 절에서 데이트를 할 때 '서래 씨가 나랑 같은 분류의 인간'이라는 말을 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석류나 자라를 언급하면서 어느 정도 확인됐거나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민간요법'을 사랑의 도구로 쓴다는 점에서는 아이러니가 느껴졌다. 



*나머지 영화 감상과 GV내용은 2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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