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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ipza Nov 22. 2024

석사 3학기가 시작된 지도 한 달이 넘었다. 이번학기는 학교의 커리큘럼 상으로는 전공수업 3개와 세미나 하나, 그리고 수업 두 개 학점에 해당되는 연구모듈을 들어야 한다. 2학기까지는 커리큘럼대로 따라왔지만, 이번학기에 나는 커리큘럼을 조금 틀었다. 세미나를 막학기로 미룰 예정이고, 전공수업 세 개를 듣는 대신 두 개를 들으며 학사과정 수업 하나와 독일어수업 하나를 추가로 듣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석사를 한 학기 더 연장하기로 한 결정이다. 1학기 때 기초 전자공학을 듣고 나서 전자공학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같은 교수님이 하는 관련된 수업을 더 듣고 싶었다. 회사에 다니면서도 배터리를 주로 화학적 측면(예컨대, 내부 반응이나 그에 따른 성능)으로만 보았어서, 배터리가 회로 안의 (중요한) 요소로 사용되는 팩이나 모듈 레벨을 알고 싶은 갈증이 있었다. 이왕에 다시 학교를 다시 다니는 김에, 그리고 독일은 내가 듣고 싶은 과목을 과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대로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번학기에는 아날로그 회로(Analoge Schaltungstechnik)를 듣고 있고, 다음 학기에는 디지털 회로(Digitale Schaltungstechnik)와 전력공학(Leistungselekronik)을 들을 생각이다. 


선택하여 들을 수 있는 자연과학 범위의 전공수업으로는 역시나 1학기때 재밌게 들었었던 기초물리를 가르쳤던 교수님이 진행하는 Computational Material Design을 듣고 있다. 다만, 이번학기에는 수강한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거의 일대일 과외를 하는 것처럼 매주 수업에 나가고 있다. 혼자서 듣기에 중간에 딴짓도 못하고 졸 수도 없다. 그래도 집중을 해서 듣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듣고, 질문도 자유롭게 하면서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좋다. 한 달 동안 새로운 수업들을 들으면서 느끼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의 무지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나의 개인적 특성에 관련한 것이다. 


첫 번째 항목은 바로 반도체(體1)에 관련된 것. 한국에서 학사를 할 때, 나는 화학공학과를 다녔다. 화학공학과라 함은 커리큘럼에 보통은 공장을 운영할 때 알아야 할 지식들을 다루는 과목과 그것들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과목들이 뒷받침된다. 그리고 선택과목으로는 디스플레이, 에너지 그리고 반도체 과목들이 있었다. 그 당시에 나는 반도체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이미 반도체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고 한국의 수요 생산 및 수출 품목이었고, 유명한 회사들도 많았고 보통 그 회사를 가기를 많이 원했던 것 같다. 메이저에 대한 이상한 반항감이 있는 나로서는 그런 자본주의적 행보(...)보단 미래를 향한 에너지 쪽이 좀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었고, 그래서 복학을 하고 난 뒤에 진로를 그쪽으로 틀었더랬다. 그 뒤로도 한동안 나는 반도체에는 영 관심이 없었고, 그 회사의 주식을 분할이 되었을 때 사서 두 배쯤 올랐을 때 팔아치운 기억밖에 없었다.


그랬던 내가, 아날로그 회로 수업에서 부딪힌 사실은, 내가 그토록 알고 싶어 했던 회로가 전부 반도체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저항이나 축전기 코일과 같은 기초적인 것들을 제외한 나머지 부품들, 예를 들면 다이오드/트랜지스터/MOSFET 등등 현대의 회로에서 쓰이는 모든 것들이 반도체라는 것이 충격으로 느껴지면서도 그동안 이 분야에 얼마나 무지했는가를 깨닫게 됐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나에게 전기란, 회로에는 전력/전류원과 저항/축전기/코일 등이 있고 특히 배터리의 경우, 거기에 들어가는 전류와 전압에 따라 전력(Power)과 에너지(Energy)만 구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펼쳐질 지식이 포함된 회로는 이런 물리양을 '힘'이나 '열'의 형태로 얻는다기보단, 전류와 전압을 '조절'하고 '제어'함으로써 정보를 전달하고, 원하는 '논리회로'를 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회로들이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들어있고 우리가 쓰는 모든 전자기기에 들어가 있다. 


두 번째 항목인 나의 특성에 관련된 것은 '본질의 이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건 Computational Material Design을 들으면서 깨달았다. 해당 수업에서 배우는 내용은 고체물리의 영역인데, 크리스탈부터 시작하여 포논과 같은 고체 내에서의 원자의 움직임을 다룬다. 화학공학에서 내가 배운 것은 주로 고체를 제외한 유체(액체와 기체)였기 때문에 고체(體2)가 익숙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어떤 고체는 물렁물렁하고 변형이 쉬우며, 어떤 고체는 전기가 잘 흐르고 딱딱하다 정도가 나의 한계선이었다. 회사에서 잠깐 기계해석을 하면서 금속 판자들을 가지고 실험을 하고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Strain와 Stress 같은 개념들을 익힐 수는 있었지만 그게 다였다. 하지만 역시나, 수업을 들어보니 원자레벨에서부터 시작하여 그것들이 어떻게 움직이며(진동의 형태)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 혹은 어떤 진동들이 어떤 특성을 같은지를 맛볼 수 있었다. 결국엔 왜 외력을 주면 물질의 형태가 바뀌는지, 온도가 올라가면 왜 부피가 변하는 지도 이제는 원자레벨에서의, 그러니까 물질을 쪼개고 쪼개서 들어가면 도달하는 소립자의 영역에서의 메커니즘을 알게 되니 속이 다 시원했다. 


학창 시절부터 나는 암기를 많이 해야 하는 과목에 유독 약했다. 근본적인 설명을 알지 못하면 '그냥 그런 거야'라고 넘기기가 힘들어서 오히려 이해가 잘 안 됐고, 암기도 잘 안 됐다. 그래서 수학이나 과학과 같은 논리가 상대적으로 탄탄한 과목들을 좋아했고 잘했던 것 같다. 수학공식은 결국 말로 설명한 것을 식으로 표현한 것이었고, 과학은 자연에 있는 현상이나 법칙들을 사람이 '알아낸' 것이었으니 명확하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영어의 경우 문법은 늘 예외가 너무 많았고, 단어를 외우는 것은 그냥 외워야 하는 것이었다. 물론 단어의 어원을 따져보면 그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지만, 어린 나의 생각으로서는 '이건 그냥 그렇게 생겨먹어서 그런 거야.'라는 설명은 납득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이번 학기를 통해 나는 두 가지의 다른 체를 알게 되면서 좀 더 내 머릿속에 있는 앎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고체물리를 배우면서는 세상을 이루는 원자들의 운동에 대해 알게 되고, 그것들이 거시세계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깨닫고 있다. 아날로그 회로를 배우면서는 전자회로를 이루는 개별 부품들을 배워가며 반도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각자의 부품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설계됐는지, 종단엔 이것들을 조합해서 어떻게 논리회로를 짤 수 있을 가를 배우게 될 것이다. 3학기 또한 배움으로 충만해지는 것 같아서, 이 시간들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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