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는 말라

by soripza


large_do_not_expect_too_much_from_the_end_of_the_world_9412c9ea2f.jpg Radu Jude, 2023, Romania


영화제 예고편

https://www.youtube.com/watch?v=fwr_voKKVLU


극 영화의 형식으로 본 라두 주데의 두 번째 영화.'노동'에 관한 영화 였다.(극 형식을 제외하면 네 번째. 나머지 두 개는 장난감들로 짧은 컷들을 이어붙인 <플라스틱의 기호학>과 수많은 광고들을 이어 붙여 만든 <낙원에서 온 여덟개의 엽서>) 그러나 노동 말고도 다른 지점들도 눈에 띄었다. 영화는 세 가지 다른 장면들로 구성되는데, 첫번째는 흑백으로 나오는, 주인공 안젤라의 시점. 그녀는 다른 기업들을 위해 광고영상을 찍어주는 회사에 다니고있고, 가구제작회사의 안전영상을 만들기 위해 루마니아, 정확히는 부쿠레슈티 시내를 돌아다니며 부상당하고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은 장애인이된)사람들을 인터뷰한다. 두번째는 칼라로 나오는, 주인공 안젤라가 틱톡을 켜서 빡빡이에 콧수염난 필터를 사용한 채 온갖 극우적 발언을 일삼는 부케 '보비타'의 모습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는 칼라로 나오는, 마치 이전에 제작된 것 처럼 보이는 루마니아 영화에서 역시 같은 이름을 가진 '안젤라'라는 택시운전기사 여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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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라는 쉴새 없이 자동차를 몬다. 한 명을 인터뷰하고 그 다음엔 다른 곳으로 간다. 종단에 그녀는 회사로부터 그녀가 짤막하게 인터뷰한 영상들을 보여주고, 윗사람들에 의해 결정된 한 사람과 촬영을 해야한다. 그녀는 커피를 마시면서 운전을 하고, 길이 막힐때마다 짬짬히 '보비타'의 모습으로 변신을 한채 상스러운 말과 욕을 날려댄다. 그리고, 그녀가 운전을 하고 특정 지역을 지나갈때, 세번째 컷, 그러니까 70년대로 보이는 루마니아 시내를 택시로 누비는 다른 '안젤라'의 모습이 겹친다. 다만 다른 것은, 이 예전의 안젤라가 나오는 모습은 가끔가다 에러가 걸린 것처럼 아주 천천히 영상이 진행되거나 심지어는 멈추기 까지 한다. 관객이 보이기에는, 70년대의 루마니아의 하늘은 늘 파랗기만 하다. 마치 희망적이것 처럼 보이기까지한다. 남자들은 여성 택시기사를 향해 부적절한 언행을 할 때도 있지만, 그녀는 택시안에서 자신의 짝을 찾기도 한다. 중요한 대비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안젤라는 혼자 운전하고, 남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핸드폰을 통한 방식 혹은 옆에 지나가는 차의 운전자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 것이다. 영화 중간이 되서야 그녀는 광고회사의 마케팅 부서의 임원처럼 보이는 오스트리아인 여성을 태우는데, (아마도 내 기억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녀가 사람과 차 안에서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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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오스트리아 여성역을 맡은 배우는 페촐트의 영화에서 자주 봤던 니나 호스였다. 여튼, 그녀는 오스트리아 사람이 만든 가구제조회사의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그녀의 성은 '괴테Goethe'다. 안젤라는 출장온 그녀를 뒷자석에 태우고 공항에서 출발하여 호텔로 향하면서 그녀에게 괴테 작품에 대해서 묻는다. 하지만 그녀는 괴테의 책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다고 말한다. 가족이여서 오히려 좀 읽기가 그렇지 않냐고 말하면서. 그녀는 겉으로 보기엔 안젤라에게도 교양있게 대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광고촬영 현장에서 현장사람과 통화 할 때에는 자본의 논리에 철처히 복종하며 자비를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대문호 괴테는 유럽 문학과 사상의 기준점이 된 인물이고 권위를 가졌지만, 그의 후손은 이제 그런 권위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돈을 버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컨티넨탈 25>에서 라두 주데가 이미 우리에게 보여줬던 것 처럼, 독일의 기업이, 오스트리아의 기업이 동유럽으로 들어와서 난장판을 친다. 가구회사는 작업 중 '안전기구 착용'이 중요하다는 영상을 찍으려 하지만, 그 가구회사에서 다친 사람들이 오히려 한입으로 모아 말하는 것은 'Safety Gear의 미착용'이 문제가 아니라 'Over-Working'(으로 인한 피곤/집중력 저하-->사고로의 연결)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현대 루마니아에서는 착취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노동착취'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부유럽의 국가들은 동구권의 낮은 인건비를 매력적으로 느껴 그들의 공장을 옮기고, 거기에서 노동착취를 통해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벌어들인 돈은 <컨티넨탈 25>로 이어져서, '노동'을 하고 쉬어야할 거처인 '집'을 파괴하고 거기에 그들의 럭셔리'호텔'을 짓는 것이다. 그러니까, 못사는 나라에서의 노동력을 갈취하여 번 돈으로 그 나라에 호텔을 짓고, 그 호텔엔 착취의 가해자들이 와서 도시의 가장 가운데에서 휴가를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막상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점점 도시에서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터에서는 생명의 위협을 받아 사망하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사고를 당하여, 집세를 감당하기 위해 교외지역으로 멀어지며 (그래서 안젤라 역시 차를 타고 멀리 갈 수 밖에 없다.) 충분한 자본이 있어야만 하룻밤을 지낼 수 있는 뷰티크호텔이나 높은 방세를 감당해야하는 시내 중심으로 들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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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노동착취에서 안젤라도 제외일 순 없다. 괴테가 안젤라에게 '우리 일을 하면서는 야근을 하지 않죠?'라고 묻는다. 안젤라는 '아니죠!'라고 말하지만 그건 거짓이다. 영화를 보는 이는 안젤라가 영화 러닝타임(러닝타임이 조금 길다. 거의 3시간?) 내내 커피를 마시면서 Over-Working을 하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 둘이 이런 대화을 하면서 가는 길은 안젤라의 말에 따르면 건널목이 없어서, 밤에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하다가 차에 치어 죽는것이 허다하게 일어나는 곳이었다. 250km길이의 이 고속도로에는 6000개의 죽은 사람을 기리는 십자가가 있다고 안젤라가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이다. 감독은 그들의 대화 장면 안에 직접 그 십자가들의 모습을 (거의 10분에 달하는 것 같다.) 영상으로 담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현실적으로 느끼게 한다. 아마도 내 생각에는, Over-Working을 마치고 집에 가는 사람들이 졸음운전으로 건너는 사람들을 '치'거나 Over-Working후에 집에 빠르게 가기위해 어두운 밤 무단횡단을 하다가 사람들이 차 '치었'음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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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취에는 사실 좀 더 복잡한 사정이 숨어있다. 그것은 바로 이 착취가 '국제적'이라는 것이다. 외국기업과 '노동'과 관련된 송사가 생기면 질질 끌리기 십상이다. 굳이 이 영화와 <컨티넨탈 25>에서의 영화 안에서 발생한 상상의 관계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있었고, 요새는 쿠팡과의 문제가 있었지 않았나. 쿠팡의 이사가 연준의장이 되면서, 그리고 미국이 쿠팡의 뒷배를 봐주면서 악덕기업을 처리하는 일에는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한국이라고 해서 이런 노동착취의 피해자 포지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동남아에서는 노동착취를 실행하는 나라다. 완전하지 않은 노동계약과 Over-Working 혹은 비윤리적인 환경파괴와 같은 문제점들은 우리나라 언론에선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안젤라가 비록 '보비차'로 나오는 장면에선 극우적인 언사를 쏟아내지만, 적어도 그녀의 얼굴을 직접 마주할 수 있는 흑백의 장면들에서는 그녀는 <컨티넨탈 25>의 주인공 '오르솔리아'와는 대척점에 있는 것 같다. 오르솔리아는 위선적이고 사회적 지위로는 높은 위치에 있다. 이에반해 안젤라는 노동착취를 당하는 사회적 약자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인류애와 존엄성이 있다. 자신이 점심을 먹고 있을 때 그녀에게 찾아온 거지에게 자선을 배풀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심지어 '보비차'의 탈을 쓴채로 현장을 비판하는 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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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인터뷰어로 선정된 남성이 가족들과 함께 공장 근처로 나와 안전사고 영상을 찍는 장면이다. 그는 그에게 생긴 일을 '그대로'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그가 머리를 다쳐서 코마에 빠졌던 일은, 그가 늦게까지 일하고 공장에서 나왔기 때문에 생겼다는 것이다. 이미 일은 끝났고, 공장건물에서 나왔으니 안전모를 쓸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하늘은 어두웠고, 공장으로 들어오던 트럭은 카본 블랙으로 칠해진 차단기를 보지 못했다. 트럭은 차단기를 치고, 그 차단기는 그대로 날라가 그의 머리를 쳤다. 그는 6개월 이상 코마 상태에 있었고, 결국은 하반신 마비를 얻었다. 그는 아직 가구회사와 소송을 벌이고 있었다. 남자는 진실을 말하고 싶지만, 회사는 '내가 다친 건 안전모를 쓰지 않아서'니까, 그 문구를 본인의 입으로 말하라고 한다. 가족들은 반발한다. 우리는 아직 소송 중인데, 안전 영상에서 그가 이런 말을 해버리면 불리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스텝들과 괴테 그리고 가구회사 사장은 이런것을 외면한다. 그들은 그저 그들이 원하는 영상을 얻고 싶을 뿐이다. 비가와도 그들에게 우산을 늦게 씌워주고, 영상 촬영이 들어가면 우산을 재빨리 치워버린다. 결국 그들은 그에게 말을 시키는 대신, 크로마키를 써서 그의 얼굴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조합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문구를 넣는 것으로 결정해버린다. 이것이 현대 문명의 이기성이다. 그리고 다큐멘터리의 약점이다. 강자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조작되고 편집된 영상은 그를 소송에서 지게 할 것이고, 사람들은 안전모를 쓰지만 여전히 노동착취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이것이다. 착취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인류애는 없을것이며 그것에 대해 기대할 수 없다.


+ 추가 자료


부국제 상영 전 영상

https://youtu.be/DM63XYPmEP0?si=4BVkY6CuoQu_9lAf

Over Working

https://www.youtube.com/watch?v=wmOv63VSIxk

Unethical

https://www.youtube.com/watch?v=jG2an-p7Gew


진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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