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도 영화 세개가 있었다. 모든 영화가 Alexanderplatz에 있는 CineStar영화관에 있었다. CineStar는 관이 9개나 있어서 (내생각엔) 가장 많은 영화를 소화하는 영화관이기도 할 거다. 어제와 달리 이날은 첫 영화시작이 열두시 반이여서 잠을 조금 더 자고 나왔다.
집에서 나오기 전에 토마토 하나와 뮤즐리맛 액티비아로 아점을 해결… 했다고 생각했지만 막장 나오니 배가 고파져서 영화관 근처 던킨도너츠에서 커피/도넛 세트 하나 더 사먹고 갔다.
CineStar영화관 안의 극장이름은 모두 Cubix #(번호)로 되어있는데, 이날 첫영화는 Cubix 9에서였고, 이 관은 다른 관과 다르게 리클라이너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시작 전 줄이 길었는데, 나는 혼자 온 덕(?)에 리클라이너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첫번째 영화 :
خروج آمن / Safe Exit / Mohammed Hammad (Panorama)
이집트 영화. 주인공은 20대 초반처럼 보이는 건물을 지키는 관리인 시몬(Simon). 같은 건물에는 IS 요원(혹은 이슬람 극단주의 인원)이 있는것 같고(정확히는 요원의 어머니가 살고 있다, 아들인 요원이 가끔 와서 휴식 및 다음 계획을 짜는 듯 하다), 관리인의 역할 중 하나는 경찰특공대가 어떤 제보(요원이 있다는 정보)를 받고 오면 그가 미리 윗층에 신호를 보내서 대피할 수 있게 도와준다. 요원인 압둘라는 건물 옥상의 수조에 몸을 숨긴다. 주인공은 어렸을 적 리비아에 갔다가 아버지와 함께 이슬랍 극단주의 세력에게 납치됐던 기억이 있다. 그의 가족은 카톨릭이어서, 결국 그의 아빠는 살해되고 자신만 살아서 돌아온다. 그는 그들이 자신을 살려보낸 이유가 자신들의 공포를 심어주기 위함이라는 것을 안다. 극단주의 세력에게 가족을 잃은 그가, 현재 또 다른 극단주의 세력 요원을 숨겨주는 일을 하는 것이 영화 안에서의 큰 아이러니이자 갈등상황이다.
이와중에 어떤 여성이 건물에서 머무르고 싶어한다. 주인공은 거부하지만, 2교대로 일하는 다른 관리인을 꼬드겨 관리인들 숙소에 들어오고, 그런 그녀에게 주인공은 현재 감옥에 있는 자신의 형의 방을 빌려준다. 형의 방에는 예수상과 그림과 같은 카톨릭 물품들이 즐비해있고, 히잡을 쓴 여성은 그걸 재밌어한다. 그녀는 이집트의 작은 도시에서 온듯하고, 병에 걸린것 같다. 돈을 털어 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CT까지 찍게되는데 머리에 종양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악성인지는 모르지만 제거하는게 좋다고 하지만 그녀에게 남은 돈이 없다.
한편 시몬은 소설가가 되고싶어한다. 자신의 여태까지의 삶을 정리한 소설을 출판하고 싶어 찾아가지만 출판사에 웃돈을 줘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을 느낀다. 처음에 그는 자신의 처지와 상황에 큰 우울감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래도 갑자기 자신의 삶에 들어온 이 여성(나이는 엄마뻘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일상에서 작은 미소를 되찾게 되고 미래를 도모하는 쪽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나 다시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신호를 받은 압둘라가 그를 도둑으로 오인한 여자를 물리적으로 제압하면서 여자는 죽는다. 시몬은 큰 충격을 느끼지만, 슬픔을 느낄새도 없이 압둘라의 조직원들과 함께 그녀의 시체를 카펫안에 숨기고 차에 싣는다. 그때, 어렷을 적 겪은일과 같이 차에 같이 감금되고, 여자를 땅에 묻고 그는 이번에도 살아 올아온다. (반복되는 악몽...)
그는 이제 완전히 좌절했다. 그러나 그때 머리에 한 생각이 떠오른다. 여느 밤, 경찰이 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압둘라가 돌아왔을 때 그는 벨을 누른다. 수조에 숨은 압둘라를 확인하고, 수조 위를 막아버리고 물을 흘려보내 그를 익사시킨다. 그리고 담배 한 개비를 깊히 들이마시면서 영화가 끝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희망을 가지려고 해도 계속되는 폭력에 절망으로 바뀌는 하루하루가 저기에서 벌어지고 있다. Safe Exit는 있는가? 영화 중간중간 장이 바뀔 때 마다 ....가 말하길 이라는 문장이 나와 성경 혹은 쿠란의 구조처럼 영화가 진행되는 것 같았다.
다음 영화 시작 까지는 근처 스벅에 가서 시집 한 권 읽고 복귀. 사실 영화제 하루동안 시간이 뜰때가 가장 힘들다. 중간 시간이 길지 않으면 시간을 조금만 때워도 되는데, 애매하게 2시간 정도가 남으면 숙소에 가고 싶어도 어차피 갔다가 바로 나와야 한다. 결국엔 카페같은곳에서 시간을 때우게 되는데 커피값이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영화관 내에 쉴 곳이 많으면 좋으련만, Cubix는 그런 구조가 아니라서 아쉬울 뿐이다.
인터넷에 기사 두 개가 있어서 나중에 읽어보려고 한다. (리뷰 및 감독 인터뷰)
https://cineuropa.org/en/newsdetail/489263/
https://cineuropa.org/en/interview/489466/
두번째영화 :
يوم الغضب: حكايات من طرابلس / The Day of Wrath: Tales from Tripoli / Rania Rafei (Forum)
또다른 아랍어 영화. 이번 베를린영화제에서 내가 본 유일한 다큐멘터리 영화였는데, 레바논의 제 2의 도시인 '트리폴리'의 역사를 다뤘다. (참고로 레바논의 수도는 베이루트/Beirut. 내가 사는 바이로이트/Bayreuth와 발음이 상당히 유사해서, 가끔 바이로이트에 산다고 하면 독일이 아닌 레바논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여성감독은 자신의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배경삼아 20세기 부터 21세기 이 도시에서 일어난 일들을 주변 사람들의 입을 통해 훑는다. 늙은 할아버지도 있고, 역사교사로 일하는 이, 그리고 열살 남짓 된 아이들이 주 인터뷰어들이다.
다큐멘터리는 필연적으로 어떤식으로든 어떤것의 역사를 다룰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은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내가 모르는 나라의 역사에 대한 사실은 더욱 새롭고 흥미롭다. 전주에서 보았던 다큐멘터리들이 떠오른다. 독재권력에 맞서 싸웠던 한 라틴아메리카 나라의 인물, 천안문 사태 이후 미국으로 망명한 중국인들... 이번 영화는 인물보다는 도시에 더 집중했다.(제목이 그렇듯) 트리폴리 역시 긴 역사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주 옛날에는 십자군의 주둔지 역할을 했었기도 했고, 오스만 제국 영향 아래에 있을 때도 있었다. 그 후에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는데, 이때 아프리카에서 온 용병들도 많이 살았고, 그들의 후손 또한 레바논인로서 현재까지 살아있다는 것에 놀랐다. 인터뷰이중 하나인 역사선생이 바로 그 후손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비극은 현대에도 존재한다. 내전이 일어나서 동족끼리 죽이는 일이 빈번했고, 한 병사가 이미 죽은 시신을 짓밟으며 자신이 더 돋보이게 사진을 찍어달라는 에피소드를 들으면서는 식겁했다. 다큐멘터리에서 슬펐던 것은 아이들이 역사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판데믹 바로 전에도 부패한 정부에 대항한 시위가 있었다. 하지만 그 시위는 오래가지 못했고 사그라들었다. 아이들은 그 날에 대해서는 기억을 하지만, 그냥 사람들이 밖에 많이 나와있어서 아빠랑 보러갔다, 정도로만 말했다. '혁명'이 어떤 것이냐, '혁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물어봐도 잘 모르겠다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까지 말했다. 10대의 아이들이 말하기에는 너무나 자조적인 말투였다. 이미 레바논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몇 년 전 바이루트의 항구에서 큰 폭발사고가 있은 뒤의 레바논이 국가적 위기에 내몰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소수의 사람들이 트리폴리 광장에서 천막을 치고 다시금 목소리를 내고 혁명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이들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는 사실 나도 모르겠다. 내가 한국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적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종류의 영화가 한국에서는 많이 없는 것 같다. 영화 리스트에 <돌들이 말할때 까지>와 <미싱 타는 여자들> 이 있긴한데... 어디서 볼 수 있는지 알면 빨리 봐봐야겠다.
*3월 4일 현재 :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침공했고, 이스라엘은 레바논도 공격하는 중이다. 같은 쉐어하우스의 아나톨은 작년에 레바논 여행을 갔고, 베이루트에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아내가 지금 이스라엘이 폭격하는 도시에 있다고 했다...
다음 영화 전 시간엔 또 근처에 있는 파이브가이즈에서 햄버거로 저녁을 먹었다. 영화제가 끝나기 하루 전이라, 막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 수상이 시작됐다. 경쟁작을 두개만 예약했었는데 하나는 별로였고 하나는 내일 일정에 있었던 터라, 수상작에 대한 감상을 크게 느낄 수만 없었고, 나중에 챙겨봐야지 하고 리스트에만 추가했다. 올 영화제에서는 빔벤더스의 말이 파장이었다. 영화화 정치는 분리되어야한다는 투의 말을 했었던 것 같다. 베를린영화제는 원래 정치적이었던 것 같고, 그것이 다른 3대 유럽영화제와 다른 베를린날레만의 특징이라고 난 생각해왔었다. 틸다스윈튼과 여타 다른 영화관련자들이 이 발언을 비판했다는 기사도 접했다. 특히 이스라엘-가자 학살에 대한 갈등이 크다. 시상직 처음에 다큐멘터리 부분에서 크리스탈베어 상을 받은 감독이 가자에 있는 자기 친구는 혼자가 아니라고 소리쳤고 사람들이 박수로 답했다.
*2월 27일 현재 : 영화제 관련 된 일이 생각보다 커졌고, 이번엔 작년에 새로 집행위원장을 맡은 미국인에 대한 비판 여론도 커졌다. 독일 정부에서 문화 관련쪽 장관이 이 문제로 회의를 열었고, 우선은 그녀를 계속 집행위원장으로 유지하는 걸로 결론이 내려졌다.
세번째 영화를 볼까하다가, 햄버거를 먹고 시상식까지 다 봐도 아직 두 시간을 더 기다려야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체력이 너무 방전될거같아서 그냥 숙소로 갔다. 샤워를 하고 영화대신 넷플릭스에서 업로드 된 <언더커버 미쓰홍> 토요일회차를 봤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