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마지막 날과 베를린에서의 여분의 날
첫번째 영화
寒夜灯柱 / Light Pillar / Xu Zao (Perspective)
중국 애니매이션. 거의 버려진, 도산위기의 영화촬영장에서 일하는 주인공이 있다. 사장은 자신을 황제처럼 생각하고, 직원들은 일을 해도 월급도 6개월에 한 번(!) 타가는 둥 애니매이션의 설정이지만 노동착취가 너무 뼈아팠다. 주인공은 결국 사장을 찾아가지만 돈 대신 자신의 딸이 가지고 놀던 VR기계를 주인공에게 주고, 그는 그 기계에 설치된 게임-여름 축제가 열리는 도시에 가는 컨셉의-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특이했던 점은, VR 게임안의 촬영이 실제 배우들이 나오는 것으로 표현됐다. 여튼, 남자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큰 상태였고, 여자와 관계를 쌓아올리다가, 근래 시작된 Light Pillar 프로젝트(우주로 가는 여행 프로그램의 일종인것 같았다.)의 티켓을 그녀에게 받는다. 선물을 그냥 받기 싫었던 그는 자신의 (얼마없는) 물건들을 처분하고, 잔업까지 한 다음 그녀에게 돈을 부치고, 정장까지 차려입고 우주선을 타러가지만 티켓은 가짜였고, 그와 이야기하던 여자 역시 원래는 남자였다.
로맨스 스캠에 호되게 당한 그는 큰 절망을 느끼지만, 우주로 가고 싶은 꿈이 대신 생긴다. 한편, 영화 촬영장은 어떤 감독이 찾아와 자신의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외계인들에 의해 폭격을 맞아 없어지는 것으로 최후를 맞는것으로 결정된다. 그는 실리콘 외계인들이 공격하는 돌덩이를 바라보며 거기에서 삶을 마감할 까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는다. 이 후 폐허가 된 영화 촬영장은 농지로(정확히는 과수원) 바뀌고, 주인공은 진짜로 돈을 모아 달에 여행을 갔다. 느긋하게 볼 수 있었던 애니매이션. 묘하게 차우차우를 닮은 고양이가 씬스틸러 였다.
두번째 영화 : 앙겔라 샤날렉의 '내 아내가 운다.'(직역)
Meine Frau weint / My Wife Cries / Angela Schanelec (Competition)
대사가 굉장히 작위적이라고 느껴졌는데, 나중에 베를린영화제 공식 프레스 영상을 보니 주인공 역할을 맡은 두 배우가 독일인도 아니었고 독일어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그들의 독백이 많아서 그렇게 느낀 것 같았다. 사실 독백이 무척이나 길었고, 원래대사도 그렇고 영어자막도 추상적이여서 잘 못알아들었다... 대략적으로 이해한 건, 서로간의 사랑, 이해,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느꼈다. 장면 하나하나가 아름답다고 느꼈다. 특히 색감에서.. 색채의 대비라던가...
74회 영화제에서 같은 감독의 영화 <Music>을 봤을 때 굉장히 절제됐다고 느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절제를 할만큼 한 주인공들이 한 번 씩은 그들의 감정을 터뜨리는 부분들이 나왔다. 중간중간 무용이나 음악으로 감정선을 연결하는 장면은 <Music>과 동일하기도 했다. 주인공 등장인물들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를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 남자는 머리가 깨질 것 같고, 여자는 주변을 배회한다. 감독의 다른 영화를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도 페촐트와 같은 베를린학파의 감독이기도 하고(그러나 스타일은 아주 다르다)... 영화가 지루할 수 있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중간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나가는 바람에 당황스러웠고 어처구니 없었는지 웃는사람들도 많았다. 이와는 별개로 나는 김현철 노래 <왜그래>가 생각났다. [+엠엔엔인터네셔널에서 이 영화를 수입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저녁으로는 뭘 먹었더라...? 음식 사진을 잘 안찍는 편이라 매번 잊어먹는다.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보니 두 번째 영화와 세 번째 영화 사이의 텀이 길지 않아서, 두번째 영화 시작 전에 점저로 베를린 전통음식 아이스바인을 먹었다. 아이스바인은 슈바인학센과 비슷하지만 좀더 말랑말랑하고 순한 맛이다. 겨울에 주로 먹는 음식인데 한국식 족발에는 이쪽이 더 가깝다. 학센은 오븐에 구웠지만, 아이스바인은 삶은(혹은 찐) 음식이라 그렇다. 베를린물가가 싼편은 아닌데, 이날 들어간 집은 값도 괜찮으면서 양도 많았다. 이름은 '코끼리식당'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일정을 소화하러 동물원 역 근처의 Delphi극장으로 향했다. 원래 이정도는 아닌데, 영화관 앞에서부터 거의 한바퀴를 돌아 줄이 서있었다. 줄 선사람에게 물어보니 베를린영화제 줄이 맞다고 해서 놀랐다. 문제는 그날 비가 왔는데 나는 우산이 없어서 비를 쫄딱 맞으면서 20분을 밖에서 기다렸다...
세번째 영화(이자 마지막영화)
チルド / Anymart / Yusuke Iwasaki (Forum)
일본영화. 제목에서 알 수 일듯 편의점 주변으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다룬다. 주인공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남성. 나는 편의점에서는 알바를 해본적이 없는데, 편의점도 굉장한 수직적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마도 다른 프랜차이즈 가게들이 그렇겠지만, 점주 - 매니저 - 부매니저 - 평사원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있고 가끔 본사에서 일하는 직원이 오는데, 그 역시 점주 앞에서는 을처럼 보인다. 과한 시스템적 집착을 점주로부터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매우 고집이 센 남자로 보이고,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유통기한을 지난 음식을 집에 가져갔다고 사람을 자르는 한편, 자신 밑에 있는 직원이 사고를 당해도 또 사람을 구해야할 일이 생겨서 '곤란'하다고 말한다.
알고보니 주인공은 점주의 아들이었고, 그는 그 위에 있는 공석으로 점점 진급한다. 그는 아버지가 만든 편의점 시스템에 복속되어서 생각없이 점주가 정한 규칙들을 받아들이고 일하는데, 여기서 시스템에 반하는 인물로 카리타 에리카가 나온다. 영화에서 거의 그녀만이 비판의식을 가지고 대를 들거나, 인류애를 말한다. 점장이 된 주인공도 그녀에 의해 감명을 받고, 그녀와 뭔가 잘되가는가 싶었는데... 결국 점주가 거슬리는 사람들을 다 죽여버리고(!) 자신도 자살한다. 그래서 당연히 사실적인 영화라기보다는 공포를 섞은 블랙코미디라고 생각했다.
원어제목인 '치루도'는 그 다음날 점심에 만난 일본친구말로는 '신선식품'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사실은 썩어야할 것들이 냉장고에 의해 억지로 유지되고 있는... 방부제가 들어간 음식은 사실 방부제를 빼면 시체와 다름없다고도 생각했다. 억지로 유지되는 것들에 대한 비유법이 아니었을까. 영화의 톤이 오묘하게 드라마와 공포 사이를 넘나들면서 선을 넘지 않았고, 그래서 새로운 느낌으로 재밌게 봤다. 요새 일본 영화계가 부러운데 (특히 젊은 감독/배우들이 선전하는 것 같아서) 한국에서도 더 좋은 젊은 감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부분은 내가 한국 영화를 많이 안봐서 그런 것일수도 있겠지만서도(잘몰라서..?) 국제 영화제에서의 일본영화/감독들의 약진, 혹은 내가 최근 2~3년 동안 본 수작 일본영화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그냥 최근에 본 것 중에 기억나는 것만 해도 <슈퍼 해피 포에버> <해피 엔드>, 미야케 쇼의 영화 등 만족한 작품들이 많다.)
카라타 에리카는 이제 완전히 재기에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아사코>에서 처음 봤을 때 그녀의 어색한 연기톤은 감독이 원하던 방향이라 선택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당시 그녀가 나온 다른 영화나 드라마를 드문드문 봤을 때는 역시 연기력이 별로인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외모에 굴복당해 다른 작품을 굳이 찾아봤던 지난날의 나...) 이후 <아사코>에 상대역으로 나왔던 남자 배우와의 불륜으로 잊혀졌다가 제작년에 넷플릭스에서 일본에서 예전에 인기 있었던 여자레슬링을 소재로 한 드라마로 다시 천천히 필모를 쌓아가고 있는 것 같다. 연기력도 그 드라마에서 훨씬 좋아졌다고 느꼈고, <Anymart>에서는 당당히 영화를 지탱하는 한 축이었다. 일본친구에게 일본인 입장 / 일본 사회에서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냐 물었더니, 사실 일본에서는 그녀보다 남자 배우가 유명해서 그쪽으로 관심이 훨씬 많이 쏠렸고, 오히려 카라타에리카는 관심밖이었다고. 그래도 그 문제로 업계에선 거의 몇 년간 못나왔던건 사실이긴하다. 엄연히 말하면 불륜은 법보단 윤리의 영역이니 (범죄가 저질러진게 아닌이상) 그녀가 연기자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건 좋다고 생각하긴하는데 마음 한켠은 불편함이 없진 않다. 홍상수의 영화를 볼 때도 그런것 같기도 하고... 만약 내가 별로 관심이 없는 혹은 비호감인 사람이 같은 조건이었어도 내가 이렇게 생각했을 까? 가끔은 나도 선택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76회 베를린영화제 정리 (주관적)
아주 좋았던 영화 : 없음
좋았던 영화
<지우러 가는 길> <Safe Exit> <Anymart> <Meine Frau weint>
평작
<Piedras preciosas> <그녀가 돌아온 날> <The Da of Wrath : Tales from Tripoli>
<Light Pillar>
아쉬웠던 영화
<We Are All Strangers>
여분의 날들
이튿날에는 베를린에서 어학을 할때 마지막 수업에서 만났던 일본인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고 (역시나) 말차카페에 가서 녹차와 호지차 티라미슈를 시켜 먹었다. 이 친구는 박사를 한 지 3년째이고, 올해 말까지만 장학금이 나오는데 박사과정은 2년은 더 해야될 것 같아서 좀 더 싼 월세를 가진 집을 찾고 있다고 했다. 베를린에서 학생의 삶은 확실히 힘들다. 사람들이 많아져서 집값도 비싸지고(집은 그닥 좋지 않은데) 집구하기도 힘들다. 역시 음식사진은 못찍었다.
다시 바이로이트로 가는 날에는 원래 버스가 아침 8시에 출발이었는데, 버스가 취소되어서 저녁 5시로 바뀌었고, 그래서 시간이 생겼다. 오전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간중 하나인 Akademie der Kunst(미술관) 카페로 가서 건물구경도 하고 커피한잔도 했다. 겨울이라 그런건지 따로 전시회를 하고 있진 않았다.
진짜로 마지막으로 한 일은 필름카메라를 산 것. 원래 예전 필름카메라의 톤을 좋아하기도 했는데, <퍼펙트 데이즈>에서 히라야마상을 보고 언젠가 중고 필카를 사서 사진을 찍으리라하고 다짐했는데... 결심하고 2년만에 드디어 행동으로 옮겼다. 전날 저녁에 베를린에 세컨핸드 카메라를 파는 곳을 검색했고 한 가게를 찾았다. 나는 좋은 화질을 원하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오히려 비싼 필름카메라가 아니어도 됐었고, 몇 개의 모델을 적어갔다. 가게에서는 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카메라 상태도 보면서 적당한 것을 하나 구입했다.
내가 산 모델은 올림푸스의 AF10 Twin이었는데 1) 플래쉬를 내가 on/off를 할 수 있어야 하고 2) 가격이 150유로를 넘지 않으며 3) 디자인이 괜찮아야하는 조건을 모두 만족시켰다. 덤으로 렌즈 두개를 바꿔가면서 줌 모드로 찍을 수 있는 것도 플러스 요인이었다. 이제 일회용과는 안녕이다... 사고나니까 디자인이 더 예뻐보였다. 가게에서 사서 그런지 끈이랑 케이스(이모델것은 아니지만)도 받았다. 이제 열심히 찍어야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