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의 넋두리.
지금으로부터 7-8년 전에 혼자 넋두리한 글을 발견하고 별 수정 없이 올립니다. 분명히 부끄럽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글이지만 지금보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흘러넘치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요즘 가끔씩 집에서 혼자 바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한참 몸이 후달릴때에는 맥주 한 잔에 이틀은 저기압으로 지내곤 했다. 운동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난 것인지, 여름방학 때부터인가 병맥 두 병이나 칵테일 두세 잔 정도를 마셔도 다음날 크게 무리가 없었다. 그 후 한두 번 주말을 낀 저녁에 맥주를 조금, 아주 조금 마셨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방에 불을 끄고, 부엌 형광등을 켜 놓으면 어두컴컴해서 꼭 바 같았다. 그다지 사운드시스템이 좋진 않지만, 아니 정말 최악이지만 그게 뭐 대수라고. 좋은 음악을 들으면 가끔은 2002년, 2003년 대학 초년시절로 돌아가기도 하였다.
어제는 공부도 되지 않아 작정하고 마트를 가서 잭다니엘 500ml 한 병과 콜라 1.8l, 얼음 1kg, 안주 등을 사 왔다. 친한 바 사장형님이 선물해 주신 기네스잔에 얼음을 조금 넣고 잭다니엘과 콜라를 대충 3대 7 비율로 섞었다. 레몬이나 라임이 없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그럭저럭 시원한 잭콕을 만들었다. 함께 사온 명란젓에 참기름을 부어 첫 번째 안주를 만들고 냉동 갈비산적 한봉을 뜯어 프라이팬에 올렸다. 칼로리가 걱정되었지만 뭐 어쩌겠나.
아마도 퇴근 후에 공부를 하다가 뭔가 풀리지 않아서 괜히 청승을 부렸나 보다. 산책을 하며 오랜만에 동기 놈과 통화를 했고 그놈에게 고민상담을 하다 대학시절 이야기를 잠깐 해서였던 거 같다. 당연히 추억의 노래들로 셋 리스트를 채웠다. 그 녀석이 군대 가기 전에 메일로 가사를 보냈던 노래부터 듣기 시작했다-놀랍게도 당시엔 친구끼리 메일을 정성스레 주고받곤 했다-. 그러다 문득 오전에 새로운 교장 취임식을 할 때 머릿속에 맴돌았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스무 살의 나에게'가 생각났다. 故 이진원 씨가 떠난 2010년 즈음부터 듣기 시작했던 음악으로 당시에 많은 위로를 받았던 곡이다. 가사는 이렇다.
Verse 1
그때 나는 세상이 언젠가 내 것이 될 줄로만 알았지
하지만 나는 이런 멋진 세상의 아무것도 아닌데
승리자의 남겨진 기록이 역사란 건 이미 알고 있어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실격당했어
기회조차 없었어
Chorus
가지려 하지 마 다 정해져 있어
세상의 주인공은 네가 아냐
이 멋진 세상을 그냥 받아들여
어차피 넌 이 세상의 주인공이 아냐
Verse 2
남들이 다 하는 대로 살아 아무리 애써봐도 헛 거야
도망쳐도 결국 돌아오게 돼 안 되는 건 안 돼
Chorus
Chorus
이 곡은 재미있게도 후반부로 갈수록 템포가 급격히 빨라진다. 보통은 프로그레시브 장르의 음악이 아니면 템포를 마음대로 바꾸지는 않는다. 뭐 '체리필터'의 '낭만고양이'같은 곡은 스튜디오 녹음버전 자체가 점점 빨라지긴 하지만. 어쨌든 이 템포의 변화는 아마도 점점 빨리 흘러가는 시간과 헛되이 지나가는 젊음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를 표현하려고 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1절이 끝나고 나오는 기타 솔로는 인도나 중국 노래같이 오리엔탈적이어서 곡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솔로의 이질성은 '멍청아 어차피 세상은 니 인생의 의미 따윈 신경 쓰지도 않아. 메롱~' 이렇게 리스너를 놀린다. 그리고 멜로디는 점점 아래로 떨어져서 자기 비하적인 가사와 잘 버무려져 어깨가 늘어진 청춘들의 슬픔을 표현한다.
'내가 왜 이 노래를 분석하고 있지?'라는 의문이 순간 들었다. 난 故이진원 씨의 스무 살이 아니라 그의 노래를 들으니 생각난 나의 스무 살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서인데...
결 나쁜 머리에 약간 비딱한 안경.. 그 속에 흐리멍덩한 눈동자. 둥글고 약간 통통한 얼굴에 꼬나물은 담배와 덥수룩한 수염. 언제 세탁을 했는지 알 수 없는, 그래서 원래 색이 무엇인지 조차 가늠하기 힘든 -아마 흰색일 듯하다- 꼬질꼬질한 잠바에 갈색 면바지.. 그다지 개성 있지도 않은 옷차림에 꺼칠꺼칠한 모습, 딱 궁상맞은 백수의 모습 그대로였다.
당시에 끼적이던 소설에서 썼던 자기 묘사다. 처절하게 못썼지만 어쨌든 스무 살의 나를 목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료다.
스무 살에 나는 대학교 2학년이었다. 빠른 생으로-내가 원해서 그렇게 태어나고 남들보다 빨리 입학한 건 아니다- 1년 일찍 학교에 들어갔다. 당시의 나는 고등학교 때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밤늦게까지 깨어있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고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도 민증검사도 하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고 멋진 학문을 한다는 우월감과 어른이 되었다는 안도감 같은 것을 느꼈던 거 같다. 음악에 더욱 빠져들었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지껄이기도 했다. 뭐든지 서툴면서 그게 서툰 건지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짝사랑으로 가슴 아파하는 지질한 자신을 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하루키 소설을 따라한 문체로 포장된 그 모습을 즐기기도 하였다. 남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부족한 자신을 혐오하기도 했다. 남들의 시선이 굉장히 중요한 자기 평가의 기준이 되었다.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했고 노래방을 좋아했다. 작은 골방에서 친구들과 키득거렸고 그 때문에 옆방에 사는 사람들에게 한 소리 듣기도 하였다. 담배를 시작했고 바에서 칵테일을 마시기 시작했다. 아마 인생의 목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었나 보다. 분명 뭔가 걱정거리는 있었던 거 같은데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근거 없이 낙관하고만 있었다. 다만 배움의 즐거움을 처음으로 깨닫기는 하였다.
한마디로 대책 없이 취해있었던 거다.
하나둘씩 군대를 가고 나 역시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처럼 우여곡절 끝에 입대하고 얼떨결에 전역했다. 정신없이 시험을 치르고 평가를 받으며 뚜렷한 열매를 따려 노력했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연락이 뜸해지고 직장동료라는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좀 더 실체를 가진 채 현실을 살아가게 된 거 같다. 인생에 '새로움'이라는 것이 뜸해졌고 누군가는 그게 지겹고 재미없다고 얘기했다.
부모님께 매달 용돈을 보내드리며 그동안 받은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게 되었고, 적지 않은 아이들과 1년을 함께하며 그들을 조금 도와주었다. 그리고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한 사람도 왔다. 그때와는 다르게 비었던 마음이 많이 채워진 거 같다.
그래도 그 뿌연 시절이 지금의 나에게 소중한 이유는, 스무 살의 내가 살던 그때가 너무나도 즐거웠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슬픈 추억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마음 한편이 허한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지금 이렇게 두서없이 글을 싸지르는 게 그때의 그리움과 후회 때문인지 알딸딸하게 취해있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