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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Nov 26. 2023

[단편소설] A Villain in a Car

안전 운전합시다.

 

깊은 밤이다. 그는 운전석에 올라 차문을 닫았다. 스타트 버튼을 가볍게 눌러 전원을 켰다. 계기판과 센터패시아에 있는 스크린이 켜졌다. 화면에 스르르르 3D로 차의 로고가 나타나며 부팅이 되었다. 서글픈 겨울의 초입이다. 차 안의 무거운 공기는 사람을 외롭게 하는 차가움을 지녔다. 그는 서글픔을 느꼈다. 스읍. 한숨을 쉬었다.


작게 볼륨을 줄인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가 좋아하는 음악이다. 스타트 버튼을 지그시 한 번 더 눌러 엔진의 시동을 켠다. 부르르릉. 엔진이 스트레칭하며 몸을 풀듯이 떨렸다. 검은 인조가죽 운전석을 통해 차의 떨림이 전해진다. 동시에 차의 앞유리로 전조등 불빛이 켜져 반대편에 주차된 차의 범퍼 쪽을 비춰 일렁였다. 그는 왼쪽 어깨 부근에서 안전벨트를 주욱 당겨 가슴을 지나 오른쪽 허리 부근에 있는 버클에 꽂았다. 철컥. 온열 시트 작동 버튼을 누른 뒤 왼발로 페달 브레이크를 밟아 풀었다. 몸이 나른했다.


오른발로 브레이크를 밟은 뒤 기어를 D로 옮겼다.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차 주변을 훑어보았다. 다른 차들이 빼곡히 주차해 있었지만 차를 빼는 데엔 무리가 없어 보였다. 천천히 오른발에서 브레이크를 때자 차는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차를 어느 정도 앞으로 뺀 후에 핸들을 오른쪽으로 전부 틀었다. 끼기기기긱. 타이어가 지면과 마찰하는 주차장 특유의 소리가 차 밖에서 어렴풋이 들렸다. 오른쪽과 왼쪽 사이드미러를 번갈아 보며 부딪히지 않게 조심히 다른 차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을씨년스러운 초록색으로 페인트 칠 된 지하주차장 출구로 차를 서서히 몰았다. 스마트폰을 거치대에 걸어 내비게이션을 조작했다. ‘집’을 도착지로 설정하니 대략 40분 정도 걸렸다. 고속도로를 짧게 타고 다시 시내로 들어오는 루트였다. 늦은 시간이라 심한 정체는 없나 보다.


급경사의 좁은 커브길을 지나 주차장 출구에 다다르자 초록빛의 차단봉 가운데가 살짝 꺾이며 올라갔다. 그는 오른쪽 방향지시등을 켜고 출구 쪽으로 조심스레 나왔다. 딸깍딸깍. 어. 순간 브레이크를 꾹 밟았다. 덜컹 멈춰서는 차의 관성에 그의 상체도 갑자기 앞으로 쏠렸다.


아이 썅. 오른쪽 인도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킥보드가 쌩 하고 지나갔다. 후드를 쓴 놈이었다.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청소년일 지도 몰랐다. 법적으론 성인이 되어야 탈 수 있다지만 킥보드 어플에서는 성인인증을 건너뛸 수 있게 설정이 되어 있어 청소년도 이용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다. 스치기만 했어도 골치 아픈 일이 생겼을 것이다. 개념을 밥 말아 처먹었나.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는 다시 한번 길 양쪽으로 고개를 휙휙 돌렸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차를 주차장 출구 밖으로 빼내었다.


왕복 2차로의 좁은 도로를 지나 교차로에 다다랐다. 빨간 불이었지만 횡단보도 신호등 역시 붉은색이라 우회전할 수 있었다. 양쪽 차선으로 차들이 속도를 내고 있어 천천히 오른쪽으로 차를 틀어 끝 차선으로 몰았다. 한 50미터 앞에서 끝 차선은 윗 차선과 합쳐진다. 왼쪽 사이드 미러에선 저 멀리 두 개의 전조등이 보인다. 합류해도 될 정도의 거리라 여겨졌다. 왼쪽 방향지시등을 켜고 엑셀을 지그시 밟으며 차선변경을 하려는데, 갑자기 뒤에서 빠아아아앙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한번 사이드미러를 보니 분명히 방금 전까지 꽤 멀리 떨어져 있던 전조등이 가까이 나타나 경적을 울리고 있었다. 끼어주기 싫은가 보다. 나쁜 심보다. 어이구 진짜. 그는 속도를 줄이고 뒤차가 지나가길 기다린 후에 액셀을 밟았다.


얄미운 앞 차의 붉은 후미등 잔상을 따라 그는 속도를 높였다. 얼마 뒤 고가도로를 올라간 그의 차는 도시의 외곽을 지나는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늦은 밤 넓은 고속도로에는 빠른 속도로 차가 다가오거나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애초에 속도를 즐기는 운전자가 아니었다. 2차선으로 올라가 100킬로미터를 넘지 않은 속도로 달렸다. 이대로 터널을 두 개 지나면 고속도로를 내려온다. 1차로에서 여러 대가 규정속도보다 빨리 그를 지나쳤다. 그중 몇 대는 다시 그의 앞으로 차선을 변경했지만 때로는 저 멀리 시야 밖까지 차선변경을 하지 않고 추월차로로 계속 주행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저기 앞에 트럭 후미가 가까워졌다. 꽤나 큰 윙바디 트럭인데 양쪽 뒷 문에는 큼지막한 동그란 눈동자가 붙어 있었다. 저 눈동자 스티커로 인해 교통사고가 좀 줄었다지. 그는 왼쪽 사이드미러를 확인했다. 저기 아주 멀리, 한 200~300미터 뒤에 전조등 빛이 보였다. 방향지시등을 켜고 액셀을 밟고 속도를 내어 1차선으로 갈아탔다.


앞에서 가까워지던 것과는 달리 의외로 트럭이 빨랐다. 그의 차가 겨우 트럭을 따라잡으려는 그 순간, 오른쪽 사이드미러가 번쩍였다. 부와아아앙 소리와 함께, 그의 옆으로 고급 스포츠 카가 한 대 질주해 트럭을 따라잡았다. 차체가 지면에 딱 달라붙은 스포츠 카는 순식간에 그의 앞으로 끼어들었다. 어우씨. 그는 순간 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두 손으로 꽉 쥐었다. 저 미친 게 사람 간 떨어지게 하고 있어. 칼치기는 언제나 욕을 불렀다. 그는 트럭을 따돌리며 멀어지는 낮은 차체의 스포츠카의 붉은 후미등을 바라보며 욕을 내뱉었다.


트럭을 따돌리고 다시 2차로로 들어왔다. 터널을 들어가면 위이잉 위이잉 사이렌 소리 같은 것에 계속 울린다. 잠에 들지 말라는 경고일까. 아니면 갑작스러운 정체에 주의하라는 세심한 배려일까. 그는 주황 불빛으로 가득한, 그래서 오히려 바깥보다 밝은 터널을 지나고 있다. 터널 안은 언제나 갇힌듯한 답답함이 느껴진다. 오르막 길인지 내리막 길인지 균형감도 무너지는 듯하다. 그는 저 멀리 앞 차의 짙은 붉은빛 후미등을 보며 속도를 살짝 줄였다. 때로 실선인 터널 안에서 차선을 바꾸는 몰지각한 것들도 있었다.


긴 터널을 지나 다시 탁 트인 검은 밤하늘과 줄줄이 서 있는 가로등이 나타났다. 이제 곧 고속도로에서 내려올 수 있는 인터체인지가 나온다. 그는 미리 주의 깊게 끝 차선으로 옮겼다. 한 번에 하나씩. 인터체인지 출구 앞에 다다랐을 때, 왼쪽 에이필러 너머로 큰 패밀리카 한 대가 툭 하고 나타났다.


그가 출구에 들어서기 직전 그놈은 안전지대를 넘어 그의 앞으로 출구를 통과했다. 과하게 핸들을 꺾은 관성 때문인지 바깥쪽 갓길을 반 정도 넘었다 다시 차로 안으로 들어왔다. 추월차선에서 한 번에 세 개의 차선을 대각선으로 질러 넘어온 것이다. 미친놈. 충분히 속도를 줄이고 있어서 망정이지 앞만 보고 갔다간 분명히 그의 차와 부딪혔을 것이다.


인터체인지를 내려와 처음 만나는 큰 교차로에서 그는 좌회전을 해야 한다. 좌회전 차선은 두 개인데, 그는 교차로의 교통섬에 붙어 바로 끝차선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2차로에 제일 앞에 섰다. 빨간 신호등이었다. 왼쪽 방향지시등을 켰다. 얼마 안 있어 그의 왼편 1차로에도 그의 차와 같은 모델인 SUV 한 대가 섰다. 그는 무언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신호는 곧 초록불로 바뀌었고 그는 유도선을 따라 좌회전을 하였다. 아. 역시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1차선에서 그 차는 유도선 안 쪽으로 깊이 돌더니 좌회전을 하자마자 2차로, 즉 그의 앞으로 끼어든 것이다.


빠아아앙. 그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경적을 길게 울렸다. 새끼야. 사고라도 내고 싶냐. 차 안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그의 앞에 끼어든 차도 순간 멈칫했다가 다시 앞으로 갔다. 그가 경적을 멈추고 그 뒤를 따라가는데, 앞의 그 차는 1차로로 차선을 바꾸더니 속도를 줄여 이내 그의 옆으로 달렸다. 보조석 창문을 내리더니 운전석 깊이 어떤 아저씨가 그의 차를 보며 뭐라 뭐라 소리쳤다. 열이 받은 그도 창문을 내렸다. 밖의 차 엔진 소리들과 더불어 욕이 섞인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어왔다. 야이 새끼야. 거기서 내 앞에 끼면 어떡하냐.


개소리 말고 꺼져 씨발놈아. 너 상품권 보내줄게. 기대해. 그는 아저씨보다 더 큰 목소리로 경고하고는 유유히 창문을 닫았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본인이 잘못해 놓고 먼저 시비를 걸고 큰소리로 따져. 세상이 참 각박하다. 순간 울컥하는 심장에 욕지기가 났지만 그는 차분하게 한숨을 내쉬며 가라앉혔다. 엉덩이와 허리를 살짝 흔들어 자세를 고쳐 잡고 등을 좌석에 기대었다.


이제 얼마 후면 집에 도착한다. 그가 잘 아는 길이다. 천천히 차를 몰며 오른손으로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종료했다. 한 택시가 어느새 그의 앞을 달리고 있었다. 어. 갑자기 노란 비상등을 깜박이기 시작한 택시는 이내 급정거를 하며 멈춰 섰다. 아우씨. 핸들을 틀 새가 없었다. 그는 브레이크를 깊이 밟았다. 끼이익. 몸이 앞으로 쏠렸다.


아. 부딪히진 않았다. 인도에 서 있던 한 사람이 택시 뒷좌석 문을 열고 차에 올랐다. 개새끼들. 다행히 그의 뒤로 오던 차 역시 거리를 잘 유지했는지 적절히 멈춰 섰고 사고는 없었다. 손님을 태운 택시는 다시 유유히 출발했다. 하아. 그는 심호흡을 했다.


저기 일방통행 골목으로 들어가면 곧 그의 집이다. 그는 큰길에서 우회전해서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웬걸. 그의 앞에 전조등 불빛이 비치는 거지. 여긴 일방통행인데. 그 차는 상향등을 몇 번 깜박였다. 비키라고. 니가 비켜야 하는데. 그의 뒤로도 몇 대의 차가 줄을 섰다. 짜증이 오를 대로 오른 그는 경적을 빠앙 하고 몇 번 울렸다.


몇 분 간의 대치 후에 그 차는 천천히 후진하기 시작했다. 골목 한쪽으로는 주택가 벽이 주욱 이어져 있었고 맞은편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역주행 차는 빈 공간으로 차를 들이 밀어 그가 지나갈 공간을 만들었다. 어쨌든 결국엔 역주행으로 지나갈 작정이었다. 그의 차와 뒤따르는 몇몇 차가 그곳을 통과한 후, 백미러로 보니 역시나 그 차는 역주행을 해 그곳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에휴.


드디어 그가 사는 아파트 단지 입구다. 차단봉이 열리자 그는 자신이 사는 동 쪽으로 차를 몰았다. 오래된 단지는 지하주차장이 없었다. 빽빽이 들어찬 주차장에서 겨우 빈 곳을 찾았다. 후진으로 차를 넣으려는데. 어. 왜 사람 실루엣이 보이는 거지. 이 동네에도 인간 라바콘이 있구나.


그는 운전석 창문을 내려 그 실루엣에게 비키세요라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손으로 그의 차 트렁크를 텅텅 쳤다. 여기 맡아 놓은 자리예요. 남편이 저기 차 가지고 올 거예요. 그는 헛웃음이 났다. 차가 와야지 사람이 와서 맡아 놓는 게 어디 있나요.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후진했다. 아주머니는 어쩔 수 없이 옆으로 물러났다.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는 무시하고 창문을 올렸다.


앞유리로 차의 전조등이 비쳐 눈이 부셨다. 그 남편이란 작자인가. 그는 더러워서라도 논쟁은 피하고 싶었다. 피곤한 밤이었다. 차의 시동을 멈추고 손을 모아 이마에 대 눈을 가렸다. 그때 그 차의 전조등 위로 파란색과 빨간색 불빛이 딱 켜졌다. 경찰차다.


경찰차가 왜 있지. 그는 차에서 내리며 눈부심을 참고 경찰차를 바라보았다. 정차한 차 양쪽 문이 열리며 경찰관 두 명이 내렸다. 그들은 차에서 내려 엉거주춤 서 있는 그에게로 곧장 다가왔다. 아주머니는 딴 곳으로 가고 없었다.


실례합니다. 00버 0000 차주시죠. 두 경찰 중에 나이가 많아 보이는 자가 물었다. 네. 음주 측정 해주셔야겠어요. 제가 왜 해야 하죠. 음주운전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고속도로에서부터 차선을 왔다 갔다 하며 비틀비틀 운전한다고 누가 신고했어요. 신고자 분께 추적을 부탁해서 저희가 출동할 때까지 당신을 뒤쫓았죠. 당황스럽네요. 사수 경찰관이 그에게 설명하는 동안 옆의 젊은 부사수가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 술냄새나는데. 맞네요 맞아요.


하아. 한숨을 쉰 그는 순식간에 뒤로 돌아 자신의 차 뒤쪽으로 냅다 달렸다. 야. 잡아 잡아. 경찰관이 갑자기 도망치는 그를 쫓았다. 어. 왜 발이 내 마음대로 안 움직이지. 속이 울렁이고 보도가 흔들거리다 순식간에 위아래가 바뀌었다. 우당탕. 코너를 돌던 그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뒤따라온 경찰들이 엎드린 그의 팔 한쪽을 뽑아 등 뒤로 꺾었다. 남은 손도 허리 뒤로 빼 그의 배와 가슴은 바닥에 닿았다. 강하게 눌린 가슴에 그는 어푸 숨을 헐떡였다.


왜 도망가는 거야. 자. 가만히 있어. 공무집행 방해랑 음주로 현행 체포합니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아득해져 가는 의식 너머로 무언가 소리치는 경찰관의 걸걸한 목소리와 헉헉 거리는 숨소리, 몸이 발버동 치는 소리와 철커덕하는 쇳소리가 들렸다. 그는 눈을 감았다. 씨발.


덧.
저는 절대로 음주운전을 하지 않습니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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