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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Nov 29. 2023

내가 싫어하는 것.

사소한 무시.


나는 자존감이 그렇게 높은 부류의 인간이 아니다. 사춘기와 20대 초반 스스로를 혐오하며 비관한 기간도 꽤 길었다. 대부분 다른 사람과의 비교로 인해서였던 거 같다. 외모가 남들보다 낫지도 않은데 꾸미는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지적이고 싶었으나 생각만큼 이해력이나 암기력이 좋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게으르고 의지가 약해 그런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뼈아픈 노력을 하지도 않았다. 그런 노력의 부재도 자격지심과 열등감에 한몫했을 것이다.


그런 기간이 지나고 운이 따라주어 현재까지 삶에서 몇몇 난관을 잘 헤쳐왔다. 군대도 무사히 전역하고 직업도 갖게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도 가졌다. 남들에게 크게 눈에 띄는 성취를 이루진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은 인정받는 경우도 생겼다. 이런 긍정적인 경험이 나의 자존감을 조금은 탄탄하게 해 주었고 과거에 가졌던 열등감과 자격지심을 어느 정도 가벼이 여길 수 있는 여유를 주었다.


그러나 그 민감한 시기에 피어난 약한 자아라는 꽃은 뿌리가 얕지 않았다. 계절이 바뀌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것처럼 그 열등감은 주기적으로 한 번씩 찾아와 날 힘들게 한다. 때로는 티브이에 나오는 연예인을 보다가, 때로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 소식을 듣다가 배에서부터 참기 힘든 무언가가 꾸릉꾸릉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그 근원이 되는 사람이 싫어지기도 하고-그 사람은 사실 아무 잘못이 없다- 동시에 그런 마음을 먹게 되는 스스로를 혐오하게 된다. 그런 마음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며 쉬이 잦아들지 않는다.


이런 주기별 우울함 말고도 그 뿌리의 흔적은 또 있다. 나는 무시당하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네이버 사전에 찾아보니 ‘무시(無視)’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사물의 존재 의의나 가치를 알아주지 아니함‘이란 뜻이고 두 번째는 ’사람을 깔보거나 업신여김‘이라는 뜻이다. 두 가지 무시당함 전부 해당하지만 나의 존재를 알아주지 않는 첫 번째 무시당함이 더 큰 상처가 된다.


나를 울컥하게 만드는 무시당함의 원인은 어떤 거대한 상처 주는 말이나 행동이 아니다. 그저 내가 건넨 가벼운 인사나 말에 타인이 반응하지 않는 일과 같은 사소한 일이다. 어떨 때는 가벼운 농담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아마도 내 목소리나 제스처가 크지 않아 그 사람이 못 듣거나 못 보았을 수도 있다. 때로는 그 사람의 목소리나 행동이 너무 작아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혹은 정말 아무런 악의 없는 가벼운 농담을 뱉은 걸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없는 나는 그 사람이 일부러 무시한 건 아닌지 불안해지고, 이내 울컥한다.


이영도 작가가 쓴 <드래곤 라자>라는 판타지 소설에는 네리아 라는 빨간 머리 도적이 등장한다.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행위가 등 뒤에서 자신에게 말을 하는 것이라 한다. 생명의 위협이 될지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아마도 서로를 마주 보며 진심으로 소통하지 못하는 상황, 즉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한다 여겨 그러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때로 누군가 소곤거릴 때 나를 험담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이 일기도 한다. 복도를 지나갈 때 타인의 감정을 읽는데 미숙한 , 그래서 예의도 별로 없는 몇몇 중학생들이 내 등 뒤에서 장난을 치는 건 아닌가 긴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한 번 그런 녀석이 있어서 크게 혼낸 적도 있다. 이런 불편한 긴장감이 아마도 내가 무시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오는 게 아닐까.


한 때, 88만 원 세대나 흙수저 같은 말들로 젊은이들의 슬픔에 큰 관심이 쏟아졌다. 이 즈음 발매된 ‘브로콜리 너마저’ 2집은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청춘들을 토닥이는 노래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사실 어느 누구도 쉽사리 타인을 위로하지 못한다. 이 밴드의 타이틀 곡은 그래서 <사랑한 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이다. 제목이 이런 노래에 아이러니하게 위로를 받는다. 신기하다.


출처: https://youtu.be/Cf-Sv9AJ8H8?si=XFh4jEEu_bgZ6nLi




표지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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