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여기저기가 고장 나는 것인가.
이제 막 사십 줄에 들어서서 이런 앓는 소리를 하는 게 햇병아리처럼 보실 분들도 있을 텐데. 먼저 양해를 구합니다.
어제저녁 이전 학교에서 퇴직하신 교장 선생님과 당시 부장이었던 사람들의 모임이 있어 참석하였다. 주례를 서주신 고마운 교장님과 나와 가깝고 내가 많이 의지했던 분들이 계셔서 즐거운 자리였다. 오후까지 10도 안팎으로 따뜻한 날씨였는데, 자리를 파한 저녁부터 급격하게 추워졌다. 모임이 마무리될 즈음부터 허벅지와 발목 쪽이 살짝 간지러웠다. 차가운 바람을 뚫고 집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는데 양쪽 허벅지가 간지러워 확인하니 벌레에 물린 듯 허벅지 여기저기 붉게 부어오고 있었다. 특히 오른쪽 허벅지는 부어 오른 부위가 넓게 퍼져 있어 꽤나 간지러웠다. 요즘 빈대가 유행한다던데 빈대에 물린 건가? 아니면 대상포진? 아니면 내가 더러워서? 난 분명 자주 씻는데. 별의별 생각들이 다 들었다.
두텁게 붓지는 않았지만 붉게 물든 범위가 점점 넓어지는 게 불안하였다. 인터넷에 '겨울, 건조, 허벅지, 가려움'으로 검색하자 제일 먼저 '피부건조증'이라는 병명이 나왔고 많은 사람들이 이로 고통받고 있는 내용과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아이가 바르는 바디로션을 허벅지와 종아리, 허리 등에 덕지덕지 바르고 불을 껐는데, 새벽까지 간지러움에 잠들지 못했다. 참지 못하고 불을 켜서 확인해 보니 잠자리에 들기 전보다 부은 부위가 훨씬 넓어져 있었다. 피부가 상하지 않게 손톱과 손가락을 사용해 간지러운 부위를 살살 긁거나 쓰다듬다 보니 어느새 새벽 3시가 넘었다. 나는 그 후에도 더 시달리다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래도 바디로션을 듬뿍 발라서였는지 오늘 아침에 부기는 거의 빠져 있었고, 조금 안심하고 출근할 수 있었다.
겨울처럼 춥고 건조한 날씨에 피부가 간혹 간지러울 때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이렇게 몸이 부어올라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 꽤나 서글퍼졌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루하루 죽어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노화가 눈에 보이고 느껴지기 시작하니...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어나는 신체적인 변화에서 늙어가고 있음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탈모였던 듯하다. 원래 가마가 두 개여서 정수리가 남들보다 더 휑한 느낌이 있었다. 5-6년 전부터 후드를 뒤집어쓰고 달리기를 한 후에 머리를 만져보면 숱이 부족해 정수리 부근 머리카락 부피가 얇아짐을 느꼈다. 한의원이나 전문 병원 등 몇 군데 돌아다니고 샴푸도 바꿔보고 하다 몇 년 전부턴 거의 매일 약을 먹고 있다. 눈에 띄게 탈모가 심하진 않아 다행이지만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다.
구레나룻 주변에 흰머리도 늘었다. 많이 티가 나지는 않지만 점점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아내가 간혹 흰머리를 뽑으며 날 고통스럽게 한다. 많이 뽑으면 안 된다고 하긴 하는데… 주변에 아는 형님들도 심하게 희끗한 머리를 가졌거나 그래서 염색을 하는 분들이 꽤 있다. 코털도 길고 굵어졌다. 나이가 들면 그렇게 된다고 하였다. 삐져나온 코털을 보며 아내가 날 놀리면서 뽑아주기도 한다. 스스로 정리하는 일도 늘었다.
손톱 주변 살과 발 뒤꿈치도 건조한 겨울이 되면 쪽 하고 갈라져 고통을 유발했다. 손톱 살은 군대 시절 한창 고생하던 겨울에 아프다 말았는데 역시 몇 년 전부터 심해지기 시작했다. 고무장갑을 끼지 않고 설거지를 많이 해서인지. 발 뒤꿈치도 애초에 굳은살이 많았는데 3-4년 전부터 한 겨울엔 심하게 갈라질 때가 간혹 생겼다. 그래서 요즘 손과 발이 로션으로 번들거릴 때가 많다.
소화 기능도 확실히 떨어졌다. 재작년에 한동안 족발을 먹을 때면 항상 체하던 때가 있었다. 튀김이나 햄버거를 가득 먹고 난 뒤에 소화불량의 불편함도 더 생생하게 느끼게 되었다. 덕분에 예전처럼 배가 터져버리기 직전까지 음식을 쑤셔 넣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간혹 식사 후에 소화제를 먹어야 속이 덜 불편하다.
재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치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오른쪽 아래 사랑니를 빼고 남은 마지막 어금니 사이에 음식물이 많이 끼게 되면서부터였다. 아마 잇몸이 약해져 이 사이가 멀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이 사이에 답답함이 느껴지거나 음식물이 끼는 횟수가 늘어 이틀에 한 번 꼴로 치실을 사용한다.
2016년 시작된 오른쪽 날개뼈 견갑골 통증과 목 디스크 증상은 꾸준히 나를 괴롭히고 있다. 이 주면 사라질 통증이라 믿었는데. 이번엔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도 등과 오른팔의 불편함과 저릿함이 주기적으로 온다. 덕분에 팔 굽혀 펴기와 턱걸이 횟수도 순식간에 떨어졌다. 오른팔에 힘이 안 들어가는 게, 의학적 지식은 없지만, 루게릭이나 이런 무시무시한 병의 전조는 아닐지 두렵기도 하다.
눈이 침침해졌다. 올해 새해를 맞으며 새로 안경을 맞췄는 게, 안경사가 내 눈을 확인하더니 노안 전 단계쯤 온 듯하다 하였다. 오래지 않아 빛 번짐이 꽤 있어 저녁 운전이 불편하고 가까운 글씨가 잘 안 보이게 될지도 모른다 하였다. 그나마 관리가 잘 되었는지 눈의 상태가 아주 나쁘진 않으니 잘 관리하라 조언하였다.
올 초에 새 학교로 옮기고 얼마 후 공황장애가 무엇인지 간접적으로 체험한 듯한 가슴의 떨림을 겪었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화장실에서 잘 진정이 안 되는 심장을 느끼며 그래도 창 밖 도시의 풍경이라도 보면 위로가 될까 싶었던 적도 있었다. 한때 아버지가 겪으셨던 두려움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스스로 남들보다 걱정이 많다고 생각한다. 작은 일에도 호들갑을 떨어 주변을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 신호면 노화가 시작되었다는 건 분명하다. 주변 친구들 중에 커피를 즐기는 한 녀석은 통풍이 와서 심하게 고생을 했다. 어떤 선배는 벌써 오래전에 대상포진을 앓은 경험도 있단다. 이명이 왔던 친구도 있고 허리디스크로 고생하는 녀석도 있다. 20대 때 이미 이마가 상당히 올라간 한 친구도 나처럼 탈모약을 복용하고 있다. 나만 겪는 일이 아니다.
죽음 자체는 그렇게 두렵지 않다. 아니. 나약한 정신 때문인지,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욕망 때문인지, 아주 가끔은 죽음이 찾아왔으면 생각할 때도 있다. 어느 날 지하철 플랫폼을 걷다 손을 맡잡고 가던 노부부의 뒷모습을 보며 하염없이 부러웠던 적도 있다. 어떤 모진 풍파를 겪은 삶인지 알 길은 없으나 이미 그 시간을 함께 겪고 함께 인생의 마지막 장에 이른 그분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야비한 인간의 본성인가. 그러나 죽음에 이르는 그 과정은 두렵고 겪기 싫다. 뭉친 어깨를 아무리 스트레칭해도 근육이 풀리지 않는 답답함에서부터. 두통약을 먹어도 지끈거리는 두통이 해소되지 않아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고통까지. 때로는 나쁜 자세나 생활습관으로 스스로 자초하기도 했고, 때로는 원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찾아오기도 하는 이런 불편함은 삶의 의지나 활력까지 꺾어버리는 듯하다.
삶의 의지를 다잡을 수 있는 무언가를 더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아이와 아내를 생각하며 버텨야지. 요즘 취미가 된 글쓰기가 주는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해 주는 카타르시스도 힘을 준다. 한걸음 한걸음 달리며 호흡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명상으로 마음을 비울 수도 있다. 그리고 꼴에 영어교사라고 영어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관련된 연구에 몰입하거나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가끔 느끼는 보람 같은 것도 좋은 영양제가 될 수 있을 테지. 아. 일자목이 더 심해지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바른 자세와 생활 습관을 가지려 노력해야지.
무한도전에서 박명수가 불혹이라고 놀리던 장면들을 보며 피식피식 웃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내가 사십이다. 부모님의 목과 얼굴에 짙어진 주름을 보며 내가 나이를 먹는 만큼 당신들도 노인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아버지께서 내 나이일 때 난 이미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지금 내 아이는 만 3살이 되지 않았다. 대충 계산해 보면 내가 환갑이 되어도 아이는 20대 초반이다. 어우.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