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명당 앞에서 새똥을 맞고 로또를 안 살 확률.
오늘 있었던 따끈따끈한 일이다-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이미 어제가 되었다-. 우리 학교는 차량 5부제를 시행하고 있어 수요일 오늘은 끝자리가 3으로 끝나는 동뿡이를 두고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한다. 퇴근시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하철역에서 내려 버스 도착시간을 확인하니 15분이나 남았네. 한 정거장 더 가서 다른 버스를 타야지 생각하고 걸었다. 걷다가 스마트폰을 확인하니 점심을 먹을 때 오랜만에 연락해 왔던 친구의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 아차. 점심 먹고 내가 전화한댔는데. 그래. 친구랑 통화하면서 걷자.
2013년 같은 학교에 근무하여 알게 된 지리교사인 친구다. 철없던 시절 내가 이 친구에게 큰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그는 호탕한 웃음소리만큼 넓은 마음으로 넘겨주었다. 그 친구가 교사를 그만두고 청주로 이사를 간 후에도 가끔 그러나 꾸준히 연락하는 친구다. 서로 육아나 운동,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유명한 로또 명당 사거리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지나가는 길이니 로또나 하나 살까. 통화를 하며 로또 명당 입구에서 서성였다. 왜 그랬을까. 왜 거기에 서 있었을까. 순간 머리 위로 투둑 하는 느낌이 들었다. 낙엽이 떨어졌나. 아니면 혹시… 불안한 마음에 오른손으로 머리를 가볍게 한 번 쓰다듬었다. 불쾌한 무언가 묻었다. 아아. 새똥이다.
야야. 나 새똥 맞았다. 쏘리쏘리. 다음에 또 연락하자. 건강 잘 챙기고. 어. 어. 잘 지내. 변하지 않은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친구의 목소리는 스마트폰 너머로 사라졌다. 통화하는 사이 작년까지 같이 근무했던 3학년부장님으로부터 캐치콜 메시지가 몇 건 와 있었다. 급한 일이신가. 우선 가방 코트를 조심스럽게 벗어 왼쪽 어깨 부근을 확인했다. 다행이다. 깨끗하다. 똥이 튀거나 하지 않았다. 머리만 맞았나 보다. 가방과 코트를 오른팔에 끼고 새똥이 묻은 손바닥은 위로 치켜올렸다. 아 로또집 앞에서 새똥이라니. 이거 한 장 사야 하는 거 아닌가. 난 다급한 마음에도 한편에 물욕이 스멀스멀 올라옴을 느꼈다. 에라이. 뭔 놈의 로또. 빨리 집에나 가야지.
왼손으로 스마트폰을 터치하여 아내에게 전화를 걸고 상황을 간단히 설명하며 좀 늦게 도착한다고 얘기하였다. 그리고 3학년부장님께 연락드렸다. 혹시 귀에 묻어있을지 걱정이 되어 스피커폰으로 통화했다. 업무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이 무사히 집 앞에 도착하여 전화를 끊고 들어갔다. 아내는 변기에 응가를 한 아이를 씻기고 바디로션을 바르며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요즘 배변 교육 중이라 다이소에서 산 아기 변기커퍼를 설치했다. 아이는 기특하게도 소변과 대변을 화장실에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 아내는 표정이 좋지 않다. 눈치가 보였지만 머리에 얼마나 묻었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 아이의 생떼에 시달려 아내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급하게 손을 씻고 웃통을 벗고 머리를 감았다.
찝찝한 마음까지야 씻을 수 없었지만 그런대로 새똥은 씻어낸 듯했다. 화장실을 나와 뚱한 아내에게 아, 로또를 샀어야 했는데, 아쉬운 소리를 했다. 로또 사는 것을 쓸모없다 생각하는 아내는 시큰둥. 그래도 저녁은 맛 좋은 집코바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내가 저녁식사 준비를 하는 사이 거실에 누워 아이와 놀아주며(?) 나는 공상을 펼쳤다. 로또 명당 앞에서 새똥을 맞았는데, 로또를 샀으면 1등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10억은 받았겠지. 그럼 서울 북쪽 한 귀퉁이에 연식이 20년 안 된 25평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겠구나. 아이가 있으니 방은 세 개, 화장실은 한 개도 나쁘지 않지만 두 개는 더 좋겠지. 남향이라 해가 잘 들고 지하 주차장이 연결되어 비나 눈이 올 때 밖을 나갈 필요 없이 차를 타고 내릴 수 있으면 금상첨화인데. 돈이 좀 남는다면 방학 때 해외로 가족여행도 가고, 부모님 용돈도 드리고, 나머지는 은행에 두고 조금 더 든든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부질없는 공상이지만 자주 그런 꿈을 꾼다. 내가 운을 타고나 부잣집에서 태어나거나 혹은 귀인을 만나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면. 아님 조금 더 일찍 태어나 집값이 오르는 시기를 잘 만나 내 집 마련을 이미 했다면. 글 잘 쓰는 재능을 타고난 것과 더불어 미리 정신 차리고 열심히 글을 써 세상의 거대한 주목을 받는 작가가 되었다면. 한편으론 이런 자격지심도 생긴다. 성공한 사람들이 미디어에 나와 자신의 노력, 재능, 그리고 운이 겹쳐 성공했다고 말하며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간 운이 따를 거라고 사람들을 격려하고 위로할 때, 삐딱하게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쳇, 코웃음을 칠 때도 있다.
그러나 자신을 드러내고자 함은 인간의 본능인 듯하다. 스스로를 태생적으로 겸손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나 역시도 남들에게 주목받을 수 있는 운과 재능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지금까지 쓴 글에서 은연중에 스스로를 드러내고 자랑하는 내용들이 녹아 있을 것이다. 몇몇은 겸손한 문체로 썼지만 일부러 자랑하려 한 글도 있다. 뭐 겸손한 게 아니라 겸손한 척하는 거 아니냐 따지면 할 말이 없긴 하지만. 이 글도 사실 처음 쓸 때는 바이너의 귀인이론이라던가 제라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나 마이클 센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로버트 프랭크의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같은 글들을 인용하며 잘난 척을 하고 싶었다-고작 저런 대중서를 읽고 잘난 척하려 하는 스스로가 멍청하고 혐오스럽기도 하다, 참으로 복잡하다-.
고지식한 면도 있어서인지 순수한 노동을 통한 수익이 아닌 방식으로 부를 축적하고 잘난 체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도 경멸하기도 한다.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하여 성공했다 자랑하는 사람들. 부동산 상승기에 레버리지를 활용하고 발품을 파는 등 '열. 심. 히' 노력하고 공부해서 수익을 얻은 사람들. 어떤 연예인이 방송에 나와 자신이 가진 빚으로 사람들의 위로와 관심을 받고 결국 얼마 안 되어 내가 보기엔 엄두도 안 나는 그 빚을 다 청산했다고 하더라. 이런 경멸과 동시에 로또와 같은 대박을 꿈꾸는 자본주의에 기생하고자 하는 공상도 하니. 참 한 인간의 정신세계가 이토록 복잡다단한 지.
로또 명당에서 새똥을 맞고 로또를 사지 않을 확률보다 훨씬 적은 확률로 우리는 세상에 무사히 태어났고 삶이라는 뽀나쓰를 얻었다. 특히나 이 시기, 이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만으로 나는 과거 어느 때에 비해 스스로와 가족의 생존에 대해 덜 걱정해도 되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현재 교육 시스템과 사회 체제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해택을 충분히 누려왔고 미친 뻘짓을 하거나 최악의 사고를 겪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어느 정도는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이나 복지 시스템의 취약함으로 인한 부모님 노후와 건강에 대해 걱정하고 책임감을 느끼고 있지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원래 이 글의 목적은 재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 여기는 자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놓는 아주 날카로운 내용으로 쓰려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쓰는 동안 내가 의도하지도 않은 이상한 방향으로 글은 흘러간다. 덕지덕지 자기비판과 한탄, 넋두리, 하소연이 붙은 재미없는 글이 되었다. 그래도 이런 비루하고 부끄러운 글이라도 눈감고 발행을 클릭할 수도 있고, 또, 불특정 소수이긴 하지만 누군가는 읽어 주고 그보다 적은 사람들은 감사하게도 공감까지 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는 것도 행운이지 않을까.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덧.
신해철 형님의 강연은 언제나 시원하고 통쾌하다. 그는 인생이란 태어남으로써 이미 주어진 사명을 다한 우리에게 주는 뽀나쓰 같은 것이라고 위로해 준다. 다만, 요즘 어린아이들 사이에 유행한다는 '유전자도 운'이라는 생각 같은 허무주의는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