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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Nov 11. 2023

브런치에 일기 쓰는 게 뭐 어때서.

작가 아니라도 좋으니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휘갈겨 쓸 테다.


브런치 스토리에 관해, 혹은 어떤 특정 글에 관해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최근에 브런치에 일기를 쓰지 말라는 글을 봤다. 내 경우를 이야기하는 건가 찔렸고 브런치 취지에 맞지 않는 글을 쓴 건가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별 논리는 없겠지만 변명을 좀 해보려 한다.


브런치에 올린 글의 조회수가 어떻다, 구독자가 몇 명 늘었다 같은 글을 좋아하지 않았다. 혹은 어떤 방식으로 써야 합니다, 어떤 방식은 피하세요, 이런 글쓰기 조언 역시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물론 이런 기준과 지침을 잘 지켜 글을 쓰면 좀 더 자신의 이야기를 잘 쓸 수도 있고, 많이 읽히는 글,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선정되거나 출간을 할 만한 글을 쓸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뭔가 반칙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그렇게 손이 가지 않았다. 아마 내 글이 조회수가 높지 않고 구독자가 적다는 자격지심 때문일 수도 있고 자존심이 세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아마 휘둘리는 마음을 더 휘둘리게 두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뭐 애초에 내가 매혹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어서일 수도 있다.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위와 같은 맥락에서 나는 브런치에서 부여한 ‘작가’라는 타이틀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두 번인가 세 번인가 고배를 마신 후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을 때도 그 합격문구에 ‘작가’라는 호칭을 붙여줬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여기저기 올라오는 글들을 보며, 아 여기선 서로를 작가님이라고 부르는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이 공간 속에서 그런 호칭으로 소통한다는 것에 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크게 무게를 두지도 않았다.


작가라는 호칭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스스로 오그라들고 부끄러워서는 아니었다. 혹은 작가라는 타이틀을 고귀하고 범접하기 힘든 무언가로 여겨서 그렇지도 않다. 물론 어원적으로 author는 권위(authority)를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내가 생각하는 브런치 스토리에서의 작가는 author라기보다는 writer에 가깝긴 하다. 그저 스스로를 ‘글쓰기를 하고 싶은 사람’ 정도로 생각한다. 혹시 기회가 주어지면 출간을 하면 좋지 않을까 공상 따위는 하지만 말이다. 내 필명을 따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댄스댄스댄스’에서도 서툴지만 끊임없이 스텝을 밟으라 하였다. 너무 높은 기준을 들이대 의미를 부여하고 몸에 힘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주제가 뚜렷하지 않아도 그저 마음 가는 대로’ 가볍게 쓰고자 함이 내가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올리는 가장 큰 이유다-물론 누군가 읽어주면 그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누군가가 읽어주기를 바라는 건 글쓰기의 본능 같은 거다-.


이 플랫폼의 취지가 작가를 발굴할 풀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는 점은 언뜻 들었다. 그 목적과 취지는 십분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도로 실제 플랫폼의 생태계는 그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행위로 구성되고 성장하고 생존한다. 때로는 그들에 의해 생태계의 성격이나 특징이 규정되고 바뀌기도 한다.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의 발전과 변화가 그랬다. 구글 워크스페이스에서 학교 교육으로 저변을 넓힌 경우도 그런 예로 알고 있다-정확하지 않은 정보라 확신은 없다, 위에 언급한 대로 그다지 논리는 없으니 그냥 넘어갈란다-.


작가 선정 시스템이라던가 크리에이터 선정, 브런치북, 작가에게 제안하기 등의 기능은 책이 될만한 글을 쓰라고 만들어진 듯하다. 웹이나 앱 전면에 소개되는 글들도 모범이 될 만하기 때문에 올려지는 것 같다. 그 취지와 기능에 맞게 주제의식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즉, 하나의 책으로 엮을 수 있는 글을 쓰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그날의 일상, 스토리가 되지 않는 감상, 짧은 분노의 외침 같은 글들도 시시때때로 올라온다. 나만 하더라도 학교와 교육, 일상, 소설이라는 아주 두리뭉실한 카테고리만 정하고 실제 대부분 글은 그날그날 떠오르는 글감을 다룬다. 결국 어떤 형태이든 글쓰기 플랫폼의 근원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남과 공유하는 것이다. 어떤 준거를 가져다 놓고 어떤 성격과 기능을 부여하고 어떤 제한을 한다 하여도 사람들이 원하는 근본적인 본능은 거부할 수 없지 않을까.


그분이 쓴 글의 의도와 목적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특히 출간작가가 간절한 꿈인 분들에게는 유익한 조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언은 조심스럽게 할 필요가 있다 생각한다. 내 주변에 영어교육과 학급경영 등에 관해 강의를 엄청나게 많이 하는 친구가 있다. 스스로 가진 교육철학에 근거하여 여러 가지 교사 연수를 진행한다. 수업 시간에 이런 프로그램을 이용하세요. 구매나 인증 방법은 이런 거고 사용 방법은 이래요. 학급경영을 할 때 학생 상담은 이렇게 하고 학부모는 이렇게 응대하세요. 사안이 발생했을 때 이런 마음을 갖고 이런 식으로 대처하세요. 업무는 이렇게 하면 효율적이에요. 다양한 조언들을 쏟아낸다. 많은 교사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고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때때로 자기 계발서적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분명히 자신이 소개하는 것 중 하나만 실천해도 된다고 서두에 말하고 강의를 시작하여 조금 안심하지만, 연수 말미가 되면 이렇게 안 하면 좋은 교사가 아니다, 이거 활용 안 하면 업무를 멍청하게, 힘들게 하는 거야 따위의 기분이 들게 된다. 위에 언급했듯이 내 쪼그라든 자아의 자격지심이나 비뚤어진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받는 사람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드는 조언의 효용성이나 가치판단에 대해선 사람마다 의견 다르겠지만,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면 조언을 수용하기 쉽지는 않을 거라 생각된다. 그래서 조언은 너무 단언하지 않고 조심스러워야 한다.


나는 그냥 내 마음 가는 대로 계속 휘갈겨 쓰려한다. 소설은 내 오랜 꿈이라서, 아이에 대한 기록은 아이와 아내를 위해, 내 과거에 대한 기록은 스스로를 위해서 쓰는 소중한 글이다. 더불어, 그날그날 떠오르는 생각이나 상념, 분명한 주제의식 없고 두서없는 일기 역시도 나에겐 소중한 글이다. 이 온라인 플랫폼의 취지에 안 맞는 군더더기 같은 데이터 부스러기일지도 모를 테지만 나에겐 그렇다. 아. 그렇다고 잘 썼다는 얘기는 아니다.



덧.

프레디 머큐리의 절규가 가슴을 치는 곡이다.

제목은 ‘내 변명을 하자면(In my defence)‘

출처: https://youtu.be/GVRQ-Tbz2i4?si=Sj-pLs8SSVApB6y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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