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의.
세 번째 학교로 옮긴 첫 해 여름이 갔다. 다시 이등병이 된 느낌으로, 이번엔 아는 이 전혀 없는 새 학교였다. 작은 별실에 부장님과 영전강 선생님, 그리고 나. 언덕에 걸친 건물은 낯설고 복잡한 미로처럼 엮여 있어 여기가 몇 층인지 착각할 때가 많았다. 무리 지으면 용감해지는 멍청한 중2 남학생들 덕분에 수업 들어가기가 싫었다. 그래. 너네가 나보다 이곳 1년 선배니 텃세 부릴 만도 하지. 6월 어느 시기에는 수업 들어가기 전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힘들었다. 아. 이게 심해지면 공황장애가 오는 건가? 40대 중반 실직하신 우리 아버지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기도 했다.
여름방학을 속초여행으로 즐겁게 시작하였고, 달리기도 시작했지만 그것도 잠깐. 이 시국의 트렌드에 뒤쳐질까 코로나에 걸려 2주를 앓거나 병간호로 소진했다. 아이와 아내는 나만큼 아프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코로나 이후에도 아이는 몇 번 더 열감기에 걸려 부모 마음을 졸이게 하였다. 모기 물린 자리는 왜 그리 크게 부푸는지. 아이의 작은 생채기에도 식겁을 하는 작은 가슴을 물려주지 않기만 바랐다.
여름방학이 끝났지만 여름은 끝나지 않았다. 아이는 아프다 나았다를 반복하다 이제 조금 안정이 되었다. 어린이집을 못 보내는 동안 혼자 육아를 하는 아내도 이제 조금 한숨을 돌린 듯하다. 나는. 나는 잠시 멈췄던 달리기와 꽤나 오래 멈췄던 글쓰기를 시작했다. 목디스크로 인한 오른팔의 저릿함은 끊임이 없으나 그래도 조금은 생기가 돌았다. 코로나를 앓고 난 후로 식사량이 조금 줄어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그리고 새 학교에서 가르치는 학생들도 어느 정도 손아귀에 잡히기 시작했다. 교사로서 어려운 이 시대에 아직까지 큰 탈없이 무사함에 감사하며, 그래도 또 조심해야겠다 다짐한다.
8월과 9월에 가깝게 지내는 친구 가족들과 캠핑으로 어울릴 일들이 있었다. 덕분에 아이는 물놀이도, 불멍도 처음 해 보았다. 아. 등갈비도 뜯었구나. 부족한 한 인간을 불러주고 어울리는 그들에게 항상 감사한다. 산속에서는 날씨보다 먼저 높은 밤하늘이 여름이 끝남을 알려왔다.
이번 추석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다 왔다. 오랜 시간 닳아 거무튀튀해진 담벼락을 양 옆으로 골목 끝에 놓인 우리 집에서 그래도, 따뜻한 부모님과 든든한 동생, 삼촌네 가족과 절에 계신 고모와 고모부, 다들 아이를 사랑해 주셨다. 올 초부터 쌓였던 찐득한 불안은 선선한 바람에 조금씩 씻겨간다.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차다. 천 산책로를 달리면서 코로 호흡하다 나오는 콧물을 닦는 횟수가 는다. 여름이 갔다.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