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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Oct 08. 2023

15년 된 MP3.

내 안의 보수성


2007년 6월 전역 후 다음 해 복학하기 전까지 반년정도 고향에 있는 한 보습학원에서 중학생들을 가르치는 알바를 하였다. 첫 월급이 100만 원이 채 안 되었는데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MP3 플레이어를 하나 샀다. 그냥 무작정 삼성전자 대리점에 들어가 2기가짜리 Yep 시리즈 중 하나를 사버렸다. 대충 18만 원 정도의 고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제품상자를 품고 집에 걸어왔던 기억이 있다.


음악을 좋아하던 나는 고등학교 때에는 생일선물로 받은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끼고 살았고, 입대 전까진 CD플레이어를 가방에 챙겨 음악을 들었다. 전역 후 산 MP3 역시 집 밖에 있을 때 항상 품에 지니고 다니기 시작했다. MP3 파일을 열심히 모으고, CD로 샀던 곡들은 컴퓨터로 파일 전환을 하였다. garbage란 이름의 폴더를 만들어 당시에 즐겨 듣던 곡들을 이것저것 넣어 두었다. 거기에 있는 곡을 들으며 내 마음속 쓰레기를 비우고자 하는 마음에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특히, 공부하거나 책을 읽을 때는 가사가 거의 없는 영화 OST를 즐겨 들었는데, 많은 영화음악을 들었다.


아주 최근까지도 겨울에는 ‘러브레터’와 여름에는 ‘바다가 들린다’의 OST를 끊임없이 들었다. 엔리오 모리꼬네와 반젤리스가 참여한 영화음악이나 한스짐머와 존 윌리엄스의 작업, 앨튼 존이나 스티비 원더 등이 참여한 다양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히사이시 조의 지브리 애니메이션과 웰컴투동막골, 류이치 사카모토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와 마지막 황제, 김형석의 엽기적인 그녀 같은 음악도 들었다. 대부분 대중적인 할리우드와 일본 영화나 애니메이션 음악이었다. 막 특이하고 깊이가 있거나 희소한 영화를 찾진 않았던 것 같다.


2010년 경부터는 음악의 비중을 줄이고 당시 유행하던 정치나 독서 관련 팟캐스트로 MP3를 채웠다. 달리기를 하면서 동시에 공부하기 위해 영어 듣기 파일이나 오디오북으로 책도 들었다. 파일을 다운로드하거나 변환하고, 좋아하는 곡과 방송을 선별하고, 폴더를 정리하고 업데이트하는 일이 꽤나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여행을 갈 때엔 여행을 위한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다. 내한 공연하는 밴드의 표를 예매했을 때는 그들의 셋 리스트를 미리 모아 들으며 노래를 외웠다. 부끄럽지만 때로는 내가 부른 노래나 연주한 기타와 드럼, 작업한 몇몇 곡도 들었다. 처음 작곡을 하고 미디작업을 했던 곡들을 밤이 늦도록 반복해서 들으며 키득키득 뿌듯해했다.


그러다 2014년 즈음이었을까. 드디어 7살에 접어든 플레이어가 맛이 가기 시작했다. 플레이 버튼이 들어가 잘 눌리지 않게 되고 본체 아랫부분이 벌어졌다. 그래도 1년 정도 테이프를 붙이고 엄지 손가락 끝으로 꾸역꾸역 플레이 버튼을 눌러가며 사용하였다. 이미 스트리밍 어플이 대세였는데도 나는 스마트폰보다 이 익숙한 MP3 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었다. 마음이 편안하다고 해야 하나. 외출할 때 신는 신발, 어깨에 메는 가방, 전철이나 버스에서 읽을 책, 귀에 꽂고 음악을 듣는 MP3 플레이어. 강박증이라고 한다면 과장일 테지만 언젠가부터 집이 아닌 공간에서 나에게 없으면 불안한, 꼭 지녀야 할 필수품이었다.


최후의 최후에 가서 장례를 치를 무렵 중고나라에서 대략 3만 원을 주고 4기가짜리 똑같은 놈을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새로 온 쌍둥이 역시도 어차피 연식이 오래된 녀석이었다. 그래도 꽤나 오랫동안 사용했다. 그 녀석도 작년에 드디어 수명이 다 해버렸다. 배터리를 가득 충전해서 플레이를 해도 얼마 못 가 꺼지기 시작했다.


이젠 동뿡이를 타고 출퇴근을 하니 귀에 이어폰을 꽂을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 외출할 때도 아이와 함께 일 때가 많으니 음악을 들을 여유도 없다. 정치, 경제, 책, 영화, 드라마 관련 팟캐스트는 유튜브로 대체되었다. 그래도 가끔, 차를 두고 버스-지하철-버스로 출근할 때나 다른 일로 혼자 외출할 때 왠지 모를 허전함이 있다.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 외부 세계와 차단된 방어막 속에서 나 혼자만의 아늑함이 있었다. 내가 느꼈던 안정감의 모든 것이 이 MP3 플레이어를 듣기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분명 적지 않은 공헌을 했을 것이다. MP3 플레이어가 없는 공허함은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정치적인 이야기는 아닌데, 성향상 나는 꽤나 보수적인 듯하다. 익숙함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변화를 기대하는 마음보다 두려워하는 마음이 좀 더 크다. 누군가 새로운 걸 제안하면 우선 방어적이 되어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어떤 언론인은 이런 보수성이 인간의 본능이라 설명하였다. 원시시대 어두운 풀숲이 흔들릴 때, 그 속에 굶주린 내 배를 채울 사냥감이 있다고 기대하는 것보다 내 목숨을 위협할 맹수가 있다 판단하는 게 생존에 유리했을 테니. 결국 내가 시대에 뒤떨어진 MP3 플레이어를 15년이 넘게 고집했던 이유도 본능, 그러니까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의 보수성 때문이었으리라.


때로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들, 잘 나가는 지인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질투심이 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그들이 잘못되길 바라는 못 된 마음을 먹기도 한다. 내가 그들처럼 새로운 일에 발을 담글 자신이 없기 때문에, 나의 약한 자아와 자격지심 때문에, 내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러나 김광석은 또 하루 멀어져 간다고 노래했다. 또 하나씩 잃어갔고 또 하나씩 잃어갈 거다. 이런 상실이 반복되면서 그 두려움도 조금씩 조금씩 무뎌지고 있다. 이젠 지하철에서 유선 이어폰으로 MP3 플레이어를 듣는 사람도 거의 없다 보니 새 MP3를 산다고 해도 나는 분명 부끄러워 꺼내지 못할 것이다. 귀에 아무것도 안 꽂고 그냥 지하철과 사람들의 소음을 들어도 괜찮다. 달리기를 하면서도 팟캐스트로 공부하기보단 풀벌레 소리와 내 숨소리, 다른 소음을 듣는 게 더 나아졌다. 이런 변화 또한 내가 조금은 더 성숙해져서 그런가 싶다. 성장이란 그래서, 내 안의 보수성과 싸우는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다.


물론 아직 MP3 플레이어는 이어폰이 둘둘 말린 채 책상 위에 있다. 하지만 아마 저 쌍둥이를 세 쌍둥이로 만들 일은, 이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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