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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Oct 11. 2023

타인의 성공을 질투하다.


대학 시절 싸이월드가 한창 유행일 때 일촌을 타 넘어 타 넘어 여러 지인의 개인 홈페이지를 염탐하기도 했다. 어느 날 한 고등학교 친구의 홈페이지를 보던 중에 내가 예전에 그림판으로 그렸던 그림을 발견했다. 당시 관심 있던 학교 선배를 상상하며 그렸던 커다란 눈과 눈썹 한 짝이었다. 명암도 넣고 속눈썹과 눈동자도 꼼꼼히 그렸는데, 그림판으로 그린 것 치고는 꽤 디테일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게 왜 여기에 있지? 잘 그렸다는 댓글이 한두 개 달려 있었다. 내가 그린 그림을 꼭 자신이 그린 것인 양 게시해 놓은 거 같았다. 기분이 상하진 않았지만 그 이유는 궁금했었다.


나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 친구는 꽤 큰 기업에 입사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성과급을 얼마 받았는지, 연말정산으로 얼마를 환급받았는지를 나에게 공유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부럽기도 했는데,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해서인지 답장을 소홀히 했다. 그가 결혼 후 몇 번의 이직과 이사를 거쳐 강남에 건물주가 되었단 소식도 본인으로부터 직접 들었다. 매매한 집의 현재 시세를 챗gpt에 물어본 사진을 공유하거나 자신이 투자한 코인의 투자 그래프를 보여주거나 했다. 내가 코인이나 주식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만 그 사진을 보니 대충 6,000만 원 정도를 투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자신이 녹음한 재즈 음원 발매라던가 책 출간 같은 것도 알렸고 바디프로필 사진도 공유했다.


굳이 왜 이런 걸 알리려고 할까? 애초에 자아가 두텁지 못하고 열등감도 꽤 심한 나는 그가 나에게 자신의 성공을 부러워하게 만들기 위해 연락하는 것이라 받아들였다. 자연스레 그와의 사이는 멀어졌다. 내가 먼저 연락하는 일도 없어졌고 간혹 그가 연락해 와도 시큰둥하게 답했다. 물론 당연히도 '성공'한 그에게도 나 같은 하찮은 지인은 그다지 아쉬울 것 없는 관계였으리라. 그의 의도가 어쨌든, 결과적으로 질투심이 올라오고 더불어 나 자신의 속 좁음에 환멸을 느끼게 되니 나는 자연히 그를 멀리 할 수밖에. 이런 식이라면 나보다 잘 난 사람, 혹은 나보다 잘 났다고 '내가 평가하는' 사람과는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생긴다. 그래도 내 마음가짐의 문제 만은 아닐 거라 스스로 다독이기도 한다. 그렇지 않은 인간관계도 있으니.


사실 그가 그런 소식을 나에게 전하려는 의도나 심리를 탐구할 필요도 없고 그다지 관심 갖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내가 왜 그들을 부러워하고 질투하게 되는지, 내 부정적인 감정은 왜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떠오르는지 그 이유 정도는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애초에 '성공'한다는 건 무얼 뜻하는 걸까? 나는 무엇을 부러워하는 것인가?


가장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우리는 스스로 원하는 결과를 얻었을 때 '성공했다'라고 표현한다. 축구공을 골대에 넣어 득점하거나, 시험에서 목표로 한 점수를 얻거나, 혹은 원했던 무언가를 얻었을 때, 주먹을 불끈 쥐며 성공했다고 말한다. 이런 경우 성공은 다분히 개인적인 차원의 성취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은 이런 개인의 개별 행위에다 그 행위에 대한 ‘평가,’ 혹은 더 크게 봐서 그의 인생에 대한 '평가'가 추가된 듯하다. 아니, 오히려 그 개인의 목표달성보다 평가 부분이 더 강조되고 있다. '성공했다'는 말은 '어떤 목표를 이루어 다른 이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구독자 수와 조회수가 높은 유튜버나 인플루언서, 잘 팔리는 책을 출간한 작가나 상을 받은 영화감독, 인기아이돌과 셀러브리티, 대기업 CEO 같은 이들이 자신들의 성취에 대해 좋은 평가를 받는 이들 중 일부일 것이다.


누군가의 목표 달성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즉 성공을 측정하는 데 있어 가장 본능적이고 날 것의 준거는 아마 ‘부의 축적‘이 아닐까? 나는 동의하고 싶진 않지만, 나 스스로도, 다른 사람들도, 혹은 미디어에서도 ‘돈’이란 준거로 누군가의 성공과 실패를 평가하고 있는 듯하다. 너무 1차원적이고 유아적인 생각이라 할 수도 있지만, 어떤 역사가는 거의 대부분의 독재자가 최후에 권력을 이용해 부를 축적하려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하니 아주 말이 안 되는 생각은 아닐 거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그들을 부러워하고 질투했던 이유는 그들의 돈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다만, 변명을 하자면, 그렇다고 하여 내가 부동산이나 주식에 뛰어들거나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부를 축적하려 노력하고 시도했느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질투심, 배 아픔은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배어 나와 나를 힘들게 하는데 그걸 해결하려는 의지나 노력은 같이 따라 나오지 않다니 참 골치 아픈 일인가. 혹시 내가 모르는 다른 나는 부의 축적을 그다지 괘념치 않는 건 아닐까? 아니면 단순히 그런 일에 노력과 시간을 소비하는 게 귀찮아서 그런가?


혹은, ‘성공 = 부의 축적’이란 공식을 거부하고자 하는 나의 무의식 때문일지도 모른다. 유시민 작가는 꽤 오래전에 ‘경제학 카페’라는 교양서를 썼는데, 그 책에서 그는 행복에 관한 단순한 공식 하나를 설명했다. ‘행복 = 욕망 / 부‘라고. 문제는 분모인 ’부,’ 즉 돈을 아무리 쏟아붓는다고 하여도 분자인 인간의 ‘욕망’은 무한대이기 때문에 ‘행복‘의 값은 커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행복‘을 키우는 유일한 방법은 ’욕망‘을 줄이는 일이라고 설명하였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나도 서울 변두리에라도 작은 아파트 한 채 있길 바란다. 내 아내와 아이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따뜻하게 생활하길 바란다. 아주 가끔은 큰 마음먹고 해외로 가족여행을 가도, 누군가 아파 병원비를 지원할 때도 덜 부담스러웠으면 좋겠다. 딱 그 정도면 되지 않을까? 그들처럼 건물주도, 주식이나 코인 대박으로 값비싸고 연비 나쁜 시끄러운 스포츠카에 앉고 싶다는 생각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 큰돈을 받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 강연하거나 주목받는 건 딱 질색이다. 내 욕망은 딱 그 정도이길 바라고, 그 정도인 거 같다.


앞으로도 그 친구나 다른 잘 나가는 지인의 소식을 듣고 욱하고 질투심이 올라오긴 할 거다.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틀림없다. 순간 떠오르는, 제어할 수 없는 부정적 감정을 막을 수는 없을테니. 내가 해탈을 하지 않는 이상에는. 그럴 때면 방과 후 텅 빈 학교 밴드반에서 막 드럼을 치고, 저녁에 바람을 쐬며 달리기를 할 거다. 혹은 아내와 뒷담화를 하거나 아이랑 산책을 해야겠다. 그게 파문이 인 내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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