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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Oct 25. 2023

턱걸이로 얻은 고질병

내 몸뚱이 하나의 무거움.


약 10년 전 처음 운동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의 기억이다. 깜깜해질 무렵 여느 때처럼 퇴근 후 집 근처 공원에서 팔 굽혀 펴기와 윗몸일으키기, 평행봉 운동 등을 찔끔찔끔하고 있었다. 지쳐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놀라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운동하던 평행봉 바로 옆에서 파란색 반팔티를 입은 누군가 중력을 거스르는 듯한 자세로 철봉에 매달려 있었다. 한때 기둥에 매달려 몸을 가로로 세우는 가로본능이란 핸드폰 광고가 있었다. 그와 비슷하지만 오히려 일반적인 턱걸이 방식으로 철봉을 두 팔로 잡고 하늘을 바라보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로로 죽 편 자세로 버티고 있었다. 그는 한 동안 그 자세로 버티다 기계처럼 부드럽게 다리를 내려 철봉에 바르게 매달린 상태가 되었다. 잠시 숨을 고르더니 바로 풀업을 10개 정도를 한 듯했다.


마치 서커스 같았다. 체조를 전공으로 한 사람인가? 그는 날렵한 몸매에 팔이 그렇게 굵지도 않았다. 잠시 쉰 후에 다음 세트를 이어 나갔다. 또 다시 가로로 몸을 뉘이고(?) 버티다 원래대로 돌아와 가볍게 풀업을 하였다. 나는 놀라움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팔만 철봉에 걸쳐있을 뿐 하늘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가 떠나고 빈 철봉에 매달려 보았다. 허리를 튕겨 턱걸이 하나에 도전했다. 팔꿈치를 굽히지도 못하였다. 끙끙. 두세 번 시도했으나 한 번을 성공하지 못했다. 손아귀 힘이 부족해서인지 10초도 채우지 못하고 떨어졌다. 이번엔 두 손을 몸 쪽 방향으로 하여 철봉에 매달렸다. 양팔을 가깝게 잡은 상태로 겨우 머리를 봉 위로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철퍼덕. 당시 80kg에 육박하던 내 몸뚱이를 버티기에 근육이 부족한 내 두 팔과 등은 나약하기 이를 데 없었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Front_lever#/media/File:John_Gill_-_Front_Lever_-_1962.JPG


그때 나는 맨몸운동, 그중에서도 턱걸이의 매력과 어려움을 동시에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내가 보았던 자세는 프런트레버(front lever)라고 불리는 아주 아주 난이도가 높은 턱걸이 동작이었다. 보통 손바닥을 바깥쪽, 즉 앞으로 하여 매달린 후에 등과 팔의 힘으로 몸을 잡아당기는 턱걸이를 풀업(pull-up)이라고 한다. 그보다는 조금 쉬운 난이도로, 손바닥을 안쪽, 즉 몸 쪽으로 하여 매달린 후에 몸을 당기는 턱걸이를 친업(chin-up)이라고 부른다. 이 풀업과 친업을 자유자재로 하는 사람들 중에 코어 힘이 충분하다면 프런트레버라던지 머슬업(muscle-up: 매달린 상태에서 한 번에 허리 부분 정도까지 몸을 철봉 위로 올리는 턱걸이) 같은 높은 난이도의 동작에 도전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팔로 한다고 오해하지만 턱걸이에서 가장 중요한 근육은 등근육과 전완근이다. 허리나 등을 튕기지 않고 정지한 상태로 철봉에 매달려 어깨를 내린 채 몸을 당기는 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데... 시작부터 자신의 체중을 감당해야 하는 이 운동은 그래서, 입문 난이도가 굉장히 높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당연히 한 개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철봉에 매달리는 것부터가 힘들었다. 10초도 되지 않아 팔과 손바닥이 너무 아파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처음 프런트레버를 본 그 기억을 지울 수 없었다.


어찌어찌 매달리고, 버티고, 보조밴드를 이용하고 하다 보니 더디지만 조금씩 늘긴 했다. 새 학교로 옮기고 건물 사이 구석에 철봉이 있어 공강 시간에 편하게 매달릴 수 있었다. 그즈음에는 컨디션이 좋을 때 8개 정도 풀업이 가능해졌다. 물론 제대로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스스로 내 자세를 모니터 한 적도 없고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코치를 받은 적도 없었으니. 그러나 개수가 늘수록, 철봉에 좀 더 오래 버티게 될수록, 어느 때고 손에 잡힐 만한 것이 보이면 매달려보고 싶은 충동이 마구마구 샘솟았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나는 고질병을 얻고 말았다.


지금 이맘때의 가을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프런트레버를 하고 싶던 나는 그 이전부터도 무리하게 매달려 몸을 들어 올리는 시도를 했었다. 분명 그때 이미 어깨와 등은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건 무리라고. 그날도 별 준비운동 없이 어깨로 버티며 허리를 핀 상태로 다리를 들어 올렸다. 갑자기 오른쪽 견갑골 안쪽에 큰 통증이 몰려왔다. 어우야. 엄살은 심하지만 판단능력은 떨어지는 나도 뭔가 좋지 않음을 느꼈다. 교무실로 돌아와 의자에 앉아 몸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어도 통증은 가시지 않았다.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여러 번 받고 약을 좀 먹었다. 보름이 지날 무렵 겨우 통증은 사라졌다.


출처: https://www.amc.seoul.kr/asan/mobile/healthinfo/body/bodyDetail.do?bodyId=5&partId=B000018


그때 겪은 통증은 철봉을 쉴 때도, 턱걸이를 하는 중에도 분기별로 다시 찾아왔다. 2018년 가을쯤에는 몸을 심하게 쓴 적이 없는데도 거대한 통증으로 나타났다. 어느 주말 늦은 아침 몸이 찌뿌둥해 침대에서 스트레칭을 하던 중 갑자기 그 부위가 아파왔다. MRI를 찍고 척추주사를 두 차례나 맞은 후에야 겨우 잦아들었다. 당시에 논문을 작성하는 동시에 교수님의 연구에 보조로 참여하고 있어 스트레스가 꽤나 쌓여 있었나 보다. 육체적인 움직임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역시도 그 고질병의 방아쇠가 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평일에 달리기를 하고 주말에 캠핑에 축제에 쏘다니다 보니 올해의 두 번째 통증이 찾아왔다. 계기는 지난주 후반 수업 때 쓰는 태블릿 PC 속 데이터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일이었다. 학교 시스템 관리하는 분이 실수로 학생용 태블릿뿐만 아니라 교사용 것까지 냅다 초기화를 시켜버린 것이다. 어우. 뒷목이 당겨왔고 저녁부터 다시 등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꾸역꾸역 참으며 주말을 버티다 어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곧은 일 자 목이었다. 이미 알고 있었으나 새삼 낯설고 안타까운 직선이었다. 등의 통증은 기분 나쁘게 계속되고 그 덕에 더 민감해지고, 아내에게 짜증을 내고, 아이의 생떼도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아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집 [깊이에의 강요]에 있는 ’장인 뫼사르의 유언‘은 자기가 살고 있는 땅에서 발견한 조개를 보고 거기에 매몰되어 세상이 조개화, 즉 석화되어 간다는 생각에 점점 사로잡히다 결국 파멸하는 한 보석세공사에 대한 이야기다. 고질병이 도지면 나는 장인 뫼사르의 심정을 일정 부분 이해하게 된다. 나는 꽤나 통증에 취약한 부류의 인간인데, 턱걸이로 인해 주기적으로 겪는 통증은 스스로를 부정적인 생각에 함몰되게 만드는 것 같다. 젠장. 왜 나는 이리 아픈 거야. 도대체 날개뼈에 뭐가 끼었길래 그러는 거야. 왜 나는 어릴 때부터 허리와 목을 곧게 편 자세를 하지 못했을까. 좀 빨리 좀 나아라.


고통이 심해지면 생각은 더 치우친다. 죽을 만큼 아픈 고통일리는 없다. CRPS라던가 요로결석, 혹은 출산의 고통에 대해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이 있다. 내가 겪는 통증은 단순한 불편함일 뿐이다. 잠깐 보름 정도 오는 불편함에 때로는 삶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면 너무 나약한 건가? 지금의 이 고통도 곧 좋아질 것이지만 앞으로도 가끔씩은 아플 예정이다. 현실적으로 평소 자세와 생활습관을 바꿀 필요도 있겠지만, 참… 실천은 어렵다. 턱걸이를 관둘 생각도 없다. 프런트레버는 불가능할지라도 풀업은 꾸준히 해보고 싶다. 모든 이는 자기만의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에세이를 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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