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글쓰기.
이영도 작가님이 예전에 어떤 책의 책날개에 자신을 ‘남도의 타자(打者)‘로 소개했었다. ’남도‘는 경상남도를 의미하고 ’타자‘는 키보드를 치는 자라는 뜻이다. 그가 컴퓨터로 글을 쓰고 피씨통신으로 ‘드래곤 라자’ 연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타자와 핑거러(fingerer)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 것 같다. 보통은 키보드로 문서작업을 많이 하지만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나서부턴 손가락 한 두 개로 글을 쓰는 경우가 늘었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도 두 엄지손가락을 이용하고 있다. 실제 종이책을 읽을 때와 화면을 읽을 때 이해도의 차이가 크다는데. 아마 글쓰기에서도, 종이에 쓸 때와, 키보드로 칠 때, 그리고 손가락으로 터치할 때, 차이가 있지 않을까. 근육 움직임의 차이에 따른 생각이나 감각의 차이 같은 거?
꽤 오랜 기간 글을 쓰지 못했다. 올해 초 언젠가 몰아친 일을 처리하느라 글쓰기를 잠깐 쉬게 된 게 지금까지 왔다. 그건 핑계이고 사실은 글을 연재하며 점점 커져가는 수치심과 질투심이 더 큰 원인이었다. 나의 질투는 여러 사람에게로, 때로는 불특정 다수에게로 향했고, 당시 나는 그걸 감당하기 힘들었다. 속으로 매번 외쳤다. “왜 나만!”
쓰고자 하는 욕망은 끊임없었다. 출근길에 항상 나를 따라붙는 라이더 아주머니/할머니를 보며 모든 사람은 누군가에게 빌런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소설을 구상하기도 했다. 인간의 의식은 어디에서 왔을까에 관한 의문을 탐구(?)하는 글도 구상했다. 조현병에 관한 소설도 생각해 보았다. 교육만능주의에 관한 깊이 있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양 엄지손가락은 멈춰있었다. 때로 업무와 관련하여 키보드를 쳐 문장을 완성해야 하는 경우에도 많이 힘겨웠다. 나의 문장은 길어졌고, 이상한 복문과 중문이 너덜너덜 걸쳐있었다.
아주 오래전 임용시험에 떨어진 어느 날, 함께 공부하다 그 해 합격했던 한 후배의 합격수기를 읽고 나는 화가 났다. “간절하면 합격합니다.”로 수기가 끝났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간절하지 않았단 말인가.
내가 좋은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도 간절함이 부족해서일까. 글을 쓰지 못하는 고통 때문인지 최근 몇 달간은 독서에 더 매달렸던 것 같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우연히도 글, 서사에 관한 글을 꽤나 읽게 되었다. 끌어당기는 글은 인간의 뇌와 본능 같은 것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 기억과 의식 같은 것도 모두 서사로 이루어져 있다는 내용도. 모두 흥미로웠다. 그럴수록 더 쓰고 싶었다.
어그러졌던 삶의 궤도가 제자리를 찾아오면서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다른 플랫폼도 기웃거리다가 그래도 가장 익숙한 브런치를 다시 열었다. 자연스럽게 다시 핑거링(?)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직은 어색하다. 많이 어색하다.
지루한 장마가 끝나지 않는다. 습하고 끈적한 피부가 짜증 나기도 하지만. 나는 방학을 시작했고 그 기념으로 방학 동안 아이의 어린이집 등하원과 아내의 출퇴근을 책임지게 되었다. 소소한 즐거움이다.
누군가가 보기엔 내 간절함이 부족하고, 정말로 그것이 내가 좋은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일 수도 있다. 다짐 같은 것으로 마무리하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문장을 완성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