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플랫폼 사용에 대한 푸념.
영상 온라인 플랫폼(ㅇㅌㅂ)을 자주 본다. 때로는 좀 줄여야 하는데라고 고민할 만큼 심하게 많이 본다. 의미 없이 시간을 죽이며, 스스로 환멸감을 느끼면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과거 숏폼이 없을 땐 썸네일과 제목만 보며 끝없이 스크롤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때는 나름 선별해서 콘텐츠를 소비했다 여겨진다. 그러나 숏폼을 보기 시작하면서 나의 선택권도 거진 사라졌다. 재미가 있건 재미가 없건, 의미가 있건 의미가 없건 그냥 스크롤을 계속 내리며 화면을 바꾼다. 수없이 많은 비슷한 영상을 그냥 본다. 때로는 그 짧은 영상도 감질나서 다 보지 못하고 다음으로 넘긴다. 그러다 수 시간이 지나 정신을 차리면 불편하고 뻑뻑한 눈과 미친듯한 자기혐오만이 남는다. 뭐가 좋다고 이러고 있나. 숏폼을 보이지 않게 하는 설정은 없나 찾아보고 검색한 적도 있다. 없더라.
<소셜 딜레마> 같은 다큐나 <도둑맞은 집중력>, <The Shallow> 같은 책을 읽으며 단순히 내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이런 대부분 쓸데없는 콘텐츠로 시간을 죽이는 게, 나 스스로가 부족하고, 무력하고, 약하고, 옳지 못하기 때문만은 아니라고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오히려 나의 본성을 잘 알고 이를 잘 활용하여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려는 악독한 기업 탓이 크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수천수만 명의 엄청나게 똑똑하고 공부 많이 한 엔지니어와 학자들이 모여 어떻게 하면 한 인간을 온라인 플랫폼에 더 오랜 시간 머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연구했으니. 나 같은 범부는 이미 패배한 채로 경기장에 들어서는 거다. 이들은 과도한 온라인 플랫폼 활용이 개인에게 가져다주는 심리적, 육체적 부작용 따위는 그다지 고려하지 않다. 그런 건 하찮은 거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이다. 돈이다. 그들에게 벌어다 주는 100원, 또는 1달러가 더 중요한 거다.
더욱 무서운 점은 보통 이들이 사용자(user)라 부르는 우리는 이들의 진짜 고객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작은 배터리, 아니면 일꾼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이 만든 플랫폼을 쓰면서 남기는 우리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이들의 알고리듬을 더 강하게, 더 효율적으로 만들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도 수익을 창조할 수도 있는 정보, 데이터가 된다.
이들의 진짜 고객은 광고주들이다. 한 콘텐츠에서 얼마나 많은 광고를 얼마나 오랜 시간 노출시키느냐가, 그래서 이들의 화두다. 연결과 공생을, 상생과 환경보호를, 연대와 소통을 말하는 수많은 화려한 광고들. 이들 중 진짜는 거의 없다.
당연히 좋은 콘텐츠도 많다. 10분짜리 명상 영상을 틀어놓고 명상하기도 한다. 고요한 배경음악으로 틀어놓고 집안일을 하고 샤워를 하고 아이와 논다. 팟캐스트 등에서는 좋은 팁도 얻는다. 따뜻한 일화나 위로를 주는 말들을 들으며 감동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갑자기 등장하는 광고 하나에 이 긍정적인 분위기는 순식간에 파괴된다.
최근 광고가 많아졌음을 분명히 느끼고 있다. 애초에 광고를 안 받는 콘텐츠들도 있는 걸로 아는데, 그런 곳에도 광고가 붙는다. 화면 아래에 광고가 뜬다. 영상 화면 자체에도 광고를 띄운다. 숏폼을 넘길 때 광고의 주기가 짧아진다. 조금만 잘못 터치하면 바로 광고 화면으로 넘어가 버리기도 한다. 심지어 영상을 일시정지 해도 광고가 뜬다!
유료 버전을 쓰면 되는 거 아니냐 타박하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 우리 모두가 유로 구독을 통해 그들의 배를 더 빵빵하게 만들면 된다. 그러다 그들이 구독료를 올리거나 멤버십 조건을 변경하면 그 또한 받아들이면 된다. 아니면 유료 구독자라도 광고에 노출시킬 수 있는 또 다른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는데, 그 또한 받아들이면 된다. 똑똑한 자들이 수도 없이 많을 테니 그런 것쯤은 식은 죽 먹기이다. irreversible 하니까. 결국 유료 구독을 하라는 지적은 웃길 뿐이다.
경제에 대해 잘 모른다마는 어쭙잖게 생각해 본다. 기업의 제1 목적은 이윤 창출이라고 한다. 그러나 결국 기업을 구성하고 움직이는 것은 사회에 속한 개개인이다. 그들이 벌어들인 수익은 그들이 소비함으로써, 또는 기업과 그 구성원들이 내는 세금으로 사회에 환원된다. 결국 기업도 사회의 일부분이다.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한에서 이윤 창출을 목표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인간의 심리적 건강을 해치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건 온당치 않다.
우리는 이 효율 추구를 위해 어디까지 더 희생해야만 하는 걸까. 실리콘벨리의 뛰어난 연구자들은 자기 자녀들의 스마트폰 활용을 엄격히 제한한다고 한다. 웃기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