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 Christmas Mr. Lawrence
효율성의 추구를 벗어나기 위한 여정으로 몇몇 책들을 찔끔찔끔 읽고 있다. 그중 불편함을 감수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책에서 눈에 들어온 문장이 있었다.
죽음은 단순히 병원과 장례식장과 보험과 돈거래의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교육적 의미가 필요합니다. (편안함의 습격, P.303)
그 책에서는 부탄 사람들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죽음에 관해 사고하고 죽음을 목도하면서,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배운다. <노르웨이의 숲>에서 주인공이 깨달았던 단순한 진실 "죽음은 삶의 반대편 극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인식이 그들의 내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하여 이들은 하루하루 살아있음에 감사할 수 있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고, 결국 행복할 수 있다. 부탄의 경제지수는 낮지만 행복지수는 높다고 한다.
부탄이란 나라가 궁금해 유튜브에서 검색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간편한 툴을 이용해 재생산한 뻔한 콘텐츠들이 넘쳤다. 부탄 여행 영상이나 책에서 나온 것과 같은 행복에 대한 영상, 현재 부탄의 행복지수가 낮아진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것들도 있었다. 스크롤링이 지루해질 때쯤, 나는 방의 불을 끄고 나 스스로는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해졌다.
평소에도 자신의 죽음에 관해, 혹은 가족의 죽음에 관해 자주 상상하고 불안해하는 입장에서, 이 책을 읽고 위안을 얻었다. 죽음에 관한 생각을 자주 한다는 사실이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다고 하니. 그와 더불어 죽음 이후 남은 사람들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 부모님이 떠나신 후, 남겨질 나에 관해 생각했다. 또, 나와 내 아내가 떠나간 후, 남겨질 우리 딸에 관해 생각했다.
나는 죽음이 두렵다. 죽는 과정에서 겪게 될 고통도 두렵고, 혹은 그 고통이 짧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도 두렵다. 하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건 남겨진 사람들이 느낄 상실이다. 빈자리는 언제나 티가 난다. 군생활 중에 전역자가 있는 날 오전에는 항상 '석별의 정(auld lang syne)'을 연주하며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가 멀리 언덕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가 생전(?) 가장 좋아했던 행진곡으로 배웅했다. 행진곡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아침 공기를 뚫고 남은 우리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연주실로 가거나 훈련을 받았다.
우주에서 봤을 때, 한 개인의 죽음은 찰나의 순간을 부유하는 먼지와 다르지 않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나의 죽음은 아무 의미도 없다. 내일 죽을지도 모르고, 앞으로 40~50년은 너끈히 살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1만 2천 년 인류 문명의 약 480세대 중 1세대에 일어난, 티클같은 사건일 뿐이다. 그러나 나와 내 아내가 떠나간 후 남겨진 작은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는 내게 너무나도 커다란 의미였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버스 밖으로 어린 금명이를 바라보는 관식의 표정이 이해가 된달까.
죽음에 관해 생각한다고 내가 더 행복하거나 알찬 삶을 살지는 잘 모르겠다. 책의 내용은 그냥 연구 데이터나 수치일 뿐 내 행복과 삶의 의미를 높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저 위안, 그것만으로 족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막 자정을 지나며 12월 25일이 되었다. 식탁 위에 빨간 양말이 하나 걸려 있다. 아내와 아이는 곤히 잠들어 있다. 내일 아침 산타 할아버지가 주신 선물을 받고 기뻐했으면 좋겠다. 그 모습을 눈에 담을 나와 아내도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