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6년쯤 전, 대학원에서 인지(cognition)라던가 언어학 같은 골치 아프고 무미건조한 수업들 속에서 유일하게 감성을 건드려준 수업이 있었다. 미국문학 속에서의 자연주의에 관한 깊이 있는 수업이었고 이 부족한 글은 그때 썼던 몇 안 되는 서평 중 하나이다.
리처드 루브가 쓴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을 읽는 내내, 유년시절 친구들과 동네에서 놀던 추억이 생각났고 그와 함께 TV에서 본 많은 할리우드 영화들이 떠올랐다. 특히, “굿바이 마이프렌드(The Cure)”라는 영화에서 두 친구가 강가에서 약초를 찾고 미시시피 강을 뗏목으로 여행하는 장면과 로빈윌리엄스가 주연한 “잭(Jack)"이란 영화에서 아이들이 지은 오두막이 무너지는 장면 등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그 90년대 영화 속 미국의 아이들은 이 책에서 그리는 바와 같이 자연과 함께 유년기를 보냈다. 또한, 완전히 똑같진 않지만 나 역시도 비밀기지를 만들고 비석 치기를 하고 개구리를 잡으며 자연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냈다.
이 책은 2000년대가 도래하면서 이전과 너무나도 달라진 아이들과 자연의 관계를 진단하고 그 문제점을 지적할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나름의 대안까지도 제시한다. 작가는 자연이 아이들의 성장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전제한다. 그 예로 가드너의 다중지능이론에 자연탐구지능이 중요한 요소로 포함된 점을 들 수 있다. 또한, 자연과의 접촉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를 완화시키거나 창의력과 상상력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들도 언급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시각과 청각에 편중되어 다른 감각들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강요받는 것이 현대인이 가지는 스트레스의 원인이며, 자연은 모든 감각을 깨우고 그러한 스트레스를 줄여 삶을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환경오염이 심각해지고 사회문화와 사람들의 인식이 급격히 변화하면서 아이들은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작가는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행동과 정신적 결함이 자연과 멀어진 상태, 즉 ‘자연결핍장애’에 의해 생겨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 원인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첫째로 아이들이 자연에서 뛰어놀 시간과 공간이 사라졌다. 슈퍼차일드 신드롬과 같이 부모는 아이들에게 학업 성취와 사회적 성공을 강요한다. 두 번째 원인은 미디어와 통계에 의해 과장되고 조작된 정보로 인해 자연에 대해 생겨난 막연한 두려움이다. 낯선 사람과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아이들이 자연에 다가가는 것을 방해하게 되었다. 세 번째로 교육과정 상에 자연에 대한 학문이 사라지고 실용적인 학문으로 대체되었다. 과학과 발전에 대한 맹목적 신념으로 인해 자연사는 불필요한 학문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환경파괴에 의해 자연에 대한 애착심이 사라졌다.
작가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이 모든 원인을 관통하는 하나의 사실은, 바로 어른들이 만든 사회가 아이들이 앓는 ‘자연결핍장애’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한편으로는 과거에 자연과 함께한 유년시절을 추억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후기산업사회를 발전시켜 현대 아이들이 ‘자연결핍장애’를 가지게 만든 기성세대의 모순을 지적한다. 또한, 낚시와 사냥을 반대하는 운동을 예로 들며, 환경론자들이 아이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환경 보전만을 극단적으로 주장한다는 모순점도 꼬집고 있다. 이와 더불어, 아이들을 보호하려고 어른들이 제정한 법과 규제들이 오히려 아이들을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는 사실도 함께 지적하고 있다.
문제를 진단할 때와 마찬가지로 작가는 다양한 측면에서 대안을 내놓고 있다. 첫째, 가정을 꾸려나가고 아이들을 키우는 어른들의 개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들의 마음속에 심어진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무지를 없애기 위해 더 많이 자연을 찾고 경험하게 해줘야 한다. 아이들의 모험심과 호기심을 자극하여 자연 속에서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오감을 발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낚시와 사냥, 자연 채집과 야생 동물 관찰 등을 들고 있다.
두 번째로 사회적, 교육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선, 교육에 있어서 생태학교와 자연사학의 부활 등을 통해 자연을 중심으로 한 교육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초등교육에서 고등교육까지 미국의 다양한 생태학교 모델들을 소개하고 생태중심교육이 실제 실행되는 현장을 보여주며 작가는 이러한 교육이 국가적 차원에서 실현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운동장 서식지화 운동, 학교의 숲 가꾸기 운동 등을 적용하고 실행할 때 필요한 정치적, 제도적 방안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 특히나 자연캠프활동의 유용함을 강조하며 다양한 활동을 소개한다. 이와 더불어 자연에서의 활동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활동을 장려하는 법률을 제정해야 함을 강조한다.
셋째로 작가는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새로운 생태도시를 만들 것을 제안하고 있다. 도시의 계획 단계에서 자연과의 상생을 목적으로 한 설계가 필요함을 힘주어 이야기하며 랜스케이프 어버니즘(Landscape Urbanism), 뉴 어버니즘(New Urbanism), 그리고 서유럽의 그린 어버니즘(Green Urbanism)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스위스 취리히나 네덜란드 델프트 시민들은 도시의 4분의 1을 숲으로 구성하거나 자전거 길과 고속도로 위의 생태 옥상을 만드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 활동을 소개하며 작가는 여러 나라에서 이상적인 그린 어버니즘 도시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렇듯, 작가는 자연과 아이들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개인과 사회가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고민하였다. 결국, 아이들을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원인이 어른들에게 있듯이 다시 아이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방법도 어른들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대안 제시에서 눈여겨볼 또 다른 부분은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을 위한 현장 안내” 부분이다. 자연사랑운동을 확산시키고 참여할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실질적인 실천방안을 제안하며, 다양한 토론 거리를 제공한다. 그리하여 작가는 자신의 주장이 주장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읽는 독자들과 소통하고 변화해 나갈 동기를 부여하는 지점까지 가려 노력한다.
이 책을 읽으며 들었던 의문은 “한국에서의 상황은 어떠하며, 작가가 제시한 대안은 과연 우리나라에서 실천 가능한가?”였다. 나의 짧은 견해로는 한국의 아이들은 미국의 아이들보다 좀 더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으며 작가의 대안을 적용하는 것도 조금 더 어려워 보인다. 우선, 한국의 아이들은 자연을 바라볼 여지를 거의 가지지 못하고 있다. 급격한 경제발전과 완만한 사회인식 변화의 차이로 인해 성공에 대한 부모와 사회의 맹목적인 강요가 더 심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장과 개발 위주의 경제관념, 친환경재생에너지에 대한 기업의 부족한 관심과 투자 등과 같이 아직도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 여기는 인식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더욱이 자연과 아이들의 관계에 대한 사회적 담론 역시 거의 전무하다. 그로 인해, 아이들은 자연을 접할 기회를 좀처럼 가질 수 없게 되어 더 강한 ‘자연결핍장애’를 겪고 있다. 하지만 꼭 거대한 사회와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대학생이 된 아들과 뉴욕 센트럴파크를 걸을 때, 낚시하는 사람을 보고 과거의 추억을 나눈 것처럼 어른들이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아이들을 데리고 한 번 더 자연을 찾으려는 노력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런 작은 추억을 아이들에게 하나씩 심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