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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스댄스댄스 Oct 04. 2023

마왕 Monocrom 쾌변독설 신해철 1

내가 가장 사랑했던 뮤지션


이 글은 신해철이라는 뮤지션의 일대기를 다루거나 그의 음악에 관해 심도 있게 비평하는 글이 아닙니다. 그저 지금까지 제 인생의 선에 굵은 점을 여러 개 남겼던 인물에 대해 추억하는 가벼운 글 정도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그에 관해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1.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가 누군지를 묻는다면 거리낌 없이 ‘신해철’이라고 답할 것이다.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그 답은 바뀌지 않을 듯하다. 단순히 그가 일찍 세상을 떠 실망할 일이 더는 생기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춘기 시절엔 그의 음악이 담고 있던 메시지에 위로를 받았고, 좀 더 머리가 굵어진 후에는 음악만큼이나 그의 삶, 태도, 위트 넘치고 남보다 한 걸음 앞에 서있던 생각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국민학교 시절 시장에서 어머니께서 사주셨던 최신가요 테이프에서 ‘질주’라는 곡으로 처음 신해철을 만났다. 독특하고 빠른 테크노 비트에 암울한 저음의 멜로디가 귀에 끌렸지만, 그때는 그게 누구의 무슨 곡인지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대학생이 되고 그와 윤상이 함께 작업한 ‘노댄스’ 앨범에서 이 곡을 다시 만나게 되며 그 기억을 떠올렸고 첫 만남이었다 깨달았다.


그를 제대로 알게 된 때는 중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한 친구에게서 파란색의 믹스테이프를 선물 받았다. 요즘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겐 낯설겠지만, 그때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곡들을 담은 믹스테이프를 공유하는 일이 유행이었다. 그 테이프에는 윤상의 ‘악몽,‘ 알라딘 ost 중 ‘A Whole New World,’ 임재범과 박정현의 ‘사랑보다 깊은 상처’ 같은 곡들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넥스트를 해체한 후, 처음 발매한 Crom’s Techno Works에 수록된 리메이크곡 ‘Letter to Myself(나에게 쓰는 편지)’도 있었다. 사각사각 울리는 연필소리와 함께 차갑게 울리는 디지털 피아노 멜로디와 저음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곡은 속도감 있는 비트와 초라한 자기 스스로를 보듬어주는 가사로 사춘기 소년의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특히,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 말한다“ 같은 중간에 빠른 랩 가사는 철학은 1도 모르던 내가 감탄하게 만들 만큼 지적인 매력을 풀풀 풍겼다.


Letter to Myself 출처 유튜브


테이프 필름이 닳도록 많이 듣다가 결국 얼마 후 그 앨범을 사버렸다. 첫 번째 테이프에는 ‘50년 후의 내 모습‘이라던가 ’월광,‘ ‘후회란 말은 내게 없는 것’ 같이 자신의 예전 발표 넘버를 테크노로 리메이크한 곡으로 채워져 있었고 두 번째 테이프에는 ’It’s Alright’과 ‘일상으로의 초대,‘ 14분이 넘는 대곡인 ‘매미의 꿈’이 담겨 있었다.


역시 그땐 몰랐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앨범에는-다른 앨범도 그렇겠지만- 음향적으로 굉장히 실험적인 곡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It’s Alright’의 경우 초반에 베이스 음이 굉장히 약한데, 대신 신해철이 특유의 초저음으로 읊듯이 노래를 부르며 베이스 파트를 채워준다. 이는, ‘혼자 모든 걸 짊어지려 하지 말아요, 가끔씩 내게 기대도 난 무겁지 않아‘의 가사처럼 곡을 듣는 이들이 그에게 기댈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일상으로의 초대‘에서는 팬이 오른쪽, 왼쪽으로 왔다 갔다 들리게 믹싱을 하여 특이한 공간감을 음악 속에 만들었고, ’매미의 꿈‘은 차갑게 쇠가 갈리는 듯한 독특한 샘플링으로 실제 겨울에 태어난 매미 소리를 연상시켰다. 아마 ‘매미의 꿈’ 초반 부분의 허밍은 황병기 선생의 ‘미궁’에 비견될만한 공포의 극치를 보여주는 건 아닐까?


그 후, 넥스트 3집 The World 앨범을 사며 나는 본격적으로 록음악에 입문하게 되었다. 앨범을 사자마자 처음부터 끝까지 전곡을 들었는데, 아직 어린 나는 제목만큼이나 가장 긍정적이고 소프트한 곡인 ‘Hope‘에 마음이 끌렸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쓴맛, 단맛을 경험하면서 변하는 걸까? 같은 앨범을 들으면서도 한창 음악에 빠져있던 20-30대 때에는 화려한 연주의 ‘세계의 문’이나 ‘Komerican Blues’ 같은 곡이 끌렸다. 그리고 30대 후반부터는 여운 가득한 ‘Question’이 끌렸다가 아이를 낳고 나선 ’아가에게‘를 많이 들었다. 그의 인터뷰집인 ’쾌변독설’에서 신해철은 이를 멋지게 설명했다.


어렸을 때는 도미솔로 이루어져 있는 단순한 음악들이나 아이돌의 음악을 좋아하지만, 나이가 들면 불협화음이 주는 인생의 쓴 맛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인생하고 똑같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블루스를 알게 되고, 재즈를 알게 되고, 록을 듣게 되는 거고 그런 건데요.(신해철, 지승호, 2008, 53쪽)


넥스트 1집 Home, 2집 Being, 4집 Lazenca Save us, 솔로 2집 Myself, Home Made Cookies 등을 사 모으며 그의 음악, 특히 사회비판적인 가사를 탐닉했다. 나는 겉으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장난만 치는, 그러나 말은 꽤 잘 듣는 아이였다. 큰 사춘기의 앓음 없이 지낸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그가 쓴 가사에서 처럼 세상에 대한 삐딱하고 냉소적인 시각이 타오르고 있었다.


부모가 정해 놓은 길을 선생이 가르치는 대로 친구들과 경쟁하며 걷는다.(‘껍질의 파괴’ 중)

세상에 속한 모든 일은 너 자신을 믿는데서 시작하는 거야,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완전히 바보 같은 일일 뿐이야.(‘The Hero’ 중)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아니 우리에게 던져 준 세상
패자가 승자보다 훨씬 많은
반은 미리 이미 정해놓은 게임
 낙오의 공포 끝없는 경쟁
이유 없는 학습, 튀지 말란 경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박히도록
그들이 대가로 약속한 빛나는 기득권의 티켓
중산층이란 안도감 이만하면 됐다는 우월감
 ('그들이 만든 세상 part 2'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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