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음악적 고민에 공감하다.
이 글은 신해철이라는 뮤지션의 일대기를 다루거나 그의 음악에 관해 심도 있게 비평하는 글이 아닙니다. 그저 지금까지 제 인생의 선에 굵은 점을 여러 개 남겼던 인물에 대해 추억하는 가벼운 글 정도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그에 관해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2.
사실 넥스트 앨범을 처음 찾아 듣던 당시에는 넥스트 4집을 마지막으로 밴드가 해산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음악 외에 관해 그에 대해 찾아보고자 하는 의지도, 통로도 없었던 어린 녀석이었다. 고작 일주일이면 전국투어를 끝낼 수밖에 없는 나라에서의 공룡밴드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음악적 끝을 보았다 판단하고 해산했다고 한다. 물론. 해체할 당시, 밴드의 팀워크는 이미 나가리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등학교를 다니며 아주아주 난해한 모노크롬(Monocrom) 앨범을 들었다. 모노크롬은 단색(單色)을 의미하는 monochrome이란 단어에서 따 왔으며 특히 crom이란 신해철의 예명은 영국에서 녹음 당시 독재자처럼 군림하는 그의 모습이 영국의 독재자 올리버 크롬웰 같다고 주변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국악이나 각설이 타령 같은 게 섞인 모호한 테크노 음악에 제대로 된 가사도 없고, 또 있더라도 영어로 읊거나 불렀다. 영국에서 산적 같은 기타리스트를 하나 데려와 공중파 음악방송에서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던가 'The Grinder' 같은 노래를 부르고 영어로 통역을 하며 인터뷰하는 단발의 그는, 그러나, 멋있었다. 나에게 여전히 그는 젊었고, 강건했으며, 잘못된 일에 대해 강하게 이야기하는 영웅이었다. '비트겐슈타인' 앨범의 'Cynical Love Song'이라던가 '수컷의 몰락' 같이 냉소적이고 사회 비판적인 음악은 입시라는 관문 앞에서 1년을 담보로 잡혀 불합리한 인내를 강요받는 고3에게 몇 안 되는 숨 쉴 구멍이 되어 주었다.
수컷들이란 절반의 허세
그리고 절반의 콤플렉스로 이루어져 있다
배를 잔뜩 부풀린 복어의 낯짝이 사실은
새파랗게 겁에 질려있는 것처럼 ('수컷의 몰락 part 1' 중)
대학교 신입생이 되어 입학하기 전 강원도로 O.T.를 가는 버스 안에서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를 어쭙잖게 불렀는데, 당일 밤 뒤풀이에서 벌칙에 당첨된 어떤 덩치 큰 녀석이 '그대에게'를 전주부터 부르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또, O.T. 마지막 밤 대공연장에서 5대 5 가르마를 타 머리카락으로 두 눈을 덮은 음습하게 웃는 놈이 당시까지 발매한 그의 전곡과 음악 히스토리를 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놀랐다. 처음 만난 우리는 신해철이라는 매개로 가까워질 수 있었다.
2004년 즈음 넥스트가 다시 재결합했다는 소식을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덩치와 함께 비를 뚫고 5집 앨범을 샀다. 신해철 본인의 설명에 따르면 넥스트(N.EX.T)라는 밴드의 이름은 New EXperiment Team의 약자이다. ‘새로운 실험 팀.’ 무한궤도를 해체하고 솔로로 활동하던 중에 밴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못해 다시 만든 팀이라고 한다. 자신의 회고록에서 그는 항상 이번 앨범이 다음번 앨범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 밴드 명에서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음악의 방향성을 엿볼 수 있다. 나는 그 방향성이 가장 많이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앨범은 넥스트 해체 이후 2004년에 다시 돌아오며 저예산으로 발매한 5집 ‘개한민국’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1997년 밴드를 해산하고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가 귀국했을 때 한국의 음반시장은 그의 예상과는 완전 다르게 흘러갔다. mp3의 공유로 음반 시장이 완전 박살 나버린 것이다. '소리바다'와 '당나귀' 같은 프로그램으로 대표되던 불법 공유 방식을 통해 당시 나 역시도 아무런 도덕적 판단 없이 이 노래, 저 영화 등을 다운로드하였던 기억이 있다. 그는 그 현상을 음악의 권위가 무너졌다고 평가하며 한탄했다. 다만, 한탄하지만은 않았다. mp3가 CD를 대체하고 미디프로그램의 발달과 저가형 홈레코딩 시스템의 도래로 2000년 이후 음악이 프로들의 영역에서 민중의 손으로 넘어갔다고도 평가하였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자 분투하였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넥스트 5집이며 이 앨범의 가장 특이한 점은 수록곡들이 어떤 모델의 기계로 어떤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어떻게 레코딩, 믹싱 하였는지 아주 상세히 적혀있다는 점이다. 사실, 스튜디오에서의 녹음, 믹싱, 이런 과정들에 관한 지식이 전무했던 나는 정확히 뭐가 뭔지도 모른 채 그가 쓴 설명을 읽었지만, 그래도 굉장히 가독성 높고 쉽고 논리적인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음반산업적인 면을 떠나서도 5집 앨범은 신해철의 걸걸해진 목소리로 강하게 세상을 씹으면서도 위트 넘치는 가사들이 넘쳤다. '아, 대한민국'을 패러디한 타이틀곡 '아, 개한민국'이나 486 중년 남성의 보수화를 꼬집는 'Generation Crush,' 미성년자 성매매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Laura'와 그래도 리스너들을 위로하던 '힘을 내' 같은 주옥같은 곡들은 조금은 투박한 홈레코딩 사운드지만 시원한 기타 사운드와 두터운 베이스, 탄탄한 드럼의 리듬 위에 놓여 이전 앨범에 뒤지지 않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특히, 내가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곡 중에 하나인 '예수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Jesus)'는 독특한 한국적인 리듬 위에 풍자적인 랩 가사가 일품이다-교회 다니시는 분들께서 양해를 구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IAV4CGCddK8
자학의 카타르시스 집단적 madness
너네가 크리스찬이면 내가 Guns and Roses
자뻑의 hot business 이제 그만 됐스
너네가 종교라면 내가 진짜 비틀스 ('예수 일병 구하기' 중)
위 가사를 읊을 때, '내가 Guns and Roses'라고 말하는 가사 뒤로 진짜 Guns and Roses의 'Sweet Child o' Mine'을 대표하는 기타 리프를 깔아버렸다. 또한, '내가 진짜 비틀즈'라는 가사는 비틀즈가 British Invasion을 성공한 후, 미국에서 물러나는 계기가 된 존레논의 '비틀즈는 예수보다 위대하다'란 말을 비틀어 집어넣은 것이다. 물론, 5집은 3집과 더불어 신해철의 손길이 가장 적고 밴드 내의 민주성이 많이 확보된 앨범이어서 이 모든 센스를 신해철 개인의 공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며 다시 곡을 듣고 있는 내가 막 설레발을 떨어도 될 정도로 훌륭한 음악성을 가졌다는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지 않을까?
2005년 봄, 난 음악과 단절될 수밖에 없는 군대로 끌려갔고 신해철은 넥스트 원년 멤버들과 함께 5.5집 Regame을 준비하였다. 아참.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2000살 넘게 먹은 뱀파이어 역도 하고, ‘아치와 씨팍’이란 희대의 명작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 역의 류승범, 임창정에 맞서는 보자기 갱단의 두목 보자기 킹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주인공들을 패면서 ‘재즈카페’의 “위스키 브랜디, 블루진 하이힐, 콜라, 핏자, 발렌타인 데잇!“을 부르는 명장면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