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댄스댄스댄스 Aug 28. 2023

속초여행 1일-1

2023.7.16.-7.18.


지구 온난화의 영향인지 여행 직전까지 한창 비가 퍼부었다. 아이폰의 일주일치 일기예보에는 여행기간 내내 비 소식이 있었다. 네이버의 예보도 마찬가지였다. 아내와 나는 며칠 동안 시무룩했다. 예약한 숙소는 취소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비가 온다면 숙소에만 있어야 하나? 아이 발에 바닷물을 적셔주고 싶은데 가능할까? 모래놀이는? 마음먹고 처음으로 이틀밤을 보내는 여행을 계획했는데. 그래도 가야만 했다.


금요일에 방학식을 하고 토요일 여행 짐을 챙겼다. 다행히 토요일 저녁에 확인한 예보로는 일요일에 비가 올 가능성이 많이 낮아졌다. 우리는 자그마한 희망을 가지며 잠이 들었다. 특히, 나는 장거리 운전을 대비해-초보운전자인 내 기준에서 2시간은 굉장한 장거리다-컨디션을 조절하고자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베란다로 가 하늘을 확인했다. 구름이 짙게 껴 있지만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고 있었다. 원터치 텐트와 돗자리, 접이식 유모차와 캐리어 등을 트렁크에 실었다. 캐리어에는 아이와 아내, 나의 옷과 세면도구, 비상약, 아이의 장난감 등을 넣었다. 그리고 보조석에는 아이를 위한 간식, 기저귀, 물티슈 등을 챙겼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아무리 짐을 줄이고 줄여도 줄어들지 않는다. 꼼꼼한 아내는 스마트폰으로 리스트를 만들고 한번 더 체크하였다. 그동안 나는 아이 얼굴에 선크림을 바르고 신을 신겨 밖으로 나왔다.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이 열 주차된 차주에게 연락하였다. 다행히 두 번의 연락 끝에 통화가 되어 우리는 수월히 출발할 수 있었다.


9시 30분경에 일단 설악산 쪽으로 향하였다. 속초에 도착하기 전 점심을 해결할 수 있게 산채 정식집을 알아봤었다. 내비게이션에 따르면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타다 중간에 국도를 갈아타는 대략 2시간 30분 거리였다. 어릴 때 부모님과 동생과 함께 여름휴가 차 영덕을 간 적이 있었다. 그 시절 흐릿한 기억에 태백산맥의 국도는 꼬불꼬불했는데. 잘 갈 수 있겠지?


운전을 한지 이제 햇수로 3년이 넘었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아직 차폭감이 분명히 생기지 않아 우회전을 할 때 연석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 때도 있었고, 차 앞범퍼와 앞에 있는 장애물 사이의 거리감 같은 게 부족하여 주차에 애를 먹기도 하였다. 그보다 더한 불편함은 도로에서 다른 차나 사람과의 관계 맺음이었다. 차선을 변경할 때 사이드 미러에 한없이 가까워지는 뒤차, 좁은 도로를 가로지르는 무단횡단자, 내 옆으로 마구 끼어드는 배달 오토바이.


동뿡이-아내가 만든 우리 차의 별명이다-의 시동을 걸고 우리는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큰길로 나온 직후 차의 앞유리로 작은 물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결국엔 오는 것인가? 의정부 IC를 빙 둘러 고속도로로 들어갈 때까지 오던 비는 그러나 다행히 경기도를 벗어날 때 즈음에 다시 그쳤다.


아내와 아이는 점점 푸른빛이 짙어지는 풍경을 즐겁게 바라보는 듯했다. 장마로 공기가 씻겨나가서인지 앞유리의 도로 양쪽으로 먼 곳까지 시야가 탁 트였다. 나도 함께 바깥 풍경을 즐기고 싶었으나 운전에 집중해야 한다. 아내와 아이가 종알대는 기분 좋은 소리를 들으며 핸들을 잡았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국도를 탄 후에는 꼬불꼬불 길이 나올까 긴장했지만 다행히도 적당한 커브길만 등장하여 그렇게 어렵지 않은 주행이었다. 산과 나무, 풀만 보이던 풍경에서 어느새 도로가로 여러 식당들이 나타났다. 점심을 먹을 식당 역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식당 입구의 자갈이 깔린 주차장에 주차하고 내려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어느새 잠들어 있던 아이를 조심스럽게 깨워 밖으로 나왔다. 노란 원피스를 입은 아이는 점심을 먹는다는 말에 신나 했다.

식당에는 서빙을 보는, 아마 주인으로 짐작되는 할아버지 한 분이 중앙 테이블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계셨다. 아마 안쪽 주방에는 할머니가 요리하고 계시지 않을까? 우리는 에어컨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더덕구이와 황태구이가 메인으로 나오는 산채정식을 시켰다.


음. 알루미늄으로 된 컵과 숟가락, 젓가락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름기가 있었다. 아내와 눈빛으로 대화했다. 나가기는 힘들겠다. 이미 주문한 마당에 다시 일어나기에는 눈치가 보여 물티슈로 수저를 닦았다. 대략 12가지 밑반찬이 나오고 더덕과 황태구이, 황태해장국과 비벼먹을 수 있는 나물이 한상 가득 나왔다.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독특한 한약 냄새를 풍기는 밑반찬은 무언가 건강한 맛이 났다. 더덕과 황태구이는 일품이었다. 까다로운 지도 어플에서 좋은 평점을 받은 이유를 알 거 같았다. 아이는 한약 냄새가 강해서인지 밑반찬을 잘 먹지는 않았다. 대신 황태해장국에 밥을 말아먹었다. 작은 황태조각이 거칠 텐데도 오물오물 꼭꼭 씹어 먹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우리 셋은 식당을 나왔다. 차에서 한번 내린 후에 다시 탈 때면 어김없이 나오는 고집을 아이는 이번에도 부렸다. 카시트를 타지 않겠다는. 아직 짧지 않은 거리를 가야 하기 때문에 아내와 나는 아이를 설득했다. 아직 완전한 의사소통이 힘든 나이어서 아이가 솔깃해할 당근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겨우 아이를 달래 카시트에 태우고 다시 출발했다.


지금까지 가본 적 없는 긴 내리막길을 브레이크를 밟으며 신중하게 내려갔다. 오른쪽으로 울산바위가 장엄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는 자세히 관찰할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에 있는 산 이름 중에 '큰 악(岳)' 자가 있으면 산세가 험하고 바위가 많은 오르기 힘든 산이라고 한다. 다만 그만큼 아름답다고 하는데. 안타깝다. 아내와 아이는 맑아진 하늘과 설악산의 푸른 숲, 꼭대기의 바위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마냥 신나는가 보다.


나는 그렇게 여행을 많이 다닌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래서 생애 첫 해외여행이라던가 아내와의 여행이 더 인상 깊게 추억으로 남아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자기 합리화를 한편으로 밀어 내고 나면 나에겐 기본적으로 직접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자격지심 같은 것이 있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고 난 후에는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조금은 생긴 거 같다. 한편으로는 아내에게 미안한 감도 없진 않지만. 그래서 이번 여행은 아이에게 어떤 추억이라던가, 경험을 선물해 줄 수 있다는 보람 같은 것이 있었다. 물론 나 자신과 아내에게도.


동뿡이는 어느새 설악산의 깊은 내리막을 지나 속초로 향하고 있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