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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디푸스 Jul 20. 2019

하청사회 - 지속가능한 갑질의 조건

  근래 몇 년 동안 갑질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이슈화되고 있다. 갑질은 개인 간 기업 간 어디서든 일어나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갑질이 어떻게 해서 가능하게 되었으며, 갑은 계속 갑으로 남고 을은 계속 을이 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사회 구조적으로 우리 사회가 하청사회이기 때문에 갑질이 생기게 되고 하청사회를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 지대추구 행위(Rent-Seeking Behavior)와 외주화(Outsourcing)라고 한다.  

 

 ‘지대’란 넓게는 토지뿐 아니라 어떤 생산요소든 공급이 고정되어 있을 때 그것에 대해 지급되는 보수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건물주는 단지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일하지 않고도 고정적인 이익을 거둔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돈을 모아 건물주가 되고자 고군분투한다. 건물을 소유한 부모를 만난 이른바 ‘금수저’들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우리 사회에서 성공을 거머쥘 수 있다. 그야말로 ‘지대’가 주는 풍요 속에 태어난 것이다.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국가 간 자유경쟁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는 기업과 개인을 무한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신자유주의 아래에서는 성공이나 실패가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국가나 공공의 책임을 일개 기업과 개인에게 전가하는 거대한 명분이 생기는 셈이다.  


  

‘하청사회’는 오늘날 한국 사회를 포착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열쇳말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에는 노동시장이 급변하면서 을은 더욱 취약해진 반면 갑은 갈수록 막강해져서 마침내 ‘슈퍼 갑’으로 거듭났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실태를 표현하는 용어로 ’99-88’이란 말이 있다. 이는 한국 전체 사업체 수의 99.9퍼센트가 중소기업이며, 전체 근로자의 88퍼센트가량이 중소기업 종사자라는 뜻이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은 그 압도적 비중에도 불구하고 국내 총생산의 절반 수준을 차지할 뿐이다. 재벌과 대기업의 이익이 커질 수롤 사회 전체로 그 이익이 분산된다는 소위 ‘낙수효과’는 더 작동하지 않는다.  


  2016년 5월, 구의역 김 군 스크린도어 사망사고는 하청사회의 실체를 드러내는 집약적 사례였다. 서울메트로는 유사한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며 비정규직 근로자 개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서울메트로는 비용 절감 등의 이유로 구조조정을 하며 특정 업무들을 외주화 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메트로는 내보내는 퇴직자들을 협력업체, 더욱 정확히 말해서 하청업체에 무조건 고용되도록 보장해주었다. 서울메트로의 퇴직자가 하청업체의 임원직으로 들어가서 받는 연봉은 서울메트로 정규직보다는 적었지만, 그런데도 하청업체 근로자의 두세 배에 해당하는 상당한 액수였다. 서울메트로 출신 은성 PSD 임직원은 서울메트로라는 ‘지대’의 보호를 받은 셈이다.  


  ‘갑질’은 단지 갑이 ‘우위에 서는 것’만이 아니라 하위에 있는 을을 ‘밟고 서는 것’을 포함한다. 갑은 갑질을 통해 스스로의 우월한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궁극적으로 더 많은 지대 또는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을은 어떻게 재생산되는가? 이 시대의 을들은 성과 주체로서 성공도 실패도 모두 자신의 선택이고 책임이라 믿으며 끊임없이 앞만 보고 내달린다. 그리고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황에서 을들은 협동보다 생존을 우선적인 가치로 생각하게 된다.


  이 책에서 작가는 지대추구 행위를 부당한 방식으로 경쟁을 회피하며 지대를 추구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예일 대학교 경제학 교수인 마틴 슈빅이 고안한, 게임이론의 실험 사례인 ‘함정 게임’(20달러 지폐 경매)에서 게임의 승자는 최고입찰가를 부른 사람이 아니라 경매인이다. 게임처럼 갑이 ‘20달러 지폐 경매’라는 독점 지대를 형성하고 나머지 을들이 여기에 참여하여 경쟁하면, 최종적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는 쪽은 오로지 갑이다. 지대 추구 행위가 경쟁의 규범처럼 작동하면 독점적인 지대를 차지하는 갑이 되는 것만이 중요해진다. 갑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갑이 되고 나서 지대를 독점하고 매몰 비용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사회적 순손실이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갑의 지대추구 행위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사회 현상은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외주’ 또는 ‘하청’이라는 제도는 적법과 편법의 안전한 영토 안에서 갑의 손실을 극소화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갑이 마주한 다양한 위험을 을에게 떠안기는 결과로 이어진다. 외주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위험의 외주화’다. 갑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거나 남용하여 손해나 위험을 회피하고 이를 을에게 떠넘기는 행태를 총체적으로 ‘불공정 하도급 거래’라고 일컫는다. 갑을관계의 위계와 격차를 유지한 채 그저 외주를 권하는 사회, 허술한 법으로 갑의 불공정성을 방치하며 하청을 도리어 부추기는 사회, 이것이 바로 하청사회의 진정한 실체이다.


  현재 갑과 을 사이에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업무의 강도나 책임의 소재지가 모두 원청에서 하청으로 향하는 일방향의 단선적 흐름이 대세를 이룬다. 이는 원청이 수익을 모조리 가져가고 손해는 하청이 모조리 떠맡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 악순환은 단 한 사람, 하나의 사업장의 힘으로는 끊을 수 없다. 무시무시하게 빠르게 변하는 첨단의 시대, 개인으로 분절화된 채 갑과 을의 불평등만 가속화되는 하청사회는 더 이상 결코 지속될 수 없으며 또 지속되어서도 안 된다.


  대부분의 사람이 흙수저로 태어나서 을로 살아가게 되고 갑과 을의 빈부격차는 날이 갈수록 벌어지며 아무리 발버둥 치고 노력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갑들을 따라갈 수 없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이 책 읽고 나서도 희망을 보기보다는 내가 모르고 있던 어두운 현실을 더 알게 되고 더 절망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 함께 잘 사는 사회가 오기를 희망해본다.



참고자료: <하청사회-지속가능한 갑질의 조건>, 양정호 저, 생각비행,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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