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흡연에 대한 인식
몇 달 전 조촐한 회식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부장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요즘 여사원들이 담배를 많이 피우는 것 같아. 이번에 부사장님하고 담배 피우고 있는데 옆에서 OO가(팀 내 여직원) 담배 피우고 있던데 담배 피더라도 좀 안 보이는 곳에서 펴야 하는 거 아니야? 부사장님 보기 민망하더라고." 사내 흡연구역에서 부사장님 하고 담배 피우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 옆에서 여직원이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그것이 불만이었다는 말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의 귀를 의심했다.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이 싫고 또 그것을 보는 것이 싫다는 말이다. 보는 게 싫으니 상대방이 당신 눈에 안 보이는 곳에서 펴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사무실에서 차장님 한 분이 지나가다가 옆자리 여직원의 책상 위에 담배가 놓여있는 것을 보고 "담배를 좀 안 보이는 곳에 치워두지."리고 혼잣말을 하며 지나간다. 남직원들 책상 위에도 담배가 놓여있는 곳이 많은데 그것은 보지 못하는 것인가? 결국 저 말은 여직원들의 책상에만 한정되어 있다고 판단된다.
여자는 흡연을 하면 안 되는가?
흡연은 일단 남녀 모두에게 해롭고 간접흡연 또한 해롭다. 흡연으로 인해서 본인 건강을 해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본인이 감당해 내면 되고 본인의 선택이다. 여기에 남녀의 차이는 없다. 간접흡연에 대한 피해 또한 각자 타인에게 간접흡연으로 인한 피해를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여기에도 남녀의 차이는 없다. 남녀의 차이가 크게 나는 경우라고 하면 태아에 미치는 영향 정도일 것이다. 만약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 때문에 여성은 흡연을 해선 안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출산의 계획이 없거나 폐경기의 여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궁금하다. 생각해보면 할머니들이 담배 피우는 모습을 봤을 때 이상하게 보거나 뭐라고 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자신보다 어린 사람이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는 것이 싫은가?
위에서 말한 여직원이 부장님이나 부사장님보다 한참 어린데, 지신들보다 어린 사람이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는 것이 싫은 것인가? "어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맞담배를 펴!"이런 생각이 있는 것일까? 오래전 기억들을 떠올려보면 나이차 혹은 직급 차가 있는 사람들이 담배 피우는 장면에서 이런 장면들을 많이 봤다.
상급자가 담배를 물면 하급자가 그 담배에 불을 붙여준다. 그리고 상급자는 담배를 몇 모금 빨다가 물어본다. "자네도 담배 피우는가?"그러면 다음과 같은 대화가 이어진다. "네, 핍니다." "자네도 한 대 피우게."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괜찮으니 그냥 편하게 피우게." 그러면 하급자는 마지못한척하며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리고는 한 모금 빨고 고개를 돌려 연기를 조심히 내뿜으며 담배를 든 손은 허리 뒤로 감춘다. 허리 뒤로 간 손은 담배를 입으로 가져갈 때만 밖으로 나온다.
만약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주변에서 꼰대 소리를 들을 수 있더라도 일관성을 유지한다면 그래도 봐줄 만하다. 하지만 본인은 상급자인 부사장님과 맞담배를 피면서 다른 직원들은 옆에서 담배를 피워도 안 되는 것인가? 내로남불이다. 아니면 직원들을 몇 개의 보이지 않는 그룹으로 지정해놓고 본인은 부사장님과 같은 그룹으로 들어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내로남불도 문제지만 내가 생각하는 더 큰 문제는 본인의 그 룰이 여직원한테만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주변에 담배 피우는 남직원들이 훨씬 많았는데 그들에 대해서는 불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나이가 어려서 문제가 아니라 여자라서 문제였던 것이다.
안 보이는 곳에서 담배를 피우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
요즘은 금연구역이 많아지고 건물 전체가 금연 건물인 경우도 많다. 예전과는 다르게 지정된 흡연구역에서만 흡연을 하도록 되어 있어서 흡연자들은 모두 흡연실로 모인다. 길을 가다가도 흡연구역이 있으면 흡연 중인 사람들도 상당히 많고 그곳은 완전 너구리 굴처럼 연기가 자욱하다. 전에는 여기저기 흩어져서 피웠지만 지금은 지정된 장소에서만 필 수 있게 되다 보니 흡연자들이 많아 보인다. 그리고 위의 부장님이 말한 것처럼 (여자라는 이유로) 안 보이는 곳에서 피워야 할 이유도 없고 흡연실에서 피워야 하니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여성 흡연에 대한 인식이 안 좋은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예전에 비하면 인식이 좋아진 편이긴 하다. 안 좋게 보더라도 그걸 표현하는 사람도 적다. 그리고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도 많다. 그래도 여전히 남성 흡연에 비하면 여성 흡연의 인식이 좋진 않은 것 같다. 왜 그런 걸까?
매스컴의 영향일까? 매스컴에서 노출되는 흡연자들을 보면 남성의 경우 멋있게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멋진 배우가 나와서 깔끔하게 차려입고 흡연하는 모습, 그리고 고뇌에 차서 흡연하는 모습들로 표현된다. 그리고 남성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영화 영웅본색에서도 주윤발이 나와서 담배를 멋있게(?) 피운다. 반면 여성의 경우 담배 피우는 '일진'의 모습이거나, '날라리', '술집 여자'등으로 흔히 '하찮다'라고 느껴지는 사람들의 흡연 모습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여성 배우나 아이돌이 담배 피우는 듯한 행동을 취하거나 SNS에 올라온 사진에 담배가 함께 찍히면 흡연 논란이 이어지고 해명까지 내놓기도 한다. 그리고 본인을 흡연자임을 밝히는 것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고 이미지의 타격을 받기도 하고 금전적 손해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남자 배우들은 흡연자임을 밝힐 필요도 없다. 흡연이 논란이 되지도 않는다. 사회 분위기상 여성 흡연은 범죄 아닌 범죄로 인식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진화학적으로 남성의 경우 종족번식을 위해서 건강한 후손을 낳을 수 있는 여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반면 흡연을 통해서 아이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성에게는 싫어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건강한 자녀를 출산할 수 있는 확률을 높이도록 메커니즘이 짜여 있는 것일까? 그래서 임신이 불가능한 할머니에게는 이성적 호감도 느끼지 못하고 그들의 흡연에도 아무렇지 않은 것일까? 잘 모르겠지만 전문가가 TV에 나와서 이런 말을 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글을 쓰다 보니 흡연에 대해서 특히, 여성 흡연에 대한 나의 입장이 긍정적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데 나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담배 피우는 사람을 싫어한다. 개인적으로 담배를 너무 싫어해서 담배 연기가 많은 당구장, PC방, 만화방 이런 곳은 거의 가지를 않았다. 친구들이 가자고 해도 피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친한 친구들은 거의 비흡연자들이다. 사람들이 담배 피우면서 고급 정보를 주고받아도 나는 보통 정보의 단절을 선택할지언정 담배연기를 택하지는 않는다. 단지 흡연의 문제가 아닌 차별적 시선과 행동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여자 친구가 물었다. "오빠, 내가 담배 폈으면 어떻게 했을 거야?"
난 대답했다. "그럼 애초에 널 만나지도 않았어."
"그럼 헤어지고 싶으면 담배 피우면 되는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