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이디푸스 Sep 05. 2019

"연차 결재 안 해준다?"

연차 결재 안 해준다?


  팀장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런 말을 간혹, 그러나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저런 말이 나오는 상황을 보면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팀원이 실수를 했을 때다. 며칠 뒤에 연차를 사용하겠다고 팀장에게 구두보고를 한 상황에서 업무상 실수가 있었을 때 팀원을 나무라면서 연차를 결재하지 않겠다고 윽박지르는 경우다. 아니면 연차를 사용하고 왔는데 업무상 실수가 있었을 때 이런 식이면 앞으로 연차 결재 안 해주겠다고 협박(?)을 한다. 팀원들에게 연차에 대한 결재 권한을 이용하여 위계상 우위를 차지하고 팀원들을 손쉽게 다루고자 한다. 팀장들이 사원일 때는 선배사원들 말이라면 뭐든지 잘 따르고 했는데 팀장이 돼보니 요즘 사원들이 내 맘 같지 않고 연차 결재라도 볼모로 붙잡고 팀원들을 통제하고 싶은 걸 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팀장의 장난이고 농담이다. 팀장은 웃고 있지만 연차를 사용하겠다고 보고하고 있는 팀원의 표정은 좋지 않다. 팀장은 결재를 하지 않을 마음이 1도 없지만 난처해하는 팀원들을 보고 즐거워한다. 이런 농담은 두 사람의 평소 관계에 따라서 아무것도 아닌 상황일 수도 있고 심각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팀장이고, 연차 결재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위치라면 조심해야 할 농담이다. 어떤 이의 말을 빌리자면 본인은 상사가 너무 싫어서 퇴사를 했는데 퇴사할 때 그 상사는 둘의 관계가 굉장히 좋았다고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팀원들의 웃음과 행동을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된다. 그러니 친하다 생각하고 하는 농담은 조심해야 하고 그것이 연차와 관련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연차 사용에 대해서 팀장에게 보고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직원들이 많다. 나한테 먼저 와서 "팀장님한테 다음 주 연차 사용한다고 말해되 될까요?" "연차 이틀 붙여서 사용해도 될까요? 뭐라고 하지 않을까요?"라고 묻는 경우도 많다. 본인에게 주어진 연차를 사용하는 것에 있어서도 굉장히 조심스럽다. 그럴 때면 보고하기 적절한 타이밍을 알려주기도 하고, 보고할 때 옆에 지나가면서 살짝 거들어주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지금껏 본인의 일을 내팽개치고 연차를 사용하는 직원을 본 적도 없고, 연차 결재를 안 해주는 팀장을 몇 년간 본 적이 없다. -오래전엔 간혹 있었다- 다들 연차 사용을 위해서 업무 조정도 하고 야근도 하며 바쁠 때는 연차 일정을 알아서 포기하고 미루기도 한다.


  팀장들의 "연차 결재 안 해준다?"라는 말을 없애기 위해서는 연차 사용 프로세스를 바꿔볼 필요도 있어 보인다. 팀원들이 연차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팀장의 결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저런 말들이 나오는 것이다. 만약 팀장 결재 없이 연차 계획을 시스템에 올리고 그 일정이 팀장에게 통보가 되고 팀장이 보고 그날 연차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판단될 때 사유와 함께 거부를 하게 되면 어떨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런 거부 내역들이 남아서 경영진에서 관리할 수도 있다. 즉, 팀장의 권한은 연차 사용 승인이 아니라 연차 사용 거부권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연차 결재 안 해준다"대신에 "연차 거부한다"라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 빈도수는 확실히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이전 03화 연차 사용, 월금은 왜 안되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