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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 Apr 10. 2023

너의 첫날은 어땠니

나 혼자 갈 수 있어!!

 

 학교가 좀 멀다. 내가 출근하던 학교로 입학을 시켜서 걸어서는 30~40분 남짓. 여느 아이들처럼 걸어서 등교하기는 어렵다.

 엄마가 출근할 때는, 6시 50분부터 일어나 등원 준비를 하고, 7시 40분 어김없이 학교 주차장에 도착했던 부지런쟁이.

 엄마가 육아휴직을 하면서 몽실이의 등교시간도 좀 더 여유로워졌다. 7시 45분 기상. ebs 만화영화를 틀어놓고 앉은뱅이 공부책상 앞에 앉아 제법 여유롭게 아침 식사도 한다. 오늘은 본격적인 1학년 수업이 시작되는 3월 3일, 몽실의 최애 반찬인 치킨너겟으로 아침상을 차려줬더니 흐뭇한 미소가 몽실이에게 걸린다. 식사중인 몽실이 뒤에 앉아 머리 묶어주며 엄마는 첫날 지켜야 할 것들을 쉴새 없이 이야기하며 제대로 숙지했는지 체크하기 여념이 없다.

  신발을 들고, 교실까지 가기. 교실은 2층. 교실 옆 복도 신발장에서 10번을 찾아 신발을 놓기. 선생님께 씩씩하게 인사하기. 돌아다니지 않기. 선생님 말씀 잘 듣기. 뒤돌아보지 않기. 수업시간에 옆 사람과 떠들지 않기. 점심 밥은 너무 늦게도 너무 빨리도 먹지 말기!!(우리 몽실이가 가장 어려워하는 대목이다^^;;) 수업 끝나면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1층 보금자리 방으로 가기. 3시 30분에 엄마가 전화하면 후문 앞 벤치에서 엄마 만나기!!

 치킨너겟과 함께 엄마의 당부를 꾸역꾸역 삼키던 몽실이, 잔소리처럼 자꾸 듣는 말이 귀찮기도 할 텐데,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또 듣는다. 그리고 메모지에 저장하듯 눈동자를 위 아래로 움직이며 되세겨 본다. 저자신도 첫날의 불안이 밀려오나 보다.

8시 35분 학교 주변 도착. 휴직 중이 아니라면 당당히 학교 주차장에 내 차를 들이밀겠지만, 육아휴직 중이라 좀 눈치가 보인다. 교직원이 100명이 넘는 제법 규모 있는 학교라서 평소에도 학교 주차장은 주차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을 알기에 핸들을 돌려 인근 아파트에 주차를 시도해보았다.

 결과는 실패 ㅠ.ㅠ 간신히 아파트 갓길에 얼른 주차했다.


  "나 혼자 갈 수 있어!!"

 두 아파트 사잇길을 약 5분 여 정도 걸으면 학교 후문이 보인다. 안전한 길이긴 하지만, 엄마로서 더럭 겁이 난다.

 "알아, 우리 몽실이 혼자 갈 수 있는 거. 하지만 첫날이니까 엄마가 같이 가줄게. 엄마도 같이 가고 싶어."


 나는 25년 경력의 반절이 1학년 담임교사였다. 1학년 교사로서 3월 한 달 동안 아이들에게 최면 걸듯이 강조하는 말은 "1학년 친구들도 혼자 할 수 있어요"였다. 스스로 해내야 마치 "학생"의 자격을 얻는 것처럼 학생들에게 혼자 해내길 강조했다. 혼자 가방 걸기, 혼자 물병 열기, 혼자 겉옷의 지퍼를 올리기, 혼자 정리하기, 혼자 등하교 하기! 학부모님들에게도 "1학년이면 혼자 충분히 할 수 있는 나이이며, 앞으로 초등학교 생활을 해나기 위해선 아이 혼자 하도록 지도해주시고, 대신 해주지말고 지켜만 봐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그런데 내 딸, 마흔 하나 늦은 나이에 낳은 늦둥이, 몽실이의 입에서

 "나 혼자 갈 수 있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래, 너는 이제 1학년이니 당연히 혼자 걸어갈 수 있지, 그래야지~ 라는 생각보다

걱정이 앞서는 것은 무슨 심산일까,

 행여 아이가 낯선 학교에서 헤멜까봐, 아이의 손을 잡고 교실 앞까지 들어와 아이의 신발을 대신 신발장에 넣어주며 아이가 교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복도를 서성였던 몇 몇 학부모님들을 보며, '저러면 아이의 자립심을 길러주지 못하는데'하며 혀를 쯧쯧 찼던 사람이 나였는데...

 학기초 준비물이 가득 들어 유독 무거워보이는 책가방을 등에 지고 힘차게 앞장 서서 걸어가는 딸아이의 뒷모습이 대견해 보이면서도 안쓰럽고, 귀여워 보이면서도, 제대로 교실이나 찾아갈까 걱정도 앞선다. 아마도 그 많은 1학년 학부모님들도 그런 마음으로 아이의 손을 놓지 못하고, 교문을 넘어서, 복도를 지나, 1학년 교실 앞까지 따라 오셨겠지?


  후문 앞엔 이미 많은 1학년 학부모들이 걸음을 돌리지 못하고, 자녀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학부모들은 학교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교문 밖에 서서 등교하는 자녀들의 모습만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2층! 1학년 7반이야~"라고 외치는 학부모도 있고,

 "잘 하고 와, 우리 아들!!" 큰 소리로 아들을 응원하는 어머니도 보인다.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 엄마 품에 안겨 얼굴을 비비고 있는 아이같은 신입생도 보인다.


몽실이는 인파를 뚫고, 냉큼 1층 현관으로 내달린다.

"엄마, 이따가 봐" 인사말도 뒤돌아 달리면서 한다. 등치가 큰 고학년 학생들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뛴다. 저러다 부딪힐라, 저러다 넘어질라 저러다, 저러다...

 나도 여느 학부모처럼 발걸음을 돌리지 못하고 꽁지머리가 현관 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고 있다. 슬쩍 뒤따라가 2층 1학년 1반까지 잘 올라가는지, 신발을 잘 챙겨서 신발장에 넣는지, 선생님께 공손히 인사는 잘 하는지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나도 이젠 제법 학부모같구나. 하하


 몽실아, 너의 첫날을 응원해! 이 곳에서 행복하고, 즐겁고, 성취하고, 때론 좌절하고, 슬프겠지만, 네가 성장하리라 믿어! 기도문 같은 응원의 마음을 삼키며 간신히 걸음을 되돌려 본다. 이젠 달콤한 엄마만의 시간이야!




오후  3시 30분!

 약속된 후문 옆 벤치로 뛰어오는 몽실이!

"엄마!"

가슴에 폭 안겨오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쉬는 시간에 컵 쌓기 한 이야기, 점심은 카레라이스 나왔는데 매운 김치도 먹었다는 얘기, 인사하는 노래 배운것, 돌봄교실에서 유치원 친구를 만난 이야기...

하굣길에 쉴 새 없이 조잘 대는 몽실이.

"우리 몽실이 학교가 재미있었니?"

"엉!! 엉!! 너~무 재밌어!"

 안심이다. 첫날부터 학교 안 가겠다고 우는 우울이, 선생님이 무섭다며 주눅들어 있는 소심이, 수업이 재미없다고 하품하며 시큰둥하는 꾸러기들.

 1학년의 첫 주는 전쟁과 같은데, 신입생들이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게 하기 위해 1학년 선생님들이 얼마나 수고하시는지 알기에, 몽실이의 입에서 나온 "너무 재미있었다"는 말에, 내가 1학년 담임 선생님이 된 듯 마음이 놓인다.

 "고맙네"

 "뭐가 고마워요?"

"우리 몽실이가 즐겁게 공부해준 것도 고맙고, 선생님께도 감사하고."

'우리 선생님은요'로 시작된 몽실의 수다 2탄~ 엄마보다 선생님이 얼마나 예쁜지, 얼마나 목소리가 큰지, 얼마나 재미있게 얘기해주시는지, 선생님 자랑에 엄마는 다시 한 번 마음이 놓인다.

 하굣길, 평소 퇴근 때보다 차가 막히지 않아 더 짧게 느껴지는 하굣 길에, 어느새 조용해진 몽실이. 마침 신호가 걸려 몽실이를 바라보니,

"하!"

 곤한지 고개를 옆으로 떨군채 잠이 들어있다.

 낮잠도 잘 자지 않는 아이인데. 곤했나보다. 너의 곤함이 왜이리 사랑스러운지. 첫날을 맘껏 즐겨준 너의 열심을 칭찬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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