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셋이면, 학기초엔 각종 안내장의 산더미 속에 빠지곤 한다. 초1 막둥이 안내장만 해도 하루에 4~5건. 그 중에는 단순히 참고만 해도 되는 것도 있지만, 학기초엔 반드시 작성해서 다시 회신해야 하는 것이 수두룩하다.
"엄마, 오늘도 사랑의 우체통 찼어!"
몽실이 담임 선생님은 L자 파일에 아이의 이름표를 붙여 안내장을 넣어보내주신다. 이 안내장을 넣은 L자 파일을 "사랑의 우체통"이라고 명명하셨나 보다. 이름이 좋다. 부모는 그 우체통을 매일 챙기느라 고생이지만^^;;
코로나 사태가 벌어지면서 학교 환경도 많이 변했다. 기존엔, 누런 등사지에 등사기로 안내장을 일괄 등사하여 가정으로 보내곤 했다. 코로나 이후엔 이 안내장도 온라인으로 발송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몽실이 학교도 종이로 작성한 회신서를 학교로 보내지 않고 온라인 상에서 직접 기입해서 보내는 앱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학기초에는 반드시 종이로 받아야하는 각종 서류가 많아, 알리미 앱 뿐만 아니라 종이 회신서의 수도 상당하다. 가정환경 조사서, 건강상태 조사서, 각종 개인정보 동의서 등, 매일 띵동띵동 울려대는 알리미 체크하랴, 사랑의 우체통 체크하랴, 바쁘다~ 바뻐.
부모 입장에서는 4~5장이지만, 사실 담임 입장에서는 학생들의 회신서를 모으면 수십, 수백장에 달할 것이다. 회신서를 받아서 분류하고, 통계내고, 다시 담당 업무를 맡으신 선생님께 통계 내용을 수합하여 보내는 업무가 가뜩이나 바쁜 학기초에는 만만찮은 스트레스이기도 하다.
그래서 담임을 맡았을 때는 학부모님들께 회신서는 받자마자 "다음날 회신해주십사" 부탁하곤 한다. 안내장엔 '이번주 금요일까지 제출"이라고 제출 마감일이 적혀있지만, 마감일까지 기다리지 않고, 받은 즉시 회신해주면 이를 정리하고 통계내는 담임에겐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일이 내 마음 같지은 않은 법. 항상 느긋하게 마감일까지 기다리거나, 마감일을 넘어서 독촉 문자를 받은 후에에 "어머나, 그거 제출하는 지 몰라서 버렸는데 어쩌지요?"라는 답문을 받으면 힘이 빠지곤 한다. 안내장을 분실하셨을 때는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진 "가정 통신문"을 다운받아 회신 부탁드린다고 제차 독촉하게 되는 담임도 지치기 마련. 그러니 분실 위험도 줄이고, 담임 업무 스트레스도 줄이는 방법은 확인 후 바로 다음날 제출하는 것!!
1학년 학부모님들 중에는 가끔 미제출 회신서에 대한 독촉 문자를 받고 "이미 학교에 보냈다!"며 오리혀 당당한 분들도 계신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처럼 담임교사가 일일히 학생들의 가방을 열어보고 회신서를 회수해간다고 생각하셔서이다. 학교에서는 회신서가 있는 경우, 아이들이 스스로 선생님께 제출하도록 지도하고 있는데, 자신의 가방에 회신서가 있는지 모르고 제출하지 않아 회신서가 아이의 가방 속에서 며칠을 주무시고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 제가 어제 분명히 00이 가방속에 넣어 보냈는데, 확인하지 않으셨나요?"
며 오히려 담임을 탓하는 학부모도 종종 겪게 된다.
'네, 제가 확인하지 못했네요. 26명의 학생들의 가방을 일일히 열어보고 회신서가 있는 학생 것은 담임이 손수 빼내가야 하는데 제가 게을렀네요, 어쩌지요? 게으른 담임을 만나셔서 어머님 고생하시겠네요.'라고 빈정거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1학년 학부모님들은 학생처럼 신입엄마라 생각하며 한숨을 속으로 삼킬 때가 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스스로 하도록 지도하고 있어요, 어머니. 앞으로 2학년, 3학년...아이가 점점 성장해 나가야 하는데, 담임 교사가 모든 일을 다 해줄 수는 없잖겠어요? 안내장 주머니에서 회신서 꺼내서 제출하는 것, 스스로 배변 뒷처리 하는 것, 자신이 먹은 식판은 스스로 정리하는 것, 이런 것들을 스스로 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모두 중요한 교육활동이랍니다. 앞으로 제출할 회신서가 있으면, 등교해서 선생님께 꼭 드리도록 가정에서도 지도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좀 냉정해보이고 섭섭하셨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유치원처럼 살뜰한 보살핌이 초등에서도 계속된다면 과연 내 아이가 바람직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 지금은 내 아이가 어려보이고, 안쓰러워보여도 1학년 때부터 스스로 할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몸에 베이면 학년이 계속 될 수록 아이에게 득이되리라 생각된다.
"엄마, 오늘 선생님이 사랑의 우체통 안 가져온 친구에게 뭐라고 하셨어."
"뭐라고 하셨어?"
"내일은 꼭 가져오라고!"
"그랬구나, 그 모습을 볼 때 네 마음은 어땠어?"
"내 마음?"
몽실이는 고개를 갸웃한다.
"선생님이 그 애를 혼내는 거 같아서 무서웠어."
"혼내는 거 아니잖아? 내일 가져오라고 하셨다면서."
"그냥, 혼내는 거 아닌 거 아는데, 그냥... 그냥 무서웠어."
"그랬구나, 그럴 수 있어. 선생님은 그 아이가 뭔가 잊지 않고 꼭 잘 챙겨오길 바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거야."
"나도 알아!"
몽실이의 손에는 여전히 사랑의 우체통이 들려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얼른 써 줘. 나도 잊지 않고 내일 낼 거야."
나는 웃으며 사랑의 우체통을 열었다. 무슨 동의서가 이렇게 많은지, 안전재난문자 동의서, 행정정보시스템연계 동의서.... 오늘도 동의서가 한아름이다. 이런 것은 하나로 묶어 "전체 동의"라고 한 번만 체크하고 싶다ㅠ.ㅠ
안내장 회신서 하나 제출하는 것도 우리 몽실이에겐 큰 과업을 수행하는 것처럼 뿌듯한가 보다. 엄마가 적어준 동의서를 다시 사랑의 우체통에 잘 담아 가방에 넣으며 뿌듯한 미소를 짓는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머리를 쓰담쓰담 해주니 눈이 반달눈이 된다.
그래 몽실아, 국어, 수학, 과학...지식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이런 생활 습관에 대한 공부도 정말 중요한 거야!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의젓한 초등학생이 되어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