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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릴라 Apr 10. 2020

나는 엄마가 불편하다

엄마와 나의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여동생과 연락하는 일이 많아졌다. 나보다 딱 1년 전에 아이를 낳아 자신의 모든 육아 용품과 정보를 언니에게 아낌없이 전수해주는 기특한 동생이다. 육아에 지칠 때는 아기띠로 아이를 안고 동생에게 전화를 한다.      


동생은 주변 사람들의 근황을 나에게 잘 알려주는데 오늘은 이모와 사촌 이야기를 꺼냈다. 동생과 동갑인 사촌은 두 달 전에 아기를 낳았는데 혼자 아기 보기 힘들다고 이모집에 와 있다고 한다. 이모가 산후조리 한다고 한 달 정도 사촌의 집에서 도와주고 왔는데, 그것으로 모자라서 이번에는 사촌이 이모집으로 온 것이다. 그런데 이 얘기를 엄마가 동생에게 하면서 ‘걔는 엄마가 얼마나 좋으면 한 달도 모자라서 불편한 엄마집까지 찾아와서 계속 있겠느냐’고 우리딸들과는 다르다고 했단다. 은근히 이모를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는 거다.      


동생과 나는 엄마의 도움을 받지 않고 신생아를 키웠다. 산후조리원에서 나와서 남편들이 휴가를 내고 같이 육아를 해서 엄마의 도움이 필요가 없었다. 황혼 육아로 힘들어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 분명히 엄마에게는 좋은 일인 것 같은데, 딸들이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 섭섭하셨나보다. 엄마는 '내가 딸들을 너무 독립적으로 키워서 그렇다'며 한탄을 하셨다고 한다.     


엄마가 이모를 부러워하는 것 같다는 동생 말이 하루 종일 마음에 걸렸다. 엄마가 이모를 부러워하는 것은 비단 이번 일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평소 이모가 딸과 친밀하게 지내는 것을 보면서 그렇지 못한 자신이 비교됐을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부러워했다는 말에 이렇게 마음이 쓰이는 것은 그것이 나에게도 한구석에 불편함으로 있기 때문일 거다.     


엄마가 좋다. 엄마니까 좋고, 늘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의욕적인 모습이 멋있다. 힘들었던 삶을 씩씩하게 살아온 것 존경스럽다. 그런데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엄마를 대하는 것이 편하지 않고 마음이 가볍지 않다. 아이를 낳고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에는 몇가지 사정이 있긴 했지만 엄마와 둘이서 아이를 돌볼 시간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어색하지 않을까, 불편하지 않을까, 싸우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에 사실은 힘들어도 혼자서 아이를 보고 싶었다.      



나는 언제부터 엄마가 불편해졌을까? 어렸을 때에는 '엄마는 나고, 나는 엄마'라고 생각했었다. 빨리 커서 엄마를 지켜주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엄마가 살면서 못해본 것을 내가 다 해주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컸다. 그런데 대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인 것 같다. 늘 아빠에게 소리 지르고, 식구들에게 짜증이 많고, 우울한 엄마가 부담스러워졌다. 나는 이제 행복하고 싶은데 엄마와 함께 있으면 행복하지가 않았다. 엄마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사춘기가 늦게 왔는지 20대 중반에는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내가 자신감이 없고, 화를 잘 못 내는 것, 하고 싶은 말을 못하는 것, 취향이 없는 것 등 스스로에게 불만족스러운 모든 게 다 엄마 탓 같았다. 엄마가 어릴 때 나에게 화를 많이 냈기 때문에, 나를 체벌했기 때문에, 아빠와 늘 싸웠기 때문에 내 성격이 이렇게 된 것 같았다. 밖에서는 웃고, 집에 들어가면 입을 다물었다. 문을 닫고 잠만 잤다. 우울한 집이 싫었다.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힘들었다. 원망하는 만큼 죄책감도 커져서 내 자신이 더 싫어졌다. 그즈음 집단 상담 연수를 듣게 됐다. 엄마 때문은 아니고 처음하는 사회생활이 힘들어서 이것저것 찾다가 참여하게 된 거였다. 무슨 말을 해도 하다보면 결국은 엄마 이야기로 귀결됐다. 당시 나에게 가장 무거운 돌덩이는 엄마였던 거다. 집단 상담을 하면서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다음으론 상담소를 찾았다. 1주일에 1회, 50분에 5만원을 내고 나와 엄마 이야기를 했다. 아무한테도 할 수 없었던 말들을 실컷 했고, 속이 후련해졌다.     


여러 가지로 노력했고 지금은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다.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의 삶을 이해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니 더욱 그렇다. 하지만 엄마가 편하지는 않다. 아직도 엄마와의 관계는 나에게 풀기 어려운 숙제이다. 엄마와 딸이 스스럼없이 편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부럽다. 아마 엄마는 더 그럴 거다.    

  

내 숙제를 풀기 위해 엄마와 나의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 엄마가 나이고, 내가 엄마라고 생각했던 시절, 내 꿈 중의 하나는 엄마의 삶을 소설로 쓰는 것이었다. 소설을 엄마에게 바쳐 엄마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지금 내가 쓰려는 것이 소설은 아니지만 소설일지도 모른다. 순전히 내가 경험하고 각색한 엄마와 나의 이야기니까. 글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 믿는다. 앞으로 쓸 글이 나를 치유하고, 우리의 관계를 치유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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