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서.
이전 글, <나는 엄마가 불편하다>가 지금까지 쓴 글 중에 가장 많은 관심(조회수)과 공감(라이킷)을 받았다. ‘엄마가 불편한 사람이 많구나. 역시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라며 안도감을 느꼈다. 엄마를 몹시 원망하던 시절, 그때는 나만 특별하게 엄마를 원망하고, 우리 모녀만 특별하게 불편한 관계인 줄 알았다. 그래서 엄마를 원망하면서 더 큰 죄책감을 느꼈고, 죄책감 때문에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혼자서만 앓는 마음이 너무 무거워 상담을 찾게 됐고 상담을 몇 차례 진행한 뒤에야 주위 사람에게 슬며시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다.
좋아하는 선배 둘에게 ‘엄마와의 관계가 힘들다고, 요즘은 상담을 다니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따뜻한 성격으로 상담을 잘 해주는 선배는 자신도 엄마가 힘들다고 했다. 엄마한테 전화가 오면 숨을 한번 고르고 받는다고. 어릴 때부터 떨어져 살아 정이 별로 없는데 이제 와서 딸노릇을 바라는 것이 싫다고 했다. 엄마와 같이 살기도 했고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꼭 부모님을 찾아가는 선배는 엄마가 힘들었었다고 했다. 지금은 나아졌지만 한때는 혼자서 엄마의 하소연을 듣는 것, 잔소리를 견디는 것이 모두 부담스러워 도망치고 싶었었다고 했다.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내 마음은 점점 더 환해졌다. 내가 못돼서 고생해서 키워준 엄마를 원망하고 미워한다고, 우리 모녀만 특별히 이상한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니. 나만 빼고 모두가 엄마와 다정하고,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았는데. 모두가 모녀 사이가 좋고 그래서 다들 ‘역시 딸이 최고야’라고 외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따뜻하고 다정한 선배도 엄마가 힘들다니. 늘 즐겁게 엄마 얘기를 하던 선배가 엄마가 부담스러워 도망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니.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듯 주위가 환해졌다.
선배들은 사람들이 말을 안 할 뿐, 마냥 좋기만 한 모녀 관계는 없을 거라고 했다. 부자나 모자 관계와는 다른 모녀 관계만 가지는 특이함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어찌보면 특별하지 않은 말인데 그때 나에겐 어떤 것보다 더 큰 힘이 됐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나만 엄마가 힘든 것이 아니라면 이것을 대수롭지 않게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상담도 하고 있으니 남들보다 더 빨리 엄마와 더 좋은 사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50분에 5만원 주고 받는 상담도 좋았지만, 선배들의 담담한 고백이 훨씬 더 큰 힘이 되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은 힘이 되고 용기가 된다. 특히 나에게 엄마와의 관계는 오랫동안 혼자서만 고민한 일었기에 더 그랬다. 요즘도 속상할 때, 난 왜 이럴까, 우린 왜 이럴까 싶을 때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떠올리며 스스로 위안한다. 나만 특별히 힘든 것이 아니고 누구나 살다 보면 겪는 평범한 고민이라고 다독이다보면 별것 아닌 일이 된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가 힘든, 세상의 모든 딸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당신만 하는 고민이 아니라는 걸. 가부장제 아래에서 이중,삼중고를 겪으며 살아온 엄마와 이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딸의 관계는 복잡할 수 밖에 없을 듯하다. 아빠와는 달리 엄마와의 관계가 유독 신경쓰이고 힘든 것도 그래서이지 않을까. 나도, 너도, 저 사람도, 그 사람도 엄마에 대해 비슷한 감정과 숙제를 안고 있다. ‘저렇게 다정하고 행복해 보이는데도?’라고 생각하겠지만 진짜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나는 엄마가 불편하다> 글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한번 더 모두가 비슷한 고민을 한다는 걸 확인했다. 이에 한번 더 힘과 용기를 낸다. 쿨하면 좋겠지만 가족 관계는 쿨하기 어렵다. 그 중 가장 복잡한 모녀 관계는 더 그렇다. 예전에는 마음 속에 있는 돌덩이를 빨리 없애 해결하고 엄마와 쿨하게 웃으면서 이야기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상담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관계를 ‘빨리’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나와 엄마가 살아온 세월만큼 얽혀 있는 감정과 관계이기에. 조급해하지 않고 평생 가져 갈 평범한 고민으로 안아야겠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정말 편안하고 쿨한 사이가 되어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