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릴라 Apr 14. 2020

마! 내가 K-장녀다

엄마와의 우정을 꿈꾼다

나는 요즘 핫하다는 k-장녀(korea-장녀)다. 더 구체적으로는 장남의 두 딸 중 첫째 딸이다. 지금이야 장남, 차남이 무슨 상관이냐마는 3,40년 전만 해도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장남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 당연시 되고 호주제가 여전히 남아 있을 때였다. 장남과 결혼해서 두 딸만 낳은 엄마는 아들 못 낳은 설움을 받았고, 나는 “니가 고추만 달고 나왔어도.”, “너희 집엔 아들이 없으니 니가 아들 노릇해야 된다.”라는 친척들의 말을 들으며 컸다.

   

엄마가 노골적으로 ‘아들 노릇’과 같은 단어를 쓴 적은 없지만, ‘아들만 있었어도 이런 설움은 안 당했을 거다.’, ‘아들 가진 집 코를 납작하게 해줘야 한다.’는 말은 자주 했다. 사촌인 그 아들들을 이기는 것이 나의 목표가 되었다. 다행히 나는 다른 집 아들들보다 공부를 잘 했고 그것으로 엄마는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다.


아들이 없어 제사를 주니 마니 맨날 싸우고, 갖은 설움을 당하던 엄마에게 자신을 닮은 공부 잘하는 딸은 얼마나 자랑이었을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엄마에게 나는 분신이자 자부심이자 희망이었지 싶다. 나는 엄마의 그 모든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자랐다. 그리고 그 기대에는 사랑과 부담이 함께 있었다.  

   

고등학교 때였다. 엄마가 5살 어린 동생 대학 등록금은 내가 내줘야 한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나도 농담처럼 싫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빠가 엄마가 내 말에 몹시 섭섭해 했다고 왜 그랬냐고 했다. 그게 왜 섭섭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는 나에게 장녀 노릇을 기대했던 걸까, 아들 노릇을 기대했던 걸까. 아니면 둘 다?     


'k-장녀' 서사는 많은 장녀들의 공감을 얻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여전히 직접적, 간접적으로 부담을 느꼈다. ‘큰 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 제일 싫어하지만 어느새 나는 집안의 모든 일에 책임감을 느끼며 살림 밑천 노릇을 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빚 때문에 힘들어하면 빨리 돈 벌어서 갚아드려야겠다고 생각했고, 부부싸움이 있으면 어떻게 중재할 수 없을지 고민했다. 참 이상한 생각이지만, 집에 문제가 있으면 빨리 해결하지 못한 내 탓인 것 같았다.     

 

취직을 하고 주변에서 해외여행을 갈 때 나는 쉽게 계획을 세울 수가 없었다. 부모님도 아직 해외여행을 안 해봤는데 나만 여행을 간다는 것이 미안했다. 나중엔 여행을 자주 다니게 됐지만 사실은 아직도 해외여행 간다는 말할 때마다 떳떳하지가 않고 죄책감이 든다.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부담감은 관계를 멀어지게 만든다. 나는 엄마를 대하는 것이 무거웠다. 엄마가 힘들어하면 당장 해결해줘야 할 것 같아서 왜 힘든지 묻는 것도 꺼려졌다. 엄마에게 질문이 없어졌다. 마음의 부담을 떨쳐 내려고 여러 가지로 노력했는데 결국 가장 효과적인 것은 결혼과 동시에 물리적, 심리적으로 멀어진 것이었다.      


내 가정을 꾸리고 독립하면서 자주 안 보게 되니 부담이 많이 없어졌다. 하지만 완전히 떨쳐 낸 것은 아니다. 요즘도 집에 일이 생기면 내가 다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부담감과 책임감이 엄마한테 힘든 일을 이야기하는 것, 뭘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 일상적인 불평하는 것을 못하게 한다. 나쁜 일은 숨기고, 웬만한 건 알아서 해결한다. 엄마가 해 준다고 하는 것도 괜찮다고 하지 말라고 한다.    

  

엄마는 섭섭할 것이다.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늘 괜찮다고 알아서 한다고 하는 나에게 섭섭하고,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할 것이다. 언젠가부터 거리를 두고 뭐든 얘기하지 않고 알아서 하는 딸을 대하기가 편하지 않고 어려울 것이다. 엄마도 언젠가부터 나에게 ‘신경 쓰지 마라.’는 말을 자주 하기 시작했다.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모녀로 나오는 두 사람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고현정이 엄마 고두심에게  ‘지금부터 엄마, 딸 말고 친구하자.’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대사만 마음에 오래 남아 있다. 내가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이라 혼자서 엄마한테 말하는 연습을 해 본적도 있다. 결국 실행에 옮기진 못했지만.  


이슬아 작가는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에서 엄마 복희와의 관계를 '우정'이라고 표현했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의 우정'. 우정이란 말이 이렇게 아름다운 말이었나. 엄마와의 우정이라고 하니 이 단어가 새삼스럽게 와닿는다.


엄마와 우정을 나누는 친구가 되고 싶다. 진짜 가벼운 마음으로, 한 올의 부담도 없이 커피 마시고, 영화 보고, 수다 떠는 친구가 되고 싶다. 서로에게 부담 느끼지 않고 도움을 주고 받고, 일상을 나누고, 손잡고 바닷가를 같이 걷고, 여행도 같이 가는 친구가 되고 싶다.  이슬아 작가의 말처럼 '서로가 서로를 고를 수 없었던 인연 속에서 어떤 슬픔과 재미'를 같이 나누는 사이가 되면 좋겠다. 언젠가 '우리 OO씨랑 있으면 참 즐거워.'라고 편안하게 웃으며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매거진의 이전글 나만 엄마가 불편한 게 아니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